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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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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구성이라 고민없이 펀딩한 놀이터는 24시! 이런 놀이터가 또 어디 있을까 싶게 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가볍지만 또 가볍지 않게 다가오는 이야기들,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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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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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 03 뉴욕]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2015)

 

문학동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그 세번째 이야기인 뉴욕, 나의 사적인 도시-

 

My Own Private City라는 영문제목에선 'Own'이,

나의 사적인 도시라는 한글제목에선 '사적인'이라는 단어가 나는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private'라는 단어가 '사적인'이 된, 나의 사적인 도시 라는 제목이 너무너무 좋다-

이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책.

 

책을 읽으면서도, 주변에서 책 출간 소식들을 들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 좋은 책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에세이집 치고 그렇게 쉽게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라서, 그냥 가볍게, 쉽게 공감되고 유행하는 에세이를 생각하고 책을 들었다간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조금만 들여다보고서 글을 따라가다보면 이야기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글을 일기처럼 조금씩 조금씩 남겨둘 수 있는 사람이라니-

 

뉴욕의 걸어본다는 글과 도시 뿐 아니라 현대 미술에 대한 지식과 정보, 보는 눈까지 가지고 있어 책을 읽으며 미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함께 미술관을 다녀오는 느낌이기도 했다. 잘 몰라도 그저 보는 게 좋아서 종종 미술관을 가는 내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고, 나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게 응원을 해주는 글들도, 그리고 미술을 본다는 것에 대한 부담, 어려움을 덜어주는 위안도 되었다. 중간중간 삽입되어있는 작품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물리학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시 여기면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왜 인정하기가 어려울까? 우리에겐 생래적으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색이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기호는 그림을 보는 눈의 바탕이 될 수는 있어도 그림을 보는 능력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한국어를 안다고 해서 어려운 논문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필립 거스턴의 그림 속 분홍색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분홍색은 도발적이고 잔인하기까지한데 분홍색의 그런 다른 면을 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문화적'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그림을 모르면 야만인이라고 취급받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안다. 특히 현대 이후의 미술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도 없던 중세에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이었다. 그랬기에 대중은 시각예술의 언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광고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처럼.

 

p.41-p.42 '마음대로' 보기(2006.6), 1부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나'를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그녀의 모든 것들의 집합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면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달까.

 그런데 이렇게 잡다하게 닮았으면서도 아무것도 닮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곰곰이 들여다보면 외롭고 허무하고 우스꽝스럽고 비어 있고 지나치게 진지하고도 별 볼 일 없는 게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감동이다.

 

p.66 닮음(2006.10), 1부

 

 

지우기 힘든, 내 머릿속 너무나 명백한 사실들, 기억들이 있다. 내가 아무리 변명하고 변형하고 지우려 해도 그곳에 그렇게 남아 있다. 놀랍도록 선명하게 방안을 채우며, 커다랗고 잔인하게.

 

p.69 코끼리 드레스(2006.10), 1부

 

붕 뜬 이방인 신세인 것도 그리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말과 관련된 이유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

 

p.74 이방인(2006.11), 1부

 

어디선가의 리뷰에서 정말 좋은 산문-이다 라는 구절을 봤는데,

이 책은 정말 '에세이'보다는 '산문'이 참 잘 어울리는 글이다.

 

좋은 산문, 그리고 참 많은 노력이 담긴 책이다.

 

 

작년 이맘때부터 함께 걷고 있는, 걸어본다- 계속계속 이렇게 좋은 글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덧) 내가 가장 좋았던 subtlety 부분이 저자인 박상미 선생님 인터뷰 기사에 있는 걸 봤다.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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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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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문성태의 단편들은, 그래서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곳의,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가슴이 묵직하지만 뭉글뭉글해진다.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덮으며 보면 이게 곧 내 옆의 이야기이고, 내가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그렇게 우리가 늘 의식하기는 어렵지만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사는 삶의 부분을 함께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같이 채워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라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무겁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언젠가 나에게 어떤 일들이 다가와도 이 이야기들처럼 잘- 지나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는 아이였을 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다 자란 지금 아이가 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얘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였지만, 이야기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작가, 그리고 '내가 가장 가고자 하던 길'인 그 일을 하고 있는 작가는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는 우리들도-

