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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의 춤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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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가 사라졌다"로 시작해서, 봄이는 등장하지 않지만 속마음이 담긴 반 아이들의 글을 통해 봄이가 점점 드러나는 흥미로운 전개. 그리고 마침내는 봄이의 글. 그 속에 숨겨진 반전.

빨리 다음 글을 읽고 싶어하던 소설 속 선생님처럼 나도 궁금해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나갔지만 다 읽은 후 독서일기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 소설이 담고 있는 이 묵직한 의미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다시 책을 펼쳐서 한 번 더 읽어봤다. 그러자 마음이 더 아팠다. 반 아이들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몰랐던 말들이 봄이 자신이 썼다고 생각하고 읽으니 더 아프게 다가왔다. 글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봄이 같은 애' '너 같은 애'였다.

“너희들도 내 이야기가 모두 꾸며 낸 거라고 생각해?”

“그럼 너 같은 애를 대딩이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냐?”

“왜 말이 안 돼?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대학생이 날 좋아하는 게 왜 말이 안 된다는 건데?”

“너 정말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만한 조건의 남자가 미쳤다고 너 같은 애를 좋아하니? 이 세상에 그런 남자는 없어.”

봄이를 둘러싸고 교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끔찍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채 평화와 웃음으로 가장되어 있었다. 봄이가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들의 태도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던 봄이가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프라하의 선생님과 진하를 통해 드디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을 거다.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야속하다 못해 무서워졌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그렇다고 반 아이들을 욕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 얼핏 떠올려봐도 날씬하고 예쁜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주인공이 나온다고 해도 그런 설정 자체로 주목을 받고, 결국에는 날씬하고 예뻐짐으로써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결말은 드라마 속 설정인 동시에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니 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태도에 쉽게 삿대질을 할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건 가장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며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봄이에 대해 편견을 가득 품고 대하는 것도 봄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봄이와 진하 사이에 어떤 끈끈한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 아니, 잠깐만. 나 또한 그런 스토리가 없다면 그 둘은 사귈 수 없을 거라는 걸 전제하고 있는 건가? 왜? 봄이는 뚱뚱하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봄이와 진하의 사이를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봄이가 알려주는데도 아이들이 생각을 바꾸지도,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만 편견이란 결국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아서 생겨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내 별명은 언제나 몸과 관련이 있었다. 피아노를 잘 쳐도, 시험을 백 점 맞아도, 다른 아이들을 잘 도와줘도 나는 언제나 뚱뚱한 걸로 놀림을 당했다. 놀리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들도 나를 가리킬 때면 ‘뚱뚱한 애’라고 했다. 누가 보는 내게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거였다. 그렇게 불리는 게 익숙해질 때쯤 체코로 왔다. 체코에선 내가 ‘동양인’이라는 점이 더 눈에 띄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뚱뚱한 몸이 나를 규정짓는 특징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p. 94

체코 말에 귀가 조금씩 열리고 학교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7학년 2학기 사회 시간에 몸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첫 시간에 담당 교사인 미즈 소바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울을 볼 때 누구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지. 아이들은 다 자기 눈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나 또한 그랬다.

(…)

미즈 소바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한 이에 대해 우리는 치열이 고른지, 치아 간격이 어떤지, 너무 튀어나오거나 들어가지는 않았는지를 왜 더 신경 쓰는 걸까요?”

수업이 거듭되면서 실은 우리가 남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아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 몸을 뚱뚱하다고만 규정했다. 내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고, 내 팔은 아빠와 팔씨름을 하며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p. 95

한 해 한 해 살아오는 동안 생겨난 편견들은 우리가 너무 많이 알게 돼서, 무지하지 않아서 갖게 된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무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스며들었는지 누가 심어놨는지 모를 세상의 기준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주어진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편견 너머를 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마리오네트의 춤>에서도 봄이를 봄이 자체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냐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조금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건네줘야지(표지를 보고 지금부터 읽겠다고 난리지만... 아직은 초3이니까 조금 더 큰 다음에^^). '부모님이 여행을 갔다고 바로 학교를 무단결석하며 사고나 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봄이'가 아니라 ‘봄이가 왜 학교에 못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아이가 깨달아가는 과정이 기대된다. 소설은 백 마디 말보다 힘이 크므로.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조종당하듯 춤을 추는 마리오네트가 되기보다는 줄을 끊을 수 있게 되었으면. 조금씩 노력한다면 분명히 세상은 바뀐다는 걸 경험해 왔으니까. 많은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주변에 있는 많은 어른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며 제 진심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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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땅에서, 우리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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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딸 맘들이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로망이 있다. 딸과 둘이서 떠나는 모녀여행에 대한 로망.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세상이 끝나고 다시 자유롭게 비행기가 뜰 수 있을 때. 아직은 어리고 귀여움이 더 많은 10세 내 딸이 내 키만큼 자라고(그런 날은 빨리 올 것 같지만_-_), 자기 짐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때. 둘이 떠나서 알콩달콩 추억을 만들고 돌아올 수 있는 모녀여행을 꿈꾼다.

