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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ㅣ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걸어본다 01 용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광호, 2014)
가끔 책을 읽다보면, 공간에 집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건축, 공간, 도시, 지리.... 평소에 책을 보면서 비교적 내가 중점에 두지 않는 요소들이다. 혼자 살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그 삶에 익숙해지면서부터 나는 좀 더 내가 있는 공간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울이 특별하고, 부산이 특별했다. 내 방이 특별하고, 우리 집이 또 다르게 특별하고. 그리고 스페인이 그랬고.
내겐, 고3 때 자습시간 틈틈이 읽었던 오기사의 바르셀로나 이야기들(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오기사, 2006)이, 그리고 서울에서 보낸 대학생활 동안의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오영욱, 2012),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정희재, 2010)'들이 내겐 나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문학동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는 철저하게 공간에 집중한 글이다.
'공간, 산책, 거리, 동네, 나라...' 따로 떨어뜨려 놓을 수도 있는 이 단어들을 나란히, '걷기-산책-거리-삶'으로 이어붙였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이야기이자 공간은 용산. 이광호 작가의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다.
난다의 >걸어본다<
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이 시리즈는 시작됐다. 좁게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넓게는 내가 사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산책이라는 '오감吳感 열기'를 통해 나만의 사유 자유 여유를 확장시켜가는 발 디딤의 아름다움을 '삶'이라 불러보기 위함이랄까. 만만하나 그리 간단치 않은 텍스트들이 곳곳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다.
산책 에세이라고 해서, 책의 외관처럼, 가볍게, 들었다가 이 산책자의 목소리와 발걸음의 무게에 조금 놀랐다. 동네와 거리마다 담긴 이야기들은 짧지만 묵직하고 울림이 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 걸음들을 따라 용산의 거리를 걷다보면, 내가 사는 이 도시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나 한 번쯤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시간들이 곧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시간들을 보듬으며 나를 안아주게 된다. 앞으로의 나의 시간들이, 나의 이야기들이, 나의 걸음들이 조금 더 소중해진다.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다. 우리가 걷는다는 것은.
추천사에서 소설가 강석경은 "서울서 25년간 발딛고 살 때 나는 지층의 울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아니 무관심했다고 하는 편이 정직하다. 한 문학평론가의 '용산에서의 독백'을 읽고 그것을 깨달았다. 역사는 삶의 시각을 확대시킨다."고 했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살고 있다.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 이전의 모습들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가려지는 순간순간.
p.7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 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pp.8-9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너무 많은 생명들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당했다. 용산과 세월호 사이의 서로를 마주보는 비극의 연대기와 '국가'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무력감과 죄의식은 오래고 익숙한 것이나, 한 시대의 애도는 한 개인의 애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글쓰기는 피할 수 없이 애도의 제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망각과 마비와 자기기만으로부터 끈질긴 애도를 지키는 것은 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다림의 문제이다.
p.11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도시의 지도를 오래 들여다본 이후였다.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지 않은 곳, 차마 그곳에서 살 수 없는 곳들이 있었다. 이 도시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소한 통증이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지명은 많지 않았다. 지면들은 오래된 회한과 단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곳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에서 이곳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한 교통 환경을 갖고 있었고 기념관과 산책로가 있었으며,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아주 멀지 않았다. 집세가 부담스러웠지만 이 도시의 다른 곳에서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서도 멀지 않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방의 느낌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곳.
p.13
철길이 나누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건널 수 있는 장소들과 건널 수 없는 시간들 사이에서 내가 서 있다는 무서운 진실.
p.14
150년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들은 이 거리의 지층에서 보이지 않는 나이테를 만들었다.
p.16
나는 기다림 이전에 있고, 너는 기다림 너머에 있다. 기다림을 넘지 않으면 너에게 갈 수 없다.
기억의 전쟁터: 효창공원
p.33
죽음의 내용을 갖지 못한 채 죽음의 의미를 둘러싼 오랜 기다림이 묻힌 곳. 이를테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세우는 가묘 같은 것들.
몇 세기 전의 폐허: 청파동
p.36
늙은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건물을 칭칭 둘러싼 검은 넝쿨과 한쪽이 허물어져 어둠이 새어나오는 낡은 기와와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닫힌 창문들은 불길한 침묵만을 보여준다. 이 무덤 같은 폐허 앞에 서 있으면 계절의 경꼐를 알 수 없다.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시작되는 것인지.
완벽한 폐허는 계절을 넘어선다. 흙이 입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조용히 상상한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을.
세운상가의 은밀한 그림자: 용산전자상가
p.45
어떤 시간도 기억의 프레임 안에서는 누추하고 은밀해진다. 조금 불편하고 희미하게 아플 수도 있다. 어떤 풍경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는 생기를 잃는다.
붉은빛의 가설무대: 용산역
p.52
라스베이거스는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서 있는 호텔들의 도시다. 낮이면 살인적인 햇빛을 피해다녀야 하지만, 밤이면 이 도시는 금지가 없는 해방구가 된다. 이 도시의 허구적인 느낌은, 이를테면 지구라는 행성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그랜드캐니언의 압도적인 숭고함과 비견될 수 있다.
철교로 가는 고양이의 시간: 서부이촌동
p.59
다리는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장소와 장소를 단절시키는 참혹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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