소리들은 서로 몸을 섞지 않는다. 멀고 가깝고, 높고 낮고 간에 소리들은 저마다 고유하다. 붉은 물감에 노란 물감을 섞으면 주황이 되고, 파란 물감을 섞으면 보라가 되지만 소리는 섞여도 다른 소리가 되지 않는다. 지저귀는 새소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섞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웃음소리는 엄마가 웃는 소리와 섞이지 않는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일어도 소리들은 양파처럼 겹을 이룬 채 모양을 흩뜨리지 않는다. 아이가 느끼기에 모든 소리들은 표정과 감정을 갖고 있다.

p.74-p.75 낚시하는 소녀


시간과 기억이 묻힌 집. 어쩔 수 없이 그는 맥맥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는 동자승이 되기 전 고향이나 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혹시 자신도 이런 집에서 나고 자랐을까. 왠지 공허하고 그리운 마음이 차올랐다. 자신이 묵은 물건들에 빠진 건 가질 수 없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p.99 밥그릇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덤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보통 원혼들인가.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었다.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이름 없이, 찾는 발길 없이 세월에 깎이고 있었다.

p.178 성묘


어떤 사연도 없이 외진 섬을 찾아 갔다가 알 수 없는 인생을 보고 오는 젊은이들처럼 처녀도 그런 여행길로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나이는 제 그리움으로 채색된 엉뚱한 여행들을 하는 나이니까. 기억에는 오래 남지만 이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한나절의 여행을 처녀는 다녀오는지도 모른다.

p.196 성묘


여자는 거실 창가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찻잔에 입바람을 불 때마다 어둠이, 여자의 등 뒤에 뿌리를 둔 어슴푸레한 기운이 소매에 앉은 분필 가루처럼 조금씩 불려나가는 것 같았다. 창은 번했다.

p.226 국화를 안고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왔습니다…… 웬일인지 여자는 그 말에 들린 듯 며칠간 시름겨웠다. 반발하고 부정하고 싶은 가운데도 한편으로 제 마음이 공명하는 걸 느꼈다. 그녀는 그 말에 위무를 받고 있었고 그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늙은이는, 혹은 그 세대는 그 말을 허위나 엄살이 아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p.230 국화를 안고


"그건 아주 어렵게 살아왔다는 소리야"라고 말하다 말고 여자는 주체할 수 없는 연민에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래, 우리가 애타게 불러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아. 누구를 향한 연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p.231 국화를 안고

먼저 아주 허황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독자에게 미안하다. 지금껏 나는 삶이니 세계니 하는 것들을 분석하는 입장에서 소설을 써왔다. 삶이 믿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판타지의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믿지만 적어도 나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겪은 명백한 세계만을 그리려고 애써왔다. 내 소설에 조금의 과장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삶을 포위한 현실을 명확히 그리기 위해서였다.
양해를 구한 김에 이 소설이 어머니를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마저 밝히겠다. 책장을 들추다보면 간혹 이 책을 누구누구에게 바친다는 저자의 말이 앞에 달리는데, 이제껏 나는 누구에게 바치는 소설을 써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몇년째 치매에 걸려 나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p.306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렇다고 그 기억이 어머니 인생의 한부분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자식들이 다가갈 수 없는 깊은 기억일는지 몰랐다.

p.308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소리가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오야" 하고 대답했고 "밥 좀 줘" 하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와 밥은 마치 뇌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라 가슴 같은 곳에 박히거나 뒤꿈치의 굳은살 같은, 기억과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 같았다.

p.309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 무렵인지 그뒤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고 생각했다. 또 시간이 흘러서는 어른들도 인생에 대해서는 서투르고 허술한 큰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말이다.

p.312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이야기가 끝나면 어머니는 "신기하지 않니? 그러나 하나도 신기한 얘기들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얘기들은 모두 사실이니까" 하셨다.

p.322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첫 자화상을 그릴 때 내 초상은 깊은 골짜기를 밟아가는 남녀의 행로처럼 암울했다. 내 생에 닿을 수 있고, 가꿀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스물대여섯 문청은 많은 길들을 포기하고 문학의 길에 투신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며, 작가는 인생에 단 한편을 남긴다는 마음 붉은 문학주의자였다.