이번에 읽게 된 이금이 작가님의 소설 <거인의 땅에서, 우리>에는 이렇게 모녀가 함께 떠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도 흔해빠진 여행지가 아니라 장소는 무려 몽골! 그 중에서도 그들이 대부분을 보낸 곳은 지평선만이 끝없이 펼쳐진 고비사막!

그.리.고.
현실의 나는 언젠가 떠날 모녀여행에 대한 로망만을 꿈꾸고 있는데, 소설 속에는 오히려 현실 딸, 현실 엄마가 있었다. 아... 사춘기 중학생 딸아이와 떠나는 길이 꼭 즐겁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깨달음)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나는 별빛보다는 환한 전등 빛 아래서 팬픽을 쓰거나 SNS를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게 더 재미있다'는 딸 다인이와 너 때문에 단체 생활에서 민폐일까봐 신경 쓰여 죽겠다는 엄마 숙희.

그도 그럴 것이 엄마 숙희가 '글무지개'라는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모임 7명의 친구들과 떠나는 모임에 딸 다인이가 갑자기 꼽사리를 끼게 되었던 것이다. 또래 친구도 없이 혼자서. 친구들 다 타본 비행기 한번 못 타봤다고 투정부리던 다인이가 첫 해외여행이라고 설렜던 것도 잠시, 목적지는 유명한 관광지도 화려한 도시도 아닌 몽골의 사막이라니.

소설은 15살 다인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1부 거인의 땅에서'와 엄마 숙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2부 신기루', 이렇게 두 가지 시선으로 쓰여져 있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주르륵 읽어나갔다.

1부에서는 여행 내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를 닮은 가이드 바타르와 잘 되고 싶은 마음뿐인 다인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어른이 된 지금의 내 마음으로는 '다인이는 국적도 다른 바타르가 진짜로 그렇게 좋나 왜 저러나' 싶기도 했지만ㅋㅋ 돌이켜보니 나도 중학생 때 2박 3일의 극기훈련을 가서 겨우 이틀 동안 봤던 교관이 좋아져 헤어질 때 진심으로 아쉬워했던 마음이 생각났다. 아. 정말 그랬네. 까맣게 잊고 있었네. 작가님은 어쩜 이렇게 그 시절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잘 알고 계실까.

2부에서는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는 엄마 숙희의 마음 속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인이의 시선에서 보였던 엄마 숙희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오빠만을 챙겨주던 엄마, 감성이라고는 없는 엄마, 공부가 제일 중요한 엄마, 문학동아리랑은 세상 어울리지 않는 엄마였다. 그런데 숙희는 왜 그런 포지션을 맡아야만 했을까. 숙희가 동경하면서 동시에 질투하는 '듣보작가' 춘희는 어떻게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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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다 읽고 덮었던 책을 독서일기를 쓰기 위해 다시 펼쳐 읽어나가는 와중에, 초반에 써 있었지만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어떤 말이 눈에 띄며 갑자기 마음에 콱 박혔다. 엄마한테 다인이가 나도 여행에 따라가겠다고 조르다가 방해만 될테니 안 된다는 답을 듣고 그러면 안 따라가는 대신 용돈 얻어내기 작전에 성공한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여행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엄마가 마음을 바꿔 나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저 말이 갑자기 눈에 띄게 된 건, 뒷부분을 통해 숙희가 어떤 마음으로 다인이에게 여행을 제안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갔던 병원에서 자신이 자궁암 초기라는 걸 알게 된 숙희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인이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던 열 여덟 나이에 자궁암으로 엄마를 잃었던 숙희. 그래서 그때부터 자신의 삶은 너무 힘들어졌고 또 많이 달라졌다고 믿어왔던,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만은 절대 그런 상황 속에 놓이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던 엄마 숙희였기에 자신도 똑같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을 것이다. 병을 이겨내지 않고 삶을 포기해버렸던 엄마에 대한 원망까지 다시 떠오르면서...

