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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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필립 로스 대표작 '미국 3부작'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1960년대 전/후의 미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훨씬 몰입도가 높을 작품이다.
*
*
'시모어 어빙 레보브',
보다 더 많이 불리는 이름은 '스위드'.
잘생기고 훤칠하고 평판마저 좋은 이 남자.
모든 면에서 탁월한 그는 마을 전체를 팬으로 가진 남자다.

'이상'에나 들어맞는 모습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영화를 먼저 보고 난 탓에 '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이 남자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데 -고백하자면 나는 이완 맥그리거의 오래된 팬이다. 뭐, 신체 조건은 원작과 퍽이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이 남자, 이 사람. 조금 더 어릴 때의 내가 가졌던 이상주의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딸, '메러디스 레보브',
-동생 제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괴물 '메리'.
말더듬증을 가진 꼬마였던 여자.

매력적인 장갑을 만들 가죽을 다루는 일도, 모든 일에 성실한 자세도 모두 가진 스위드에게 무엇으로도 접근할 수 없었던 유일한 존재, 그의 딸. 놓을수도 붙들수도 없던 그 사람..

영화로 함께 즐기기를 권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소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그토록 완벽한, 선망의 대상인 그는 자신의 의견을 몰랐다.
그토록 똑똑한, 듬뿍 사랑 받으며 자란 그녀는 적당히를 몰랐다.
늘 말하고 마주하고 있었음에도 몰랐다.

서로를 몰랐고
자신을 몰랐다.

그러니 돌볼 줄 몰랐다.
돌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듣고 의문을 던지며 사유를 깨워간다는 것, 생각함이 의미 있겠다 다짐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절하게 소통하고 있는가?
타인과의 소통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니,
아니다.

메리 보다, 혹은
스위드 만큼 - 잘 살아낼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 70-77p. [형은 사람이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사람이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딸이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딸이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이 나라가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이 나라가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모든 것에 가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 형 딸은 그걸 날려버리려 했던 거야. 그 겉면을. .. 바로 그거야! 맞았어! 우리는 충분치 않아. 우리 누구도 충분치 않아! 모든 일을 올바로 하는 사람도 포함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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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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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에 대한 이야기이다.

레닌에서 흐루쇼프로 이어진 시대와 독재, 억압, 타협, 예술, 삶 등의 낱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두려움을 한 스푼쯤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루고 있는 음악, 문학의 범위도 상당히 넓으므로 적당히 포기하면 편함♡ 꿀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초록안경'을 쓰고 있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가는 길. 생사를 가르는 모험을 거쳐 에메랄드 성에 닿으면 절대 벗을 수 없는 초록안경을 써야 한다. 모든 것이 초록이고, 초록이어야 하는 세상. '내가 가짜인 걸 들킬까봐 넘흐넘흐 무서워. 초록초록' 동화에서는 귀여웠던 두려움이 현실로 옮아오면 가끔 기형적인 모습으로 삶을 덮쳐 온다.

149-151p. "... 동의하십니까?"
"예,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들에 동의합니다."
"... 동의하십니까?"
"예, 개인적으로 그런 조치에 동의합니다."
"... 동의하십니까?"
"예, 그런 견해에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

줄리언 반스가 되살려 놓은 한 인물의 절절한 공포는 나의 삶을 감사하게 만든다. '동의'를 강요 받지 않고 의견을 밝힐 수도 있는 세상. '시대의 소음'에 귀가 멀 지경은 아닌 세상. 이런저런 세상에서 독재를 글로, 역사로 마주하는 내가 얼마나 평안한지.. 깊이 느끼게 한다.

분명 이 시대에도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읊조리는 시대의 소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영 끊이지 않을 일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수시로 나의 초록안경을 고쳐 쓰는 일이다. 강제하지 않고, 물들이지 않고, 드러내기 보다 드러나기를 애쓰면서. 어우러지지 못해도 좋으니 함께인 삶을 유지하면서.. 내 안에서 울려오는 소음에 귀가 멀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해나가면서.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삶이요, 나의 길이면 마땅히 그리 해나가면서.

함께인 오늘을 사는 것.

나의 마지막 질문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226p.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 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반스 소설 중 최고]라 말한다면, 얼른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집어 들어야 겠다. <아서와 조지>까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더 있었는데, 전혀 몰랐던 인물의 삶도 이리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으니♡ 벌써 콩닥콩닥 하는 마음을 막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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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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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 소설집 [키친]에 대한 짧은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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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래 사랑, '해야지' 생각은 나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싶다' 바꿔 놓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래, 그러면 안되는 거다.

나는 퍽이나 고통스러운 부류의 읽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병적인 '산만함' 때문이다. (전적으로!) 문장이 어렵고, 거푸 읽어 이해되는 글이라야 집중이란걸 할 수 있다. 워낙 구름 위에 떠 있는 인간이라 붙들어 놓을 길이 없는 탓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단숨에 사뿐 내려 놓고야 만 것이다.

