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클래식 - 사람과 사람 사이, 변하지 않는 것들
이주형 지음 / 파지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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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그까이꺼 없어도 그만이지'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런 결심을 하게 된 크나큰 이벤트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 사이를 잘 만들어가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됨을 알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작업이 관계 형성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사실상 포기 선언을 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결심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오만하고 나약했던 십수 년 전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번째 사회 수업 시간이 생각났다. 머리가 삼 분의 일 정도 남으셨던 선생님께서 자기 소개도 생략하시고 칠판에 이렇게 쓰셨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아리스토 텔레스.

그리고 한 명 항 명 일어나서 소리 내어 그 문구를 읽게 하셨다. 선생님이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30년이 지난 오늘 알 것 같다. 아마 그 선생님도 지금의 나 정도 나이 때 비슷한 혼란 속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강하게 느끼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아직 초등생 딱지도 안 뗀 아이들에게 그 심오한 문장을 낭독하게 하지 않으셨을까?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강렬한 외침으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이 책의 문장을 천천히 느낄 수 있었다.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다. 특히 다음 문장이 큰 울림을 준다.

모든 생명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의 손길을 제공한다. 세상의 온갖 생명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도 멈춘다. (p.35)

살아 있는 것들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내 의지대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일종의 협박을 시도한다. 맘대로 안되는 관계지만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그건 인간답지 않은 삶이라고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끈했으나 이내 동의하고 말았다. 그 협박은 유효했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따끔하게 협박의 강약이 조절된다. 계속 그 협박이 먹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각 챕터별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고 있었다. 그리고 챕터의 마지막 단락이 또한 기가 막혔다. 즉 처음과 끝에 힘을 실어 글을 쓰는 패턴에서 나오는 설득과 공감의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의미이다.