다행스럽게도 숙희는 사막이라는 여행 장소를 통해서, 얽혀 있던 친구와의 감정 정리를 통해서, 딸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묵은 상처를 조금씩 보듬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
나는 주희를 무시했으며 춘희를 동경했다. 그리움과 부러움, 우러러봄이 동경의 빛이라면 좌절, 질투, 애증은 그 그림자일 것이다.

+
"실은 고3 때 가출했던 기는 어무이한테 반항하느라고 그런 기다. 내는 사춘기가 그제사 왔거든. 어무이가 내한테 맘대로 살라 카는 게 무책임한 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무이를 괴롭히고 싶더라. 딸이 인생 망친다 카는데도 초연한 얼굴로 그 잘난 인생철학 지껄일랍니꺼,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무이 패물 들고 집 나갔다 아이가. 한 달만에 돌아오니까 우리 어무이, 야단은커녕 그동안 배곯았을 기라고 사골을 한 들통 고더라. 그때 알았다. 우리 어무이는 그렇게 생겨 먹은 기고 자기 본성대로 살고 있는 기라는 걸. 내한테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길밖에 없었다. 어무이를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
춘희의 설렘과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시도 허세도 아닌 진심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지겨워하며 빠져나온 길에 새로운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춘희와의 이별을 듣는 순간 휩싸였던 기분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 애가 품고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이었다. 그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환이기도 했다.

+
"그런데 아줌마도 여자애였잖아."
그렇다. 우리도 여자아이였던 적이 있었다. 지난밤까지 선명하게 기억했던 그때가 거인족 시대 일인 것처럼 까마득했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

+
"지 엄마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지 알면 그게 진짜 힘이 되는 기제." 춘희가 했던 그 말이 맞는다.

+
내가 그날, 모래 언덕에 앉아 울었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신기루가 홀연히 사라지는 걸 본 순간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실은 신기루처럼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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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면서 엄마 숙희는 자신이 믿고 있던 것들이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울었다.

믿는 대로 살아온 것이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덜 두려웠겠지만 엄마로서, 자기가 믿었던 방식대로 아이를 키워왔던 엄마로서 만약 그게 허상이고 틀린 것이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얼마나 두려운 일이 될까. 같은 엄마로서 숙희의 그 마음에 깊이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딸 다인이는 엄마 숙희가 두려움으로 바라봤던 신기루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
"너 먼저 말해 봐."
"나는 신기루."
"왜?"
"그냥.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여행하는 동안 신기루를 세 번 봤잖아. 그런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다 달랐어."
"어떻게?"
"모래 언덕에서 봤을 때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하기만 했어. 그리고 길 잃어버렸을 때 신기루를 두 번 봤잖아. 그때마다 진짜 호수인 줄 알고 막 좋아했다가 아니라서 엄청 실망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속임수 같아서 나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진짜 물하고 게르를 만나고 길도 찾고 나니까, 만약에 그때까지 신기루를 한 번도 못 봤으면 어떻게 불안하고 무서운 걸 이겨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엄마,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사막에 신기루가 없으면 너무 지루하고 심심할 거 같지 않아?"


엄마 숙희는 자신의 엄마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기루를 보며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믿고 있던 게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다인이에게 신기루란 신기한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것이고, 나아가서는 희망 같은 거였다. 음. 확실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조금 느껴지려고 한다. 아이는 나와는 다르다는 것. 숙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아이에게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런 의식적인 노력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벽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대로 나아가려는 앞에 자꾸 막아서는 벽. 그보다는 춘희처럼, 엄마가 행복한 시간을 살면서 자신을 믿고 있다는 마음을 알게 될 때 아이들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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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땅에서, 우리>는 2012년에 나왔던 소설 <신기루>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듣보', '제맛', '성덕', '꾸안꾸'... 같이 요즘 쓰는 말들이 곳곳에 담겨 있는 걸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찰떡 같은 제목으로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2022년 버전으로 완전 탈바꿈 했을 개정판을 준비하시며 작가님께서 또 얼마나 공을 많이 들이셨을까. 처음 버전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문장 하나하나 안 바뀐 문장이 없을 것 같다.

