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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평점 :
'나는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진짜 본성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한 여자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는 못하므로 내가 그녀를 소유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한 여자를 꿰뚫는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꿰뚫지 못한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잠깐의 서사가 있을 뿐 줄곧 사유가 펼쳐진다.
스토리보다는 언제나 문장에 천착하니 나에겐 소중.
음악, 언어, 존재에 대해...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시 사랑은... 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식으로 사랑으로 돌아온다.
정말 어려운 글임에도 매혹적이다.
가령 이런 문장
'모든 독서는 출애굽이다'
뭔가 환상적이고 스케일이 장대하고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이 책으로 키냐르를 먼저 만났다면 다음 책 읽기가 주저스러웠을 것이다. 이 책에 비하면 '로마의 테라스'는 지극히 평범한(읽기 수월한) 소설책이다.
in book
우리는 또한 연어들과도 같다. 우리의 삶은 그것을 태어나게 한 행위에 매혹된다. 삶의 근원에 홀린다. 여명에 홀린다.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의 삶.
사랑이란 교환 이상의 것, 감정의 상호작용 이상의 것, 상호간의 영향력 이상의 것, 심리적 유대 이상의 것, 사회학적 매듭 이상의 것이다. 사랑은 모든 언어에 앞선 단락 - 즉 매혹, 봉인에서 빠져 나온 단락 - 에서 발원한다.
사랑은 따로 떨어져서 행해진다. 마치 생각이 따로 떨어져 이루어지듯이, 독서가 따로 떨어져 행해지듯이, 음악이 침묵 속에서 구상되듯이, 꿈꾸기가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말이다.
하나의 이미지란, 눈 깜짝할 짧은 순간에, 그 안에서 옛날이 지금을 만나 새로운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