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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김연수를 세번째 읽다.
블로그에도, 책꽂이에도 김연수의 공간을 만들어 두어야겠다.
한 번 더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조세희의 '난쏘공'은 영 마음이 불편해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은 80년대 국가폭력을 그 소재로 삼으면서도
소설의 위대한 가치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외젠 베르낭의 그림을 보면
예수의 부활 사실을 모른 채 황급히 달려가는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황금빛 배경, 부활의 이미지로
밝은 빛과 희망의 메세지가 담겨 있다.
희선과 주인공 소년이 이 그림을 보는 걸로,
그리고 불가능한 일요일로 표현된
간절히 바라나 이루어지기 힘든 소망을 이루는 걸로
따뜻한 마무리.
소설 속 책 토마슨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읽어 보아야겠다.
in book
하지만 우주의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순간은 단 한 번 뿐이예요.
태어나서 단 한 번.
우리가 죽을 때.
그렇게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것이죠.
영원히 빛으로 죽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아빠?
아빠는 이 별을 떠났다. 어쩌면 이 우주를. 아빠 때문에 나는 외로워졌다.
외로움이란 그런 것,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네가 온 거야. 난 닮은 사람들은 그 어디에 있든 지구와 달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믿거든.
우리는 꽤 닮았으니까.
우울에는 절망과는 다른, 나름의 침몰 방식이 있었다.
절망이 강물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라면, 그래서 어느 정도 내려가면
다시 딛고 올라설 바닥에 닿는 식의 침몰이라면,
우울은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심해로 빠져드는 일과 비슷했다.
그리고 알았지. 누군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운다면,
그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한때는 엄마의 모든 기쁨이었을 내가,
어떤 경우에도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말아야 했을 내가
아픈 몸으로, 우는 얼굴로, 다시 한번 더, 엄마, 라고 소리내어 불러봤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에 대해서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눈을 뜨고 꾸는 꿈 속의 일,
그러니까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본 그 수많은 눈송이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게, 세밀화처럼 선명하게, 해와 달처럼 유일무이하게
내 눈과 코와 입과 귀와 몸에 와 닿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평범해지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나를 외롭고 가난한 소년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말할 수 없다'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가감없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는 말만을 출판한 것일 뿐인데...
벚꽃이 그토록 아름답게 피는 까닭은 바다를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여름의 북방쇠찌르레기 새끼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그때 나는 뜨거운 여름 안에 있었지.
그때 나는 영원을 생각하고 있었어.
하늘이나 바다 같은 것, 혹은 시간이나 공간, 우주 같은 것.
어쩌면 사랑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