또 문득, 이 시기에 이 책을 다시 출간하고 싶으신 이유도 있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책으로나마 떠나볼 수 있도록...??
나도 한 방 제대로 맞았다.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그것도 몽골 여행.
거인의 땅에 가면 나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까. 안 가봐서 모르겠다. 가서 느껴보고 싶다.
그때 같이 떠날 '우리'는 과연 누가 될까.
딸에서 엄마가 되어버린 나와 언젠가 엄마가 될지 모르는 딸과의 여행도 좋겠고
세월의 흐름에 겉모습만 변했을 뿐 속은 그대로인 친구들과 함께여도 좋겠다.
아, 그래도 친구들 여행에 딸을 데려가는 것만은 하지 말아야지.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며 제 진심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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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현상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오승민 그림 / 밤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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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언덕, 그 위에 핀 벚나무, 흩날리는 벚꽃잎,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아이...

 

표지를 보고 그저 예쁘다 라는 것이 첫느낌이었다면 동화를 읽고 나자 그림이 달리 보인다. 특히 핑크색 언덕은 다름 아닌 털실 모양이었다는 것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종이비행기를 먼 곳으로 날리며 다른 세계로 한발짝 나아가려는 것일까?

 

이 책은 이금이 작가님의 단편동화 다섯 편이 실린 동화집이다. <꽃이 진 자리> <한판 붙어 볼래?> <금단현상> <십자수> <임시 보호>가 수록돼 있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인상은, 아이들이 다들 저마다의 중요한 사건들을 겪으며 조금씩 커나가고 있구나 하는 거였다.

 

나도 물론 그런 일들을 겪으며 그 시기를 지나왔을 테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가 작가님께서 기가 막히게 속마음을 보여주시는 책 속의 아이들을 통해 당연한 것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들도 매일 많은 일들을 겪고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버티며 이겨내며 배워가고 자라는 거겠지. 커갈수록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극복해나가야 하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다가 가끔씩 벚꽃 날리는 봄밤처럼 기억하고 싶은 순간, 예쁜 날들이 찾아오기도 할 거고... (생각해보면 어른의 삶이나 아이의 삶이나 다를 게 없는 듯)

 

고학년 동화라는 이 책을 저학년인 우리 아이에게 건네주니 앉은 자리에서 재밌게 다 읽었다. 지금은 아마도 겉으로 보여지는 이야기만을 따라가며 읽었을 거다. 나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 마음에 쓰인다.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외로움(<꽃이 진 자리>), 무리로부터의 소외감(<한판 붙어 볼래?>), 짝사랑의 감정, 그리고 부당함에 맞서려는 마음(<금단 현상>), 집안의 냉랭해진 공기 버텨내기(<십자수>), 절친이었던 친구와 멀어지게 될 때의 속상한 마음(<임시 보호>)......

 

언젠가는 금쪽 같은 우리 아이가 하나씩 겪어내야 할 일들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리기도 하다. 그때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잘 대처해줄 수 있을까 하는 앞선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이 다가가 줄 수 있기를.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구나, 그 아이들은 이렇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구나 하며 동화 속 아이들로부터 위로 받고 성장할 수 있기를.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가 해줄 수 없는 공감을 진하게 해주기를.

 

아이들의 감정을 세심히 표현하고 어루만져 주시는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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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해마 그림 / 밤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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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보는 만화 소리가 울려대는 옆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만화에 심취해 있는 아이 덕분에 눈물 콧물 짜내는 모습을 들키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 생각했다. 이 가슴 뭉클한 책을 두 번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개정판? 개정판! 이 책은 전적으로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2007년 개정판 버전으로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근하고 예쁜 표지로 새로 옷을 입은 개정판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내가 처음 접한 버전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인지 세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표현된 개정판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내 마음에는 예전 버전의 이미지로 미르, 소희, 바우가 심어졌는데 그 느낌을 금세 새로 업데이트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이 예쁜 표지의 책을 다시 잡기가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이미 읽은 책이라는 생각, 그림이 달라진 게 가장 큰 변화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개정판의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음? 내 눈을 의심하며 계속 이전 책을 찾아 들춰보게 되었다. 나는 개정판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나? 개정판이라 하면 이전 책에서 발견된 오타나 오류를 조금 수정해 내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보통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금이 작가님의 손을 거쳐 나오는 개정판은 달랐다. 이야기를 이루는 뼈대, 큰 줄기는 변함이 없었지만 문장이나 표현들은 똑같은 문장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더 읽어나가기 쉽도록, 더 현대의 상황에 맞도록, 모든 문장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아아. 이금이 작가님께서 내시는 개정판의 클래스란 이 정도구나. 이미 발표된 작품이니 그냥 두셔도 문제가 없을텐데 고심하셔서 다듬고 고쳐야 하는 고된 작업을 해주심에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진심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개정판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외삼촌'이 '삼촌'으로 바뀌어 있던 부분이었다. '외숙모'는 '숙모'로, '외사촌 오빠들'은 '사촌 오빠들'로 바뀌었다. 혹시 설정을 바꾸신 걸까 잠깐 품었던 의문은 '고모도 언제까지 거기 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라는 문장과 '큰삼촌은 막냇동생 걱정뿐이다.'라는 문장에서 풀리게 되었고, 의문이 풀리자 이해도 되고 감동도 왔다. 이런 세심한 개정이라니.


