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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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 문성태의 단편들은, 그래서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곳의,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가슴이 묵직하지만 뭉글뭉글해진다.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덮으며 보면 이게 곧 내 옆의 이야기이고, 내가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그렇게 우리가 늘 의식하기는 어렵지만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사는 삶의 부분을 함께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같이 채워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라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무겁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언젠가 나에게 어떤 일들이 다가와도 이 이야기들처럼 잘- 지나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는 아이였을 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다 자란 지금 아이가 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얘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였지만, 이야기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작가, 그리고 '내가 가장 가고자 하던 길'인 그 일을 하고 있는 작가는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는 우리들도-

소리들은 서로 몸을 섞지 않는다. 멀고 가깝고, 높고 낮고 간에 소리들은 저마다 고유하다. 붉은 물감에 노란 물감을 섞으면 주황이 되고, 파란 물감을 섞으면 보라가 되지만 소리는 섞여도 다른 소리가 되지 않는다. 지저귀는 새소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섞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웃음소리는 엄마가 웃는 소리와 섞이지 않는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일어도 소리들은 양파처럼 겹을 이룬 채 모양을 흩뜨리지 않는다. 아이가 느끼기에 모든 소리들은 표정과 감정을 갖고 있다.

p.74-p.75 낚시하는 소녀


시간과 기억이 묻힌 집. 어쩔 수 없이 그는 맥맥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는 동자승이 되기 전 고향이나 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혹시 자신도 이런 집에서 나고 자랐을까. 왠지 공허하고 그리운 마음이 차올랐다. 자신이 묵은 물건들에 빠진 건 가질 수 없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p.99 밥그릇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덤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보통 원혼들인가.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었다.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이름 없이, 찾는 발길 없이 세월에 깎이고 있었다.

p.178 성묘


어떤 사연도 없이 외진 섬을 찾아 갔다가 알 수 없는 인생을 보고 오는 젊은이들처럼 처녀도 그런 여행길로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나이는 제 그리움으로 채색된 엉뚱한 여행들을 하는 나이니까. 기억에는 오래 남지만 이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한나절의 여행을 처녀는 다녀오는지도 모른다.

p.196 성묘


여자는 거실 창가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찻잔에 입바람을 불 때마다 어둠이, 여자의 등 뒤에 뿌리를 둔 어슴푸레한 기운이 소매에 앉은 분필 가루처럼 조금씩 불려나가는 것 같았다. 창은 번했다.

p.226 국화를 안고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왔습니다…… 웬일인지 여자는 그 말에 들린 듯 며칠간 시름겨웠다. 반발하고 부정하고 싶은 가운데도 한편으로 제 마음이 공명하는 걸 느꼈다. 그녀는 그 말에 위무를 받고 있었고 그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늙은이는, 혹은 그 세대는 그 말을 허위나 엄살이 아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p.230 국화를 안고


"그건 아주 어렵게 살아왔다는 소리야"라고 말하다 말고 여자는 주체할 수 없는 연민에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래, 우리가 애타게 불러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아. 누구를 향한 연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p.231 국화를 안고

먼저 아주 허황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독자에게 미안하다. 지금껏 나는 삶이니 세계니 하는 것들을 분석하는 입장에서 소설을 써왔다. 삶이 믿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판타지의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믿지만 적어도 나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겪은 명백한 세계만을 그리려고 애써왔다. 내 소설에 조금의 과장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삶을 포위한 현실을 명확히 그리기 위해서였다.
양해를 구한 김에 이 소설이 어머니를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마저 밝히겠다. 책장을 들추다보면 간혹 이 책을 누구누구에게 바친다는 저자의 말이 앞에 달리는데, 이제껏 나는 누구에게 바치는 소설을 써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몇년째 치매에 걸려 나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p.306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렇다고 그 기억이 어머니 인생의 한부분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자식들이 다가갈 수 없는 깊은 기억일는지 몰랐다.

p.308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소리가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오야" 하고 대답했고 "밥 좀 줘" 하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와 밥은 마치 뇌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라 가슴 같은 곳에 박히거나 뒤꿈치의 굳은살 같은, 기억과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 같았다.

p.309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그 무렵인지 그뒤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고 생각했다. 또 시간이 흘러서는 어른들도 인생에 대해서는 서투르고 허술한 큰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말이다.

p.312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이야기가 끝나면 어머니는 "신기하지 않니? 그러나 하나도 신기한 얘기들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얘기들은 모두 사실이니까" 하셨다.

p.322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첫 자화상을 그릴 때 내 초상은 깊은 골짜기를 밟아가는 남녀의 행로처럼 암울했다. 내 생에 닿을 수 있고, 가꿀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스물대여섯 문청은 많은 길들을 포기하고 문학의 길에 투신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며, 작가는 인생에 단 한편을 남긴다는 마음 붉은 문학주의자였다.

다시 「길」이라는 단편을 지을 때가 되었다. 겨울 동안 두번째 자화상을 그려서 이 소설집에 수록하고 싶었으나 연이 닿지 못했다. 두번째 결산처럼 이 무렵에 드는 마음은 있다. 문학은 결코 인생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것, 내가 가장 가고자 하던 길이었다는 것. 그리고 문학도 나이를 먹는지 모른다는 것, 그러므로 인생에 단 한편은 없으며 어쩌면 겸손한 실패로 점철되는 게 문학인생이 아닐까……

p.325-p.326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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