지난주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에 대한 어줍잖은 선입견을 깨주어 감탄이니 되었다 쳐도, 이건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마음에 옮아오는 따스함에 절로 웃어지는 시간이었다. 순순히 즐거운 독서가 이리도 오랜만인지는 웃는 나를 마주하고야 알았다. 지독히도 괴롭혀 왔구나.. 겁은 많아가지고..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사는 이유는,
감성적인 내가 부서질 것만 같아서이고.
지독한 글만 골라 붙들고 앉는 이유는,
동요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래,

나처럼 시작은 더디나
후에는 겉잡을 수 없이 물드는 이가 또 어디 있으랴.
(-하고 나니 주변에 그런 이들 투성이로구나.)

그래서 굳이, 내 안의 것과 닮은 것은 읽지 않는다.
그러다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에 나온 이 하나 빠진 동그리처럼.

"맞았다!
아주 꼭 맞았다!
마침내! 마침내!" 만난거다.

즐거운 읽기 시간이었다.

마음에 은하수 띄운 이 책을
나만 지금 본 거지..? 하하.

그래서 더 애틋한 걸로..♡


📖 42p. [나는 지금, 그를 알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나 같은 곳에 살았는데, 지금 처음으로 그를 알았다. 혹 언젠가 그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구름진 하늘 틈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58p. [뭐 다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124p.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초조하거나 슬퍼할 수 없다.] 79p. [각자는 각자의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 오늘 서평, 달달하네~ 끄읕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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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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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 정확히 다섯장을 읽고 덮었었다. 하루키와 나는 '맞지 않는다' 말했었다. 게다가 "그 책 어때요? 어떤 점이 좋아요?"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음.. 야해." "읽기 편해."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는 것. 그러니까, 읽어 본 사람의 평마저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게 하루키를 피해 온 나의 변명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결국 읽어내고야 만 것은 - 또 하나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일, 그 이상의 의미이다. 이건 [컨셉진]에서 담아낸 고운 시선 덕분인데, [어떤 감정은 도착이 느리다. 뒤늦은 만큼 더욱 격렬하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력하게.] .. 아니 읽을 도리가 없었다.

48p.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이 소설은 죽음과의 잦은 대면 덕분에 삶을 들여다 보게 한다. 한번쯤 따라하게 되는 화법의 와타나베도,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나오코도, 사랑스러운 미도리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나를 깨운 건 - 덜컥 죽어버린 나오코의 언니.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처리해 버리던] 사람, 그냥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정리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불쾌해지는 대신 침울해졌던 그 사람. 그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 틀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틀이 들이받아 올 때는 대책없이 피멍이 들고야 마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하는 삶을 사는 나라는 인간 말이다. 쉼 없이 '태엽'을 감아야 지탱되는 나의 삶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항해다' 생각하게 해 준 그 사람..

나를 돌보는 것-

어쩌면 이게 삶의 유일한 임무일지 모른다.

그런 너와 내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삶으로 맞닿는 것.

그렇게 아름다울 내 청춘.

321p. [시간이 흘러 그 작은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그날 일이 진짜로 있었던 건지 아닌지 점점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명 그랬던 것 같고, 환상이라 생각하면 환상인 듯 했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부까지 생생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서른 일곱, 비틀즈의 [Norwegian Wood],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

그가 붙들어 둔 이 공간 안에서

그 어느 날의 나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좋은 밤이겠다.

더불어.. 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기에, 하루키는 '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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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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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상상의 섬 '네버랜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아침까지 떠 있는 별, 가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별을 따라 직진하면 우리는 그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아니, 있었다. (물론.. 작은 요정의 반짝이는 마법 가루 듬~뿍, 거기에 가장 행복한 순간의 상상을 아침해가 밝을 때까지 이어갈 수 있는 끈기가 다소 필요하긴 했지만!)

맨 몸으로 하늘을 날고 싶은 나의 꿈은
그렇게 마음 속 네버랜드에 잠들어 있었더랬다.

중세 유럽의 끝자락,
과학은 아직, 신은 여전히였던 그 시절의 인간은 요정의 존재를 믿는 삶을 살았나보다. 고색창연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눈에는 참 많은 것이 살아 있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그들이 부러워지고 말았다는.. 그런 것.

그 사람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를 상상한다.
반대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면 이내 그를 상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역사를 모른다. 읽기 편한 문장과 명화를 따라 관계도를 익히다 보니, 책 속 인물들에게 흠뻑 빠져 있었을 뿐이다. 구석구석 생각을 더해 적어놓는 콜럼버스의 독서 습관이 나와 닮아 반가웠고, 노트 한 권에 내면을 담아놓은 다빈치의 습관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 책의 2권을 기다리는 마음이 벌써 조급해진다.

그래.. 그런 것이다.

그를 모르기에 나는 그를 상상한다.

네버랜드를 꿈꾸는 밤이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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