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의 춤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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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가 사라졌다"로 시작해서, 봄이는 등장하지 않지만 속마음이 담긴 반 아이들의 글을 통해 봄이가 점점 드러나는 흥미로운 전개. 그리고 마침내는 봄이의 글. 그 속에 숨겨진 반전.

빨리 다음 글을 읽고 싶어하던 소설 속 선생님처럼 나도 궁금해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나갔지만 다 읽은 후 독서일기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 소설이 담고 있는 이 묵직한 의미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다시 책을 펼쳐서 한 번 더 읽어봤다. 그러자 마음이 더 아팠다. 반 아이들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몰랐던 말들이 봄이 자신이 썼다고 생각하고 읽으니 더 아프게 다가왔다. 글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봄이 같은 애' '너 같은 애'였다.

“너희들도 내 이야기가 모두 꾸며 낸 거라고 생각해?”

“그럼 너 같은 애를 대딩이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냐?”

“왜 말이 안 돼?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대학생이 날 좋아하는 게 왜 말이 안 된다는 건데?”

“너 정말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만한 조건의 남자가 미쳤다고 너 같은 애를 좋아하니? 이 세상에 그런 남자는 없어.”

봄이를 둘러싸고 교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끔찍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채 평화와 웃음으로 가장되어 있었다. 봄이가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들의 태도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던 봄이가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프라하의 선생님과 진하를 통해 드디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을 거다.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야속하다 못해 무서워졌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그렇다고 반 아이들을 욕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 얼핏 떠올려봐도 날씬하고 예쁜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주인공이 나온다고 해도 그런 설정 자체로 주목을 받고, 결국에는 날씬하고 예뻐짐으로써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결말은 드라마 속 설정인 동시에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니 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태도에 쉽게 삿대질을 할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건 가장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며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봄이에 대해 편견을 가득 품고 대하는 것도 봄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봄이와 진하 사이에 어떤 끈끈한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 아니, 잠깐만. 나 또한 그런 스토리가 없다면 그 둘은 사귈 수 없을 거라는 걸 전제하고 있는 건가? 왜? 봄이는 뚱뚱하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봄이와 진하의 사이를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봄이가 알려주는데도 아이들이 생각을 바꾸지도,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만 편견이란 결국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아서 생겨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내 별명은 언제나 몸과 관련이 있었다. 피아노를 잘 쳐도, 시험을 백 점 맞아도, 다른 아이들을 잘 도와줘도 나는 언제나 뚱뚱한 걸로 놀림을 당했다. 놀리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들도 나를 가리킬 때면 ‘뚱뚱한 애’라고 했다. 누가 보는 내게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거였다. 그렇게 불리는 게 익숙해질 때쯤 체코로 왔다. 체코에선 내가 ‘동양인’이라는 점이 더 눈에 띄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뚱뚱한 몸이 나를 규정짓는 특징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p. 94

체코 말에 귀가 조금씩 열리고 학교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7학년 2학기 사회 시간에 몸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첫 시간에 담당 교사인 미즈 소바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울을 볼 때 누구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지. 아이들은 다 자기 눈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나 또한 그랬다.

(…)

미즈 소바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한 이에 대해 우리는 치열이 고른지, 치아 간격이 어떤지, 너무 튀어나오거나 들어가지는 않았는지를 왜 더 신경 쓰는 걸까요?”

수업이 거듭되면서 실은 우리가 남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아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 몸을 뚱뚱하다고만 규정했다. 내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고, 내 팔은 아빠와 팔씨름을 하며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p. 95

한 해 한 해 살아오는 동안 생겨난 편견들은 우리가 너무 많이 알게 돼서, 무지하지 않아서 갖게 된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무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스며들었는지 누가 심어놨는지 모를 세상의 기준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주어진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편견 너머를 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마리오네트의 춤>에서도 봄이를 봄이 자체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냐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조금 노력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건네줘야지(표지를 보고 지금부터 읽겠다고 난리지만... 아직은 초3이니까 조금 더 큰 다음에^^). '부모님이 여행을 갔다고 바로 학교를 무단결석하며 사고나 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봄이'가 아니라 ‘봄이가 왜 학교에 못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아이가 깨달아가는 과정이 기대된다. 소설은 백 마디 말보다 힘이 크므로.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조종당하듯 춤을 추는 마리오네트가 되기보다는 줄을 끊을 수 있게 되었으면. 조금씩 노력한다면 분명히 세상은 바뀐다는 걸 경험해 왔으니까. 많은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주변에 있는 많은 어른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며 제 진심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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