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높은 문지방을 넘어 하나님을 만난 지성인의 고백  

대한 민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교수가 어떻게 회심하여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이 얼마나 높았길래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을까 하는 호기심과 혹시 지성인이 영적인 사람이 되면서 광신자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책을 들었다.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 씨가 겪은 암투병, 아이의 질병, 망막박리로 인한 실명위기 등의 고난 중에 기적을 체험하여 그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던져 버렸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교토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와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한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행한다는 3부의 구조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영적 서사시는 드라마틱 하기만 하다. 특별히 내 폐부를 찌른 것은 이 노 교수가 느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맞닥들이는 그 외로움이라는 인간적 감정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사건을 서술하는 노교수의 문체와 진정성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년의 외로움을 충분히 가늠하기에 나는 아직 젊다. 그러나 홀로 되신 아버지를 보며 그 육신의 외로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두운 빈집에 들어서는 것이 너무 싫다고 한 아버지의 말씀이나 이어령 교수가 빈집의 어두움이 싫어 항상 전깃불을 켜 놓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다. 일본 쿄토에서 저자는 나의 아버지처럼 홀로 지냈다. 밥을 지어 먹을 쌀을 사가지고 숙소로 와서 쌀자루를 빈방에 내려 놓고 저자는 그 외로움의 무게로 무릎을 꿇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이제 탐욕스럽게 먹었던 것을 정갈하게 치워야 하는 인생 후반부의 숙제를 절감한다. 노년에 누리는 지혜는 이런 것일까? 어차피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니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 다니고 싶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다 홀로 감기에 걸려 누워 앓게 되는데 그 병은 신앙에 이르는 축복의 사건이었다.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때로 감기에 걸려 누워 열이 내리기 기다리는 그 일상의 순간에 하나님의 섭리가 늘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 일상으로 인해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데 무려 50년이 걸렸으니,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아직도 문지방을 넘지 못하는 내 혈육의 영혼을 바라보는 나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세례를 받고 한 인터뷰에서 이 박사는 기적 때문에 믿게 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기적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셔도 언젠가는 누구나 다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의 진짜 기적은 단 하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 훤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자기 파괴적인 절망, 외로움, 허무의식 또 그 반대편의 인본주의적 오만과 지적 자만을 모두 밀어내고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그 찬란한 순간, 그리고 깨달음이 바로 오늘의 기적이다. 병이 낫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오히려 병중에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또 노년의 외로움에 지쳐 우울증과 싸우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는 변화가 기적이다. 그런 기적을 준비하는 것이 중년에 해야 할 노후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수련회 때 청소년 부모님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공동체가 함께 자녀를 양육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혈육에 의해 맺어진 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이모, 삼촌의 필요를 깨달았고 나 또한 다른 아이들에게 얘기가 통하는 이모 같은 아주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꼈다. 혈연을 뛰어 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 아니던가! 이어령 박사도 육신의 형제 자매 부모를 부정 해야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유교적 효의 원리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예수님이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 (요한19:26) 구절에서 육을 뛰어 넘는 사랑이 드러난다. “아들을 잃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사랑하는 제자도 당신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에서 새로운 가족의미를 읽을 수 있다. 피로만 연결된 낡은 가족주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대되고 승화된 가족관이 우리 광야 공동체의 가족관이 된다면 희생을 가장한 가족 이기주의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령 교수의 어린 시절 추억담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어린 이어령 교수가 열이 나 혼자 집에 누워 있는데 멀리서 오신 어머니가 손을 이마에 얹으셨다. 그 때 차가운 어머니의 손과 뜨거운 이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뛰어 넘는 사랑이야 말로 초월의 힘이요 영성의 힘이라고 했다. 그 얇은 막은 예수를 모르거나 거부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느껴진다. 그 때마다 이 보이지 않는 막이 예수님의 부활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기듯 찢어지기를 기도 드린다. 그 찢기지 않는 질긴 막이 없어지지 않는 세월의 장구함을 느낄 때 내 마음이 찢기듯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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