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 이은 자극적인 제목의 책.
'노는만큼 성공한다'는 절대 책장을 열어보고 싶지 않은 제목보다는 백만배 낫다.
 
심리학은 '학문'임에도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대학 1학년 교양 시간에 심리학을 선택하고 강의를 들을 때도 그랬다.
도무지 공부같지 않은 것.
행동의 동기를 탐구하는 심리학은 원초적일 수 밖에 없고
원초적인 건 언제나 재미있는 거니까.
 
독일에서 13년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이런 제목을 따 책을 쓰는 것도 자연스럽다.
김정운 교수가 자신의 책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며 배아파 하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내 생각엔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니
김정운 교수는 낙담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등
김정운이 만난 10명의 남자들의 인터뷰집.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신영복이다.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기 위해 한글 서체를 연구했단다.
소주 '처음처럼'과 이 책의 제목도 이분의 작품.
북악산과 한강을 묘사한 '서울'이라는 글자도 맘에 든다.
담백한 철학이 담긴 필체라고 해야 하나.
무기수 시절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읽으려고 메모해 둔다.
 
그리고 차붐...
독일에서 가족과 함께 했던 아침식사 프리슈틱.
한겨울 독일의 바게뜨라 할 수 있는 뵈르첸 빵을 직접 사러 가고
딱 3분 익힌 계란을 받침대에 올려 수저로 떠먹던
가족과 함께했던 아침식사의 기억, 서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떠들어대는 아이들.
이런 따뜻한 정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다.
 
매번 슬프다는 작가 박범신의 2010년작 '은교'도 읽어 보아야겠다.
그런(?)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니나,
작가가 매번 슬프다지 않은가.
슬픔이 절절이 묻어나는 것. 난 슬픈 게 좋다.
 
스토리텔링의 시대.
신문,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는 이유 모두가
오로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공감한다.
 
한 사람의 물건은 존재증명이고, 존재확인의 도구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그 과정을 솜털처럼 느끼고 겪을 수 있게
그리하여 '의미'를 새길 수 있게 한다.
 
in book
 
또 다른 존재확인의 방식이 있다. 이야기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다.
사실 문명사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얼마전 일이다.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일이다.
이를 일컬어 '내러티브 전환'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를 측정했다.
약 5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불과 5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과거나 미래를 사는게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5초의 객관적 단위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
제발 현재를 구체적으로 느끼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간이 미치지 않는다.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직함에는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매개해주는 물건을 가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물건에 관한 이야기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된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매개되는 이야기보다 훨씬 값진 이야기가 된다.
자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flow) 이론이다.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상황,
그래서 시간이 도무지 어떻게 흐르는지 느낄 수도 없는 상황.
 
책상은 이어령에게 존재의 이유다. 사람들과의 소통 부재의 외로움을 피해 위안을 얻는 곳이고,
수천 수만의 언어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호령하는 사열대이기도 하다.
많은 이에게 정 많고 따뜻한 선생이지만 정작 자녀들에게는 등만 보여준 죄의식이 함께 공존하는
레종 데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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