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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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 한껏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워낙 책이라면 죽고 못사는 나이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서점에서 집어 읽게 되었다. 이 리뷰를 보시는 여러분, 이 리뷰를 읽는 것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보시는 것이 훨~~씬 시간이 절약될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짧디 짧디 짧디 짧다. 조금은 기대를 했던 나는 책을 들춰보고 꽤나 실망했다. 이미 다들 인터넷에서 이 책의 원문을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책을 고르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림에 대한 기대와 글과 그림으로 되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유하고 싶어서일게다. 그림으로 치자면 단순한듯 하면서도 다채로운 그림이 아름답다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 보자면... 글쎄. 분멍 처음 읽었을 때에는 감명 깊은 글이었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접해보았던 사람들은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 더 있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나도 전에 너무 많이 본 글귀라서 이 책이 마음에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같다. 처음 보시는 분은 이 책에 매료될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쨌건, 이 내용만은 좋지않은가!

사족. 뭐든지 예쁘게 꾸며서 상업화 하는 데는 일본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일본인도 영어로 된 원문이 일본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감명받아 책을 냈다나 뭐라나.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사이트에 퍼 나르는 데에서 끝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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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리처드 생크먼 지음, 임웅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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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에서는 말한다.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결국 교회 권력에 무릎을 꿇은 코페르니쿠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태양왕 루이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성자라 의심치 않는 마하트마 간디는 사실 간교한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며 책은 지금껏 그렇다고 믿어왔던 대중들을 비웃는다. 작게는 클레오파트라의 머리형부터 크게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지금껏 알아왔던 모든 지식을 송두리째 뒤집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 봐, 너 몰랐지? 사실은 이런거다~? 속았지, 속았지, 하하~!"

그러나 진실이라 믿어왔던 역사적 사건들을 뒤집어주는 책이여, 너 자신은 완전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네가 진실이라고 일러주는 이야기들은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책, 너 스스로는 그것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타인의 반론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

저자의 깜찍하다못해 발칙한 의견은 나의 경직된 사고를 한꺼번에 전복시키며 내게 역사적 고정관념 해체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도 결국은 완벽한 진실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 처럼 제대로 된 근거 하나 없는 추측성 글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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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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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대 자신으로 느껴라, 탐험하라, 생각하라! 이 책의 글은 패치워크다. 작가는 여러명이고 국가마저 모두 다르다. 글을 쓰는 방식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다 다른지 모른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단락단락으로만 보이는 이 책을 하나의 유기적인 구성으로 엮어주는 것이 바로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이다. 모든 글은 그의 그림으로부터 나온 사견에 불과하며 그러한 사견은 독자인 우리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채워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옆에 있는 글에 의해 상상력을 저지당하지 말고 당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두길, 그리하여 모든 그림의 진정한 감상자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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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곰이라구요! - 어른을 위한 동화
프랭크 태실린 / 가람기획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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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고등학생때 우연히 읽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우화집.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커다란 그림에 그닥 많지도 않은 문자는 이 책이 과연 성인용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얕보지 마시라, 요즘 나오는 '세상은 아름다워~' 수준의 근거 없는 환경 미화용 책이 아니니까.

이 책에 수록된 두가지의 우화는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곰 이야기의 사장이나 주머니쥐 이야기의 군중들은 모두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한다. 그들은 앞뒤가 꽉꽉막힌 사람들로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려고 하기는 커녕 자신이 옳다고 믿고있는(그러나 그것이 정녕 옳은 일인지부터가 의심스러운) 진리를 들이대며 너는 왜 이것에 따르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자,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이 우화는 결국 인간의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경험을 상당히 많이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의 차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차별, 기득권층에 의한 노동자 차별...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사회의 약자들은 이 우화의 "곰"이 되고, 이렇게 한 번 "곰"이 되면 아무리 자신을 변호하고 이해시키려고해도 상대방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게다가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주머니쥐의 이야기를 보라. 거꾸로 매달린 주머니쥐의 입모양을 보고 우울해하고 있다는 군중의 주장. 사실 주머니쥐는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주머니쥐를 한껏 괴롭힌 후에 주머니쥐가 우울해하자 그제서야 주머니쥐가 웃는다며 기뻐한다. 언젠가 동성애자를 고쳤다는 해괴한 소리를 지껄이던 외국의 의사가 생각난다. 그의 환자(?)였던 사람은 이 우화의 주머니쥐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남의 생각 하지 말자.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곰 이야기에 나오는 꽉 막힌 사장일 수 도 있고 주머니쥐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 한 채 괴롭히는 군중일 수 도 있다. 저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키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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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소년이 좋다
남승희 지음 / 해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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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이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여인의 얼굴과)도발적인 제목. 여자라면 이런 제목의 책에 일단 손이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사람 치고 예쁜 것(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에 현혹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원래가 미를 추구하는 생물인 인간, "미학(美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미감을 극명하게 드러내지 않는가. 그러나 여성의 미감은 천대받고 금기시된 사회에서 '미소년이 좋다'고 당당히 드러내다니, 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얘기를 쓴 것일까. 엄청난 호기심과 함께 읽게 된 이 책은 그러나 내게 호기심의 강도과 비슷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저자의 글의 핵심은 '남성의 성도 상품화 하라!' 이다. 성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그 자체로 나쁜 일이 아니니 남성의 성을 억압하지 말고 풀어주며 그로 인해 여성에게 돌아오는 결과적 권력이나 누리자는 저자. 이거, 웃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참으로 고민스럽다.

성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근본적인 명제로부터 시작된다. 성상품화 비판은 인간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드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상황을 개탄하며 현대 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런데, 여성 성상품화만으로도 부족해서 남성을 성상품화 하자고? 그래, 이러한 의견은 여성으로서 어느면에서는 통쾌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대응은 기원전 함무라비 법전 시대, 그러니까 기원전에 이미 끝이 난 얘기 아닌가.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대안은 여성의 성상품화 저지에 있지 남성의 성상품화 촉발에 있지 않다. 물론 남성의 성상품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쥐게 될 수도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한층 낮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한 하향적 평균은 그렇게 얻은 여성의 권력마저 허무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이 사회가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깊은 모멸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시정은 남성의 성까지도 상품진열대로 끌어내리는 하향적 평균화가 아니라 여성의 성상품화를 근본적으로 저지하려는 상향적 평균화이다. "어차피 세상이 다 그렇지, 너도 때 묻고 살다보면 다 그렇게 돼,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라는 패배적인 합리화에, 나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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