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톰 라이트 지음, 김재영 옮김 / IVP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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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체 문장들 때문에 읽기 정말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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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양장)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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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하면 우리는 골리앗을 물리친 목동과 밧세바와 동침하는 죄를 저지르고 회개하는 왕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실 이 두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골리앗을 물리치는 시골 양치기가 영웅이 되는 드라마와 간음, 살인, 거짓말로 이루어진 불륜 드라마. 이 두 드라마틱 한 이야기로 우리는 다윗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인생의 단편을 알고 있을 뿐 다윗의 삶 전체를 조명하며 묵상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다윗의 인생 전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유진 피터슨의 <다윗:현실에 뿌리박은 삶>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대단한 왕이었다는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다윗의 삶에는 단 한번도 기적이 없었던 그의 삶의 격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떻게 현실 조건에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고, 그 깨달음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오늘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교훈을 주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인물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상형이고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다라는 태도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아주 작은 일상까지고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도 영성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다윗이 시작은 정말 대단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다윗은 목자였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일은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왕업이 된다. 저자는 “본디 모든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주권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연장이요 거기에 참여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단지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거룩하다는 주장이라기 보다 우리가 생업을 통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거룩함 안에 거해야 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현재의 일이 왕업이라는 소식은 직업적 복음, 정말 기쁜 소식이다.  


또 재미 있는 발견이 하나 있다. 저자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러 갈 때 사울이 입으라고 했던 갑옷에 대해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라고 말한 점을 지적한다. 전투하면 사울이 전문가이니 그의 조언을 따라야 하지만 다윗은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보다 전문가의 권위를 따르는 실수를 한다. 특히 자녀 교육이나 의료적인 문제에서 더 그런 것 같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받은 교훈을 온전히 적용하며 아이를 키우지 못하면서, 좀 더 다양한 정보를 얻으려고 설명회나 교육 실용서를 너무 많이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전문가의 조언대로 갑옷을 입지 않고 물멧돌을 집은 다윗의 경우처럼 아이를 짓누르는 교육의 갑옷을 벗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 했다.  


로마서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진정으로 명료하게 깨달았다. 늘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말에 익숙했지만 개인적 구원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역 속에서의 의미로서 복음과 하나님의 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마태복음을 20장을 묵상하면서 본 포도원 주인의 비유도 함께 떠올랐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과 저녁 늦게 온 일꾼에게 똑같이 품삯을 주시는 주인을 보면서 세상의 합리적인 경제논리를 넘는 은혜의 원칙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가 다윗의 생애에서도 발견되는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저자는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무자비한 사울왕에 쫓겨 광야생활 하고 있는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 군대가 형성된다.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이 그들의 기지였던 시글락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사이 아말렉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마을이 초토화 된다. 약탈자를 추적하기 위해 군인들은 공격에 나섰으나 블레셋과의 전투로 너무나 지친 상태여서 정말 출전 할 수 없는 200명은 브솔 시냇가에 남겨진다. 아말렉 병사들이 버린 어린 소년의 도움으로 작전에 성공하고 돌아온 400명의 군인들은 시냇가에 남아있던 200명의 군인들과 전리품을 나누자는데 반발한다. 전리품 단 한 개도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공정한 분배’를 요구한 주동자들을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삼상 30:22)라고 부르고 있다. 공정한 분배를 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생각해 보면 광야에서 그야말로 변두리 인생을 살다가 다윗을 만나 구원받아 시글락까지 온 사람들이 아닌가.  


공정한 분배를 요청하는 군인처럼 우리도 그런 함정이 빠질 때가 많다. 인생을 마구 살다가 혹은 범죄자로 살다가 복음을 알게 된 사람들보다 모태적부터 교회에 다녔던 내가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묵상을 아침마다 하는 내가 다른 교인들보다 더 믿음이 좋지 않을까 하는 우월감, 부모님이 기도 많이 해주셨으니 그 기도발(?)이 좀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 우리는 공로 없이 받은 구원의 소식, 이 한없는 주님의 관대함을 공정한 분배라는 세상의 논리로 흐리고 있지는 않은지, 공정한 분배의 논리가 피곤한 생업을 왕업으로 바꾸는데 방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본다. 은혜로 주님을 알게 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며, 거기에 보너스로 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할지 알게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린다. 이 감사는 입으로는 잘 안되지만 마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내면의 휘파람을 불며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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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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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높은 문지방을 넘어 하나님을 만난 지성인의 고백  