집착녀처럼 달라진 문장을 계속 찾아보던 나는 그제서야 비교를 포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달라진 단어와 문장을 눈치챌 때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어가면서. '남사친, 여사친', '마치 죽이 맞는 심야의 폭주족' 같은 단어가 들어간 것도 재미있었고,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가 추가된 것도 좋았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소희와 진짜 친구가 된 미르의 마음을 더 자세히 보여주셔서 그 장면에서 줄줄 눈물이 났다.

'3일 동안 아주아주 잘해줄 거야. 혹시 나한테 서운하거나 뭇마땅한 게 있었더라도 다 풀고 갈 수 있게 할 거야. 떨어져 살아도 영원한 절친으로 남을 수 있게 만들 거야.'

이런 문장을 추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셋에서 둘이 된 사람들, 그리고...


'세 식구 중 한 사람이 빠진 생활은 바퀴 한 개가 빠진 세발자전거처럼, 나사가 빠진 물건처럼 불안정하거나 덜거덕거릴 거다.'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닿았던 문장. 이 문장은 다행히(?!) 개정판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몇 년 전에 삼총사였던 친구 중 한 명과 먼저 이별을 해야 했을 때 나는 3이라는 숫자의 불완전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3개의 선이 모이면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이룰 수 있지만 한 개의 선이라도 빠게 되지면 면은 사라지고 선만 남게 된다. 셋에서 둘이 되면서부터 자리잡은 왠지 모를 허전함.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2개의 선은 불완전하다 생각만이 지배했고 그 생각은 엉뚱하게도 둘째 타령이 되었다. 일에 바빠 아이에게 소홀한 남편의 모습에 항상 불만이었던 나는 3이라는 숫자가 불안했으니까.


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가감없이 나오는 것에 놀랐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에 이혼이라니! (그동안 나는 동화를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데 희한하면서 좋았던 건 미르와 미르 엄마의 마음을 찬찬히 따라가는 동안 내 마음을 다독다독 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미르 엄마에게는 공감하고, 미르에게는 부모가 이혼을 하면 아이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를 느끼면서 울컥하고...


미르네, 소희네, 바우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모두 셋에서 둘이된 가족들이 나온다. 셋에서 둘이 되는 건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미르, 소희, 바우 그리고 미르 엄마, 소희 할머니, 바우 아빠는 결국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셋이라고 완전한 것도 둘이라고 나쁜 것도 아님을. 가족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그것은 옳고 그르거나 좋고 나쁜 것이 아님을. 가리고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드러냄을 통해 깨닫고 치유하게 만드는 작가님의 글을 통해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나는 바우에게 고마웠다. 바우가 아빠에 대해 이해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아이에 대한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 내 생각이 짧았어요. 우리 가족은 상사화 잎과 꽃 같아요. 서로 만나지 못해도 상사화의 꽃과 잎이 한 몸인 것처럼 만나지 못하고 살아도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바우가 아빠에게 마음을 연 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엄마와 다를 뿐 아빠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뒤부터였다.'




미르, 바우, 소희는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책의 뒷표지에 써 있는 말이다.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미르, 바우, 소희는 결국 친구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 과정 속에서 자라났고, 그 모습을 따라가던 나도 조금은 자란 기분이 들었다.


친구가 된다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들이 아니다. 미르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하고, 소희처럼 애쓰며 사느라 자기 마음을 모르기도 하고, 바우처럼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나는 어른이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아이도 위로를 받고 조금 자랐기를.


무슨 뜻인지 정말 궁금했던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제목에 대한 물음표는 느낌표가 되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라는 '하늘말나리' 꽃의 의미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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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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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나는 전형적인 '책상물림'과 '구경꾼' 인간이다.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100미터 달리기든 오래달리기든 달리는 걸 좋아했는데.

