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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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건 역사가의 꿈, 수집가의 꿈, 혁명을 원하는 자의 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의 진정한 꿈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을 잃어본 적이 있는 자의 꿈이다.'

책과 사람이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인터뷰. 

그들은 한결같이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할 때, 한차례 성장통에 시달릴 때, 세계와 소통하는 문을 닫아 걸고, 자신만의 골방, 다락방에 기어 들어 책에 빠져 들었다. 

기적처럼 영혼은 어떤 깨달음을 얻고, 내가, 그리고 세상이 무한 확장되는 공통의 경험칙. 

하여 책을 읽는 행위는 쾌락의 도구라기보다는
어떤 수양 또는 고행의 과정에 더 가까운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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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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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아주 얇은 책. 
열정의 기억처럼 강렬하고 짧은...

필립 빌렝의 '포옹'을 같이 빌리려 했는데 
도서관에 없어 아니 에르노만 읽었다.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솔직하고 사실적인 글쓰기.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 '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 - 
죽게 되더라도 상관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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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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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난중일기를 내면화하여, 그 간결하고 삼엄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를 소설화하였다.   

작가가 아니었음 내가 난중일기를,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일이 있겠는가. 

무의미와 무내용, 허망, 붕당의 어지러운 정치 논리, 개별적 죽음에 대한 적의의 부재, 안팎의 적들.  

이 모든 걸 넘어서, 오직 온 바다를 피로 물들여, 적이 백성과 임금에게 가려는 걸 막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 영웅의 절대 고독. 

마지막 해전 노량에서의 죽음이 쓸쓸하고 가엾다. 

'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

in book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역류 속에서 삶 또한 명료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그것은 순류도 역류도 아니었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 모호함을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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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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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진짜 본성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한 여자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는 못하므로 내가 그녀를 소유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한 여자를 꿰뚫는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꿰뚫지 못한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잠깐의 서사가 있을 뿐 줄곧 사유가 펼쳐진다. 
스토리보다는 언제나 문장에 천착하니 나에겐 소중. 

음악, 언어, 존재에 대해...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시 사랑은... 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식으로 사랑으로 돌아온다. 

정말 어려운 글임에도 매혹적이다. 

가령 이런 문장
'모든 독서는 출애굽이다'
뭔가 환상적이고 스케일이 장대하고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이 책으로 키냐르를 먼저 만났다면 다음 책 읽기가 주저스러웠을 것이다. 이 책에 비하면 '로마의 테라스'는 지극히 평범한(읽기 수월한) 소설책이다.
 
in book

우리는 또한 연어들과도 같다. 우리의 삶은 그것을 태어나게 한 행위에 매혹된다. 삶의 근원에 홀린다. 여명에 홀린다.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의 삶.

사랑이란 교환 이상의 것, 감정의 상호작용 이상의 것, 상호간의 영향력 이상의 것, 심리적 유대 이상의 것, 사회학적 매듭 이상의 것이다. 사랑은 모든 언어에 앞선 단락 - 즉 매혹, 봉인에서 빠져 나온 단락 - 에서 발원한다. 

사랑은 따로 떨어져서 행해진다. 마치 생각이 따로 떨어져 이루어지듯이, 독서가 따로 떨어져 행해지듯이, 음악이 침묵 속에서 구상되듯이, 꿈꾸기가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말이다. 

하나의 이미지란, 눈 깜짝할 짧은 순간에, 그 안에서 옛날이 지금을 만나 새로운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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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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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논문 biblio-

2012/12/08 17:2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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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작가
한병철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12.03.05

재독 한국 학자가 독일어로 쓴 논문을 번역한 책이다. 
문화 비평가이자 철학자 한병철. 

첫 문장에서부터 논증의 주제가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다. 
일단 주장을 쏜 뒤 논거를  요모조모 풀어 놓는 솜씨의 세련됨이라니. 
논문을 이렇게 예술적으로 쓸 수 있구나. 

박테리아적, 면역적, 부정성에 방어하는 시기는 종언을 고하고, 우린 긍정성 과잉, 성과주의로 인한 심리적 질병의 시기를 맞고 있다. 

'완전 공감'
이 분의 글은 명징하면서도 글맛이 감칠맛이다. 

평소 멀티태스킹이 잘 안돼 자기비하에 빠져 있던 나로선 심히 맘에 드는 말. 멀티태스킹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단다. 과거 수렵사회에서 요구되던 능력이라고.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 깊은 심심함에서 오는 거라고. 

그렇지만 여전히 회사에선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니 일단 출근하면 온 신경을 열어 두어야겠지. 전화 받으면서 메모는 기본, 회의에서 오가는 말도 다 주워 들어야 한다. 

in book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원래 그만둔다는 것을 뜻하는 안식일도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날,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그것은 막간의 시간이다. 신은 창조를 마친 뒤 일곱째 날을 신성한 날로 선포했다. 그러니까 신성한 날은 목적 지향적 행위의 날이 아니라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인 것이다.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욱 가속화된 발전을 위해 타자에 의한 착취에서 자기착취로 전환한다. 이러한 역설적 자유로 인해 성과주체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자유와 폭력이 하나가 된다. 자기 자신의 주권자, 호모 리베르를 자처하는 성과주체는 호모 사케르임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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