다시 「길」이라는 단편을 지을 때가 되었다. 겨울 동안 두번째 자화상을 그려서 이 소설집에 수록하고 싶었으나 연이 닿지 못했다. 두번째 결산처럼 이 무렵에 드는 마음은 있다. 문학은 결코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것, 내가 가장 가고자 하던 길이었다는 것. 그리고 문학도 나이를 먹는지 모른다는 것, 그러므로 인생에 단 한편은 없으며 어쩌면 겸손한 실패로 점철되는 게 문학인생이 아닐까……

p.325-p.326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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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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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 02_경주]

이 고도를 사랑한다(강석경, 2014)


 경주가 신라의 터전이었던 탓에, 그리고 이 도시가 여전히 고도이기 때문에, 이 책은 역사 이야기가 꽤 많이 들어있지만-그래서 알고 보면 더 좋겠지만- 가르치려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걸으며 소소하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그리고 봄에서 겨울까지, 사계절을 경주의 속도("경주, 영악함 없는 이 느림")로 지나는 느낌.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게 지나지만 그 순간순간들이 마음 가득 느껴지는 그런, 짧지만 긴 산책.

 

 저자에게 경주는 영혼의 고향같은 곳이다. 지난 번 걸어본다 첫 번째 이야기인 용산편을 리뷰하면서 내가 내게 특별한 공간들을 언급했던 것처럼 저자는 "자연은 온 지구에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나라와 지역에 따라 특별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내게는 인도와 그리스, 경주가 그러하다. (p.178 epilogue 경주에서 내가 점유하는 진정 좋은 것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걸어본다' 시리즈는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가능하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직접 걸어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걸어 온, 혹은 걷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경주'

 어렸을 땐, 경주가 그저 그런 뻔한 소풍, 여행지, 지루한 유적지였다. 어린 아이의 눈을 끌만한, 재미를 책임지는 흥미로운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 크고나서 경주는 막연히 다들 가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여행지 정도로 변했던 것 같다. 다들 예쁘다고 하고 가고 싶다고 하는 그런 곳- 부산에서 자란 내게 경주는 그 때까지도 그냥 학창시절에 자주 갔던 견학장소,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장소였기에 서울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렇게 막연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리고서 직접 찾았던 경주는, 고즈넉하고 따뜻한 마을. 우리 마을은 아니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그런데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마을. 그런 마을의 느낌이었다. 꾸미지 않았지만 화려하고 정돈된 것 같은, 그리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런 곳.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새카맣게 타면서 자전거로 돌아다녔던 경주에서의 하루도, 그 때가 아쉬워 같은 해 다시 찾았던 겨울, 하얀 입김을 불어대며 뛰어다녔던 경주에서의 기억도, 참 한결같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산림환경연구소 편을 보면서는 문득 식물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들 이름이 재밌다.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유추하는 것도 그렇고, 생긴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도 그렇고 상상만으로도. 대학들어오고서 갔었던 아침고요수목원, 겨울에 찾았던 제주도, 그리고 내가 맘 속에 담아두고 있는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인 청량산과 전남 장성 편백나무 숲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남은 한 해 안에 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마치, '경주는 이런 곳'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 귀여웠던 경주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삼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들어서기로 하자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지역 발전을 위해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반대한 이유는 "경주여고 애들 바람 든다"는 거였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일도 경주란 지방의 특수성이라 할까.
p.174 postscript 경주, 영악함 없는 이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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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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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 01 용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광호, 2014)

 

 가끔 책을 읽다보면, 공간에 집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건축, 공간, 도시, 지리.... 평소에 책을 보면서 비교적 내가 중점에 두지 않는 요소들이다. 혼자 살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그 삶에 익숙해지면서부터 나는 좀 더 내가 있는 공간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울이 특별하고, 부산이 특별했다. 내 방이 특별하고, 우리 집이 또 다르게 특별하고. 그리고 스페인이 그랬고.

 내겐, 고3 때 자습시간 틈틈이 읽었던 오기사의 바르셀로나 이야기들(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오기사, 2006)이, 그리고 서울에서 보낸 대학생활 동안의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오영욱, 2012),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정희재, 2010)'들이 내겐 나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문학동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철저하게 공간에 집중한 글이다.