대한 민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교수가 어떻게 회심하여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이 얼마나 높았길래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을까 하는 호기심과 혹시 지성인이 영적인 사람이 되면서 광신자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책을 들었다.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 씨가 겪은 암투병, 아이의 질병, 망막박리로 인한 실명위기 등의 고난 중에 기적을 체험하여 그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던져 버렸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교토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와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한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행한다는 3부의 구조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영적 서사시는 드라마틱 하기만 하다. 특별히 내 폐부를 찌른 것은 이 노 교수가 느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맞닥들이는 그 외로움이라는 인간적 감정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사건을 서술하는 노교수의 문체와 진정성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년의 외로움을 충분히 가늠하기에 나는 아직 젊다. 그러나 홀로 되신 아버지를 보며 그 육신의 외로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두운 빈집에 들어서는 것이 너무 싫다고 한 아버지의 말씀이나 이어령 교수가 빈집의 어두움이 싫어 항상 전깃불을 켜 놓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다. 일본 쿄토에서 저자는 나의 아버지처럼 홀로 지냈다. 밥을 지어 먹을 쌀을 사가지고 숙소로 와서 쌀자루를 빈방에 내려 놓고 저자는 그 외로움의 무게로 무릎을 꿇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이제 탐욕스럽게 먹었던 것을 정갈하게 치워야 하는 인생 후반부의 숙제를 절감한다. 노년에 누리는 지혜는 이런 것일까? 어차피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니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 다니고 싶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다 홀로 감기에 걸려 누워 앓게 되는데 그 병은 신앙에 이르는 축복의 사건이었다.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때로 감기에 걸려 누워 열이 내리기 기다리는 그 일상의 순간에 하나님의 섭리가 늘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 일상으로 인해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데 무려 50년이 걸렸으니,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아직도 문지방을 넘지 못하는 내 혈육의 영혼을 바라보는 나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세례를 받고 한 인터뷰에서 이 박사는 기적 때문에 믿게 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기적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셔도 언젠가는 누구나 다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의 진짜 기적은 단 하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 훤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자기 파괴적인 절망, 외로움, 허무의식 또 그 반대편의 인본주의적 오만과 지적 자만을 모두 밀어내고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그 찬란한 순간, 그리고 깨달음이 바로 오늘의 기적이다. 병이 낫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오히려 병중에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또 노년의 외로움에 지쳐 우울증과 싸우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는 변화가 기적이다. 그런 기적을 준비하는 것이 중년에 해야 할 노후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수련회 때 청소년 부모님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공동체가 함께 자녀를 양육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혈육에 의해 맺어진 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이모, 삼촌의 필요를 깨달았고 나 또한 다른 아이들에게 얘기가 통하는 이모 같은 아주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꼈다. 혈연을 뛰어 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 아니던가! 이어령 박사도 육신의 형제 자매 부모를 부정 해야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유교적 효의 원리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예수님이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 (요한19:26) 구절에서 육을 뛰어 넘는 사랑이 드러난다. “아들을 잃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사랑하는 제자도 당신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에서 새로운 가족의미를 읽을 수 있다. 피로만 연결된 낡은 가족주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대되고 승화된 가족관이 우리 광야 공동체의 가족관이 된다면 희생을 가장한 가족 이기주의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령 교수의 어린 시절 추억담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어린 이어령 교수가 열이 나 혼자 집에 누워 있는데 멀리서 오신 어머니가 손을 이마에 얹으셨다. 그 때 차가운 어머니의 손과 뜨거운 이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뛰어 넘는 사랑이야 말로 초월의 힘이요 영성의 힘이라고 했다. 그 얇은 막은 예수를 모르거나 거부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느껴진다. 그 때마다 이 보이지 않는 막이 예수님의 부활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기듯 찢어지기를 기도 드린다. 그 찢기지 않는 질긴 막이 없어지지 않는 세월의 장구함을 느낄 때 내 마음이 찢기듯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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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성경과 삶의 통합을 말하다
다니엘 M. 도리아니 지음, 정옥배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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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사와 사물주어를 계속 사용하는 번역체 때문에 읽기가 너무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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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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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법을 읽으며 교육의 지상 낙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교육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좌절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그들의 교육법이 이상적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으나 그들과 우리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계속 떠올랐다.   

핀란드는 작은 나라이고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동력으로 편입시켜야 하는 상황의 나라이다.  그래서 1등이 누구인지 가리기 보다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잘 가르쳐서 일하게 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상위 20% 정도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 즉 공무원 공사 대기업에 취업 가능한 살벌한 경쟁상황에서 핀란드식 교육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마유라는 학생이 귀국해서 겪은 혼란이 극심한 걸 보면서 더욱 회의가 들었다. 

마유라는 학생은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드레스를 입고 파티하는 사진등을 보는 청소년이 또 어떤 오해를 하게 될지 약간 노파심도 들었다. 

별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단지 이상적인 교육현장을 소개한 책은 독자를 충분히 실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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