교복을 벗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꾸준히 운동한 적이 없다. 게다가 스포츠를 보는 것에도 영 취미가 없다. 나란 사람은 "경기는 결과만 알면 되지" 하면서 야구가 틀어 있는 TV를 드라마로 돌리는 사람. 야구장을 따라 다니며 관심을 가져보려고 해도 경기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치킨과 맥주만 먹다 올 뿐이라, 아무래도 내 안에 친스포츠 유전자 같은 건 없나 보다 확신하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뭐가 나쁜가.

 

그냥 살아갈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는 내가 운동을 즐겨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건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지, 건강해져야지 하는 목표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

 

달리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책장을 덮자마자 운동화 끈을 조이고 공원을 달렸었다. 한창 꿈을 쫓던 그때의 나는 성실함이 쌓여 이루어내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를 닮아 나도 뭔가를 이루고 싶었다(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작년에 마흔 살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껴 <마녀체력>을 읽었을 때는 상황상 바로 달리지 못했지만 '내년에 꼭 5키로 마라톤에 도전해야지'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알게 되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긍정 에너지를.

동시에 내가 결혼생활과 육아생활을 하며 가끔 와르르 무너지는 게 그동안 운동을 즐겨하지 않고 살아온 삶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결혼 전에 운동을 선수 수준으로 즐겨했던 mom이 육아에서도 지치지 않는 것을 봤다. 육아 상황이야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운동을 하며 몸에 밴 긍정적인 태도의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지. 어떠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다른 것을 대할 때도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최근 명상을 하면서 알았다. 그러니 비약이 아닐지도...

 

그리고 이번에 만난 이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끊임 없이 '운동선수 예찬'을 한다.

 

"이 거짓의 시대에, 위를 향한 좌절된 욕망만이 판치는 시대에 운동선수는 뛰어나고 우아하고 고결한 인간의 실례로 남는다. 적어도 정직한 운동선수들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진정한 운동선수는 변명하지 않는다. 진정한 운동선수는 자만심이나 선입견 없이 자신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그는 순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진정한 운동선수는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과 약점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운동선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낸다. 부정적인 한계보다는 긍정적인 목표를 통해 건강을 추구한다. 운동선수는 금연부터 하고 훈련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훈련을 시작한 뒤,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일상생활 안에 있다. ... 다른 사람들과의 긴장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자신을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상황과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안다. 운동선수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데 대해 모르는 게 없으며 과거와 미래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동안 너무나 멀리했던 운동선수들의 방식을 익혀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노력을 통해 모든 감정을 풀어놓고 카타르시스를 얻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저자는 '유전자의 산물인 육체가 우리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며 몸 결정론까지 편다.

 

"내 몸을 통해 나는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몸을 통해 나는 한계를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충실해질 수 있는가를 본다. 몸을 통해 나는 머리를 짓누르는 과거의 기억과 이뤄질 수 없는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몸을 움직이는 자들은 늘 즐거워한다. 거기에는 놀이하는 재미, 승리하는 재미, 심지어는 패배하는 재미까지 있다."

 

"정신을 뛰놀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몸을 뛰놀게 하라는 말입니다."

 

"몸이 없이 마음이 남아 있겠는가? 동맥만큼이나 빨리 지능이 마비된다."

 

"행동하지 않고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렸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안 하느니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

 

---

 

'책상물림'인 나는 정신력을 가져야 몸이 따라가게 된다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수도. 아니, 그 반대가 더 쉬운 걸 수도. 저자가 말하는 것도 그것인 것 같다. 몸이 움직이면 정신도 따라온다는 것. 저자는 그걸 달리기를 통해 온몸으로 깨닫고 전해주고 있다. 자신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그걸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자신의 참된 모습을 꾸준히 찾아 나서라고.

 

"러너는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린다. 러너가 되면서, 고통과 피로와 아픔을 견디면서, 스트레스에 스트레스로 맞서면서,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만 남겨 놓으려고 하면서 러너는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그대로 자신이 된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직은 '러너'라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도 어쨌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린다는 것은 확실히 '걷기'와는 천지차이다. 걷는 것은 언제까지고 가능하지만 달리기는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힘든 만큼 더 충실해질 수 있다는 걸 조금 경험했다. 걷고 있는 공원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 달리고 있을 때, 내 앞의 길과 달리고 있는 나만 있는 듯한 느낌..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달리기 실전 팁은 아직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진짜 러너로 거듭난다면 다시 펼쳐보며 도움을 받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책이 내가 달리는 길과 달려야 하는 이유의 동기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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