'공간, 산책, 거리, 동네, 나라...' 따로 떨어뜨려 놓을 수도 있는 이 단어들을 나란히, '걷기-산책-거리-삶'으로 이어붙였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이야기이자 공간은 용산. 이광호 작가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다.

 

난다의 >걸어본다<

 

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이 시리즈는 시작됐다. 좁게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넓게는 내가 사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산책이라는 '오감吳感 열기'를 통해 나만의 사유 자유 여유를 확장시켜가는 발 디딤의 아름다움을 '삶'이라 불러보기 위함이랄까. 만만하나 그리 간단치 않은 텍스트들이 곳곳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다.

  산책 에세이라고 해서, 책의 외관처럼, 가볍게, 들었다가 이 산책자의 목소리와 발걸음의 무게에 조금 놀랐다. 동네와 거리마다 담긴 이야기들은 짧지만 묵직하고 울림이 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 걸음들을 따라 용산의 거리를 걷다보면, 내가 사는 이 도시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나 한 번쯤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시간들이 곧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시간들을 보듬으며 나를 안아주게 된다. 앞으로의 나의 시간들이, 나의 이야기들이, 나의 걸음들이 조금 더 소중해진다.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다. 우리가 걷는다는 것은.

 

 추천사에서 소설가 강석경은 "서울서 25년간 발딛고 살 때 나는 지층의 울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무관심했다고 하는 편이 정직하다. 한 문학평론가의 '용산에서의 독백'을 읽고 그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삶의 시각을 확대시킨다."고 했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살고 있다.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 이전의 모습들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가려지는 순간순간.

 

p.7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pp.8-9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너무 많은 생명들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당했다. 용산과 세월호 사이의 서로를 마주보는 비극의 연대기와 '국가'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무력감과 죄의식은 오래고 익숙한 것이나, 한 시대의 애도는 한 개인의 애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글쓰기는 피할 수 없이 애도의 제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망각과 마비와 자기기만으로부터 끈질긴 애도를 지키는 것은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다림의 문제이다.

p.11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도시의 지도를 오래 들여다본 이후였다.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지 않은 곳, 차마 그곳에서 살 수 없는 곳들이 있었다. 이 도시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소한 통증이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지명은 많지 않았다. 지면들은 오래된 회한과 단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곳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에서 이곳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한 교통 환경을 갖고 있었고 기념관과 산책로가 있었으며,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아주 멀지 않았다. 집세가 부담스러웠지만 이 도시의 다른 곳에서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서도 멀지 않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방의 느낌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곳.



p.13

철길이 나누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건널 수 있는 장소들과 건널 수 없는 시간들 사이에서 내가 서 있다는 무서운 진실.



p.14

150년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들은 이 거리의 지층에서 보이지 않는 나이테를 만들었다.



p.16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기억의 전쟁터: 효창공원

p.33

죽음의 내용을 갖지 못한 채 죽음의 의미를 둘러싼 오랜 기다림이 묻힌 곳. 이를테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세우는 가묘 같은 것들.


몇 세기 전의 폐허: 청파동

p.36

늙은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건물을 칭칭 둘러싼 검은 넝쿨과 한쪽이 허물어져 어둠이 새어나오는 낡은 기와와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닫힌 창문들은 불길한 침묵만을 보여준다. 이 무덤 같은 폐허 앞에 서 있으면 계절의 경꼐를 알 수 없다.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시작되는 것인지.



완벽한 폐허는 계절을 넘어선다. 흙이 입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조용히 상상한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을.


세운상가의 은밀한 그림자: 용산전자상가

p.45

어떤 시간도 기억의 프레임 안에서는 누추하고 은밀해진다. 조금 불편하고 희미하게 아플 수도 있다. 어떤 풍경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는 생기를 잃는다.


붉은빛의 가설무대: 용산역

p.52

라스베이거스는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서 있는 호텔들의 도시다. 낮이면 살인적인 햇빛을 피해다녀야 하지만, 밤이면 이 도시는 금지가 없는 해방구가 된다. 이 도시의 허구적인 느낌은, 이를테면 지구라는 행성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그랜드캐니언의 압도적인 숭고함과 비견될 수 있다.


철교로 가는 고양이의 시간: 서부이촌동

p.59

다리는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장소와 장소를 단절시키는 참혹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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