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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 프랑스식 냄비 요리, 사랑 접인 병원, 지상의 밤 외 4편의 단편이 실린 임선우 작가님의 단편집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상실에 대해서 담고 있는 책이다. 각 단편 속 인물들은 연인 간의 사랑, 자신 혹은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상실을 겪은 인물들이기도 하다. 각 단편집 속 인물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까?
✏️ 사랑과 상실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을 꼽는다면 사랑과 상실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살아가며 더 많은 사랑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당연한 대가처럼 상실 역시 따라온다. '지상의 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사랑과, 그 이후 찾아오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 일곱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지상의 밤'과 '유령 개 산책하기'였다.
먼저 '지상의 밤'에는 직장에서의 사건 이후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해파리가 되기를 선택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은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고 섞이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해파리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상의 행동들을 조금씩 해내기 시작한다. 그의 모습은 상처를 받아 움츠러들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과거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어리석고 좋아 보이지 않는 그의 선택조차도 부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그의 앞날을 응원하게 되었다.
다음 작품인 '유령 개 산책하기'는 언니에 의해 강아지 '하지'를 맡게 된 주인공이 하지의 죽음 이후 무너진 일상을 살아가던 중, 유령이 되어 자신의 곁에 나타난 하지를 다시 만나며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한 번이라도 마음을 다해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떠나간 작은 온기가 여전히 곁을 맴도는 것 같고, 문득 그 아이의 발소리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유령이 되어 다시 돌아온 하지가 끝내 영원히 머물러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내가 그 아이를 잃었을 때 느꼈던 낯선 감각들도 정말 그 아이가 내 곁에 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제는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안심하고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지상의 밤'은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감동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살아가며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사랑과 상실을 작가님의 상상력으로 형상화해 보여준다. 또한 서로 다른 사랑과 상실을 담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작품인 만큼, 내가 가장 오래 붙잡게 된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 전혀 다른 작품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되는 단편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펼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어떤 이야기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으며, 그것은 당신의 어떤 사랑과 상실을 떠올리게 했나요?
📍마음 속 문장
•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서 텀블러 바닥에 말라붙은 얼룩이 될 거야. 어두컴컴하게, 세균이 번식한 채로. 그렇게 더러운 얼룩이 되어 평생을 악몽으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너에게 남고 싶어. -p.20-
• 아는 사람들은 안다. 어둠이라고 해서 다 같은 어둠이 아니라는 사실을. 밤마가 내 방에 고이는 어둠은 안전하되 지루했다. 반면 싱크홀 속 어둠은 내가 생전 처음 만나보는 어둠. 죽음, 긴장,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느껴지는 어둠이었다. 그 어둠을 볼 때 오히려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까. -p.129-
• 정말 나이드는 게 좋아졌어요? 희재가 물었다.
할머니 덕분이에요. 누드 크로키 할 때 봤던 몸 선이 무척 부드러우셨거든옷. 오랜 시간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만 나올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선을 가질 수 있다면, 나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