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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맨 -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끝없는 모험
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평점 :
이런 일급의 과학 저술가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고인류학을 중심으로 발생학, 해부학, 분자생물학, 비교유전체 등 연관 학문을 딱 그 장면에 걸맞게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다루면서도 시종 흥분을 유지시켜주는 추리소설적 구조로 다루었다. 대단한 필력이었기에 성공했다. 물론 매끄러운 일급의 번역 역시 휴일 내내 수불석권하게 만들었다.
우선 흥미로웠던 것은, 아직 논쟁 중이라지만, 인간의 직립 이유가 섹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브 조이의 말인데, 이 책은 주인공 팀 화이트 외의 조연들에게도 주연급 시간과 정성을 활용해 그들의 주요 업적과 핵심 이론을 깊이 있게 펼쳐 놓았다.
내게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현생 유인원이 우리의 공통 조상의 유골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곳이다. 오히려 아니 차라리 인간과의 공통 조상에서 분리된 뒤 그들만의 특수한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보아야 낫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프리카 유인원은 우리의 조상과 닮지 않았다! (현생 아프리카 유인원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라고 여긴 것 자체가 추리 소설에서 진범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지 않게 한 역할을 했다. 잘못된 결론이라는 말이다. 실제 마이오세 조상의 흔적 일부는 현생 유인원보다 인간에게 더 잘 보존돼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고릴라 계통은 인류 조상과 침팬지가 갈라지기 시작한 뒤에도 여전히 두 종과 이종교배를 했다. 이 말은 종 분화는 여러 차례의 인구집단 고립과 재혼합으로 채워진 길고 긴 서사에 가깝다는 의미다. 인류와 침팬지 사이에 단일한 최종 공통 조상이 있어서 어느 순간 바로 두 계통으로 갈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질척하고 지저분한 결별이었다.”(466)
여튼 아르디의 발견과 발표는, 작가는 핵폭탄 투하에 비견될만한, 학계를 뒤흔든 충격적이고 거대한 사건이라고 말했지만 도대체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학계에서 아르디가 더 많이 받아들여졌음에도, 여전히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루시는 수많은 홍보 덕분에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이야기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아르디는 그런 홍보를 하지 않았다.”(545)
뭐든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인가보다. 신학을 예로 들면, 현대신학의 위대한 발견과 해석들(사본학extual criticism의 성과, 역사적 예수학 등등)이 교회나 성당에 도착하려면 50년 이상이 걸린다.
여담이지만, 한편 요즘 직장 생활하면서, 정치를 바라보면서, 저출산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주 했던 생각이 과학에서도 그렇구나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됐다. 위대한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어느 날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과학적 진실은 상대를 납득시켜 빛을 보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상대가 결국 죽고 새로운 지식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자람으로써 승리한다.” 책상 위의 뼈 쪽으로 몸을 숙이면서, 러브조이는 이를 더 냉소적인 말로 의역했다. “과학은, 교수들이 죽어야 전진한다.”(506)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 그렇게 안하겠다고 난리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영원히 젊게 살겠다는 ‘길가메쉬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으로 새로움을 창출해낼 새로운 세대의 수적 열세가 불러 올 암담함인데, 과연 어찌될지...
마지막으로 꼭 기록했으면 좋겠는 게 하나 있다 이 책의 어떤 내용으로 인해 변화된 내 생활태도이다. 화석맨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정치적 부족적 격전지인 사막 한복판에서, 이삼십명 줄지어 쪼그려 앉아, 바늘만한 화석을 찾기 위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아주아주 정성스럽게, 눈에 불을 켜고 붓질 또 붓질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나보다. 집안 청소든 직장에서의 청소든 나는 <화석맨> 讀了이후 화석맨처럼 청소하게 됐다. 무척 즐겁게. 더럽고 어렵고 힘들어도. 아니 더럽고 어렵고 힘들수록 재밌었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