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르웨이의 숲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기억한다. 정확히 다섯장을 읽고 덮었었다. 하루키와 나는 '맞지 않는다' 말했었다. 게다가 "그 책 어때요? 어떤 점이 좋아요?"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음.. 야해." "읽기 편해."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는 것. 그러니까, 읽어 본 사람의 평마저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게 하루키를 피해 온 나의 변명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결국 읽어내고야 만 것은 - 또 하나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일, 그 이상의 의미이다. 이건 [컨셉진]에서 담아낸 고운 시선 덕분인데, [어떤 감정은 도착이 느리다. 뒤늦은 만큼 더욱 격렬하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력하게.] .. 아니 읽을 도리가 없었다.
48p.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이 소설은 죽음과의 잦은 대면 덕분에 삶을 들여다 보게 한다. 한번쯤 따라하게 되는 화법의 와타나베도,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나오코도, 사랑스러운 미도리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나를 깨운 건 - 덜컥 죽어버린 나오코의 언니.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처리해 버리던] 사람, 그냥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정리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불쾌해지는 대신 침울해졌던 그 사람. 그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 틀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틀이 들이받아 올 때는 대책없이 피멍이 들고야 마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하는 삶을 사는 나라는 인간 말이다. 쉼 없이 '태엽'을 감아야 지탱되는 나의 삶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항해다' 생각하게 해 준 그 사람..
나를 돌보는 것-
어쩌면 이게 삶의 유일한 임무일지 모른다.
그런 너와 내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삶으로 맞닿는 것.
그렇게 아름다울 내 청춘.
321p. [시간이 흘러 그 작은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그날 일이 진짜로 있었던 건지 아닌지 점점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명 그랬던 것 같고, 환상이라 생각하면 환상인 듯 했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부까지 생생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서른 일곱, 비틀즈의 [Norwegian Wood],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
그가 붙들어 둔 이 공간 안에서
그 어느 날의 나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좋은 밤이겠다.
더불어.. 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기에, 하루키는 '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