두 달째 파지트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6권의 책을 만났다. 기분 좋은 공교로움의 연속이다. 모두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꽃아두고 순간의 위로나 솔루션이 필요할 때 빠르게 꺼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타이밍이 어찌나 정교한지. 개인적으로 파지트 출판사와 바이오리듬이 잘 맞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계의 클래식, 삶의 클래식, 더 나아가 이 책 자체가 클래식이 되길 소망한다. 클래식이 되려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메시지 자체는 언제 어디서든 적용 가능한, 이미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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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공간 - 서울 직장인 강릉에서 에어비앤비로 제2의 연봉 만들다
최인욱 지음 / 파지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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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어딘가에서 숙박을 해본 지가 상당히 오래됐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라는 서비스가 있는 것은 알지만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다. 이젠 사용해 볼 일이 생겼다. N잡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스테이를 창업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준비해야겠다는 순간에 이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앰배서더 최인욱 작가의 스테이 창업 지침서이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에세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부드럽게 읽혔다. 학창 시절 재미있는 교과서가 만약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수능 만점자의 단골 멘트 "교과서만 갖고 공부했어요." 전설로만 전해오는 그 명언을 언젠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어떻게 스테이를 차리고 싶었는지 동기부여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 비용, 시설 및 장비에 대한 체험기, 고객 응대법 등이 구체적이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보기 편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 시작도 안한 초보자들의 마음에도 생생한 강조점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찍어주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고객으로부터 첫 4점의 후기를 받았을 때의 스토리였다. 줄곧 5점 만점만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스테이 운영 커리어에 흠집이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점수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작가는 이 순간이 가장 큰 가르침을 받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아쉬웠던 부분을 이성적이고 신사적으로 말해주는 고객에게 스타벅스 5만 원 상품권과 진심 어린 사과를 보냈으나 그 손님은 사과만 받고 대신 4점 후기를 작성했다. 작가는 이 4점의 후기를 재앙이 아닌 선물로 받아들였다. 5만 원으로 별을 사려했던 행동을 반성하고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한 손님의 태도를 존중하는 작가의 마인드가 정말 멋졌다. 실로 대인배 호스트와 손님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봤다.
생존형 취미로 독서를 시작한 지 4년 정도가 됐다. 읽고 쓰는 일과 스테이의 연관관계? 지금까지는 북스테이 오픈 정도로 연결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지점이 있었다. 에이비앤비 스테이는 메시지를 통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고객이 스테이를 이용하는 타임 라인을 분석해 궁금한 것이 생길 타이밍에 예약 메시지를 보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 고객의 상황, 고객의 시선에서 먼저 생각하고 공감함에 있다.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 작가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각각의 대응법을 무의식중에 갖출 수 있는 게 독서가 주는 유익이다. 이 부분에서 고객을 필요와 감정을 채워주며 감동이라는 최고의 결과를 내는데 바로 읽고 쓰는 일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소망이 들었다.
그리고 스테이 운영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해야 한다는 부분도 일맥상통하다. 내 감상이 작가의 집필 의도에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또 한 번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용기와 위로를 보너스로 받았으니 좋지 아니한가?
작가가 스테이를 통해 쉼과 감동을 고객들에게 선사하듯, 나 역시 스테이를 페이지 삼아 풍성한 서사가 있는, 방문하는 손님들이 숙박 시설 이상의 무엇을 얻고 갈 수 있는 곳을 꾸미기 위한 행복한 고민을 이제 시작해 봐야겠다. 고민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소중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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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속으로만 욕했습니다 - 내향인 기자의 불순한 회사 생활
강병조 지음 / 파지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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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속으로만 욕했습니다. 서평
난 MBTI 검사를 하면 I(내향)이 '제로'다. 그뿐만 아니라 F(감정), P(인식)까지 함께 제로다. 한창 MBTI교육 받으러 다닐 때 내 검사 결과를 강사님이 한참 동안 신기하게 바라보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통해 내향형의 인생을 이해했냐고? 그건 당연히 아니다. 이 책은 내향형의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나라는 한 인간을 사랑하는 과정을 그린 분투기니까.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 직장 생활이 녹록지 않음은 매한가지다. 사회생활의 성패가 성격유형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직적 조직 문화가 강한 대한민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직책과 경력이 깡패다. 좋게 말해 실무자, 전문용어로 쫄따구들은 희생되고, 상처받고, 샤워하다 타일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일쑤다. 즉 회사 생활하다 손 안다치고 타일 안 깨지면 다행이라는 일차원적인 결론이 나온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웃기다. 그의 여자친구는 그런 그의 글이 지질하다고 한다. 작가는 그 말에 위축되기보단 자신이 책을 잘 쓰고 있다고 오히려 기뻐했다. 지질하다는 것은 곧 솔직하다는 말과 같다. 현실에선 속으로만 화내는 사람일지 몰라도 내면은 누구 못지않은 파이터다. 그리고 어떤 사례에서는 실제로 악마스러운 기질도 강하게 보인다.
말이 심하다고요? 우리 다 마음속에 악마 한 두 마리 정도 모시고 살잖아요?
작가는 글을 쓴다고 고상해지거나 품격있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주먹은 화장실 타일에게만 쓰고 철저히 말과 글로 승부한다. 그 방면에선 맘만 먹으면 누구든 충분히 이길 정도의 능력이 되기에 보는 내가 다 속 시원했다.
작가는 편집 기자로서의 업무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취재기자들이 기사를 보내오면 적절한 제목을 달아 신문으로 펴내는 역할이다.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작가에게 '성의가 없다'라는 불만을 했다고 한다. 글씨만 봐도 짜증이 올라왔다.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잠시 그 부분에서 멈춰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그 다음 날 그 부분부터 다시 읽었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작가가 나와 다른 점은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성의'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한다. 기승전'성의'로.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 말을 한 것을 평생 후회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기사 제목에 정답이 없다고 가르쳐 준 바로 그 선배의 '성의'논란에 맞서는 방법은 그들의 논리를 똑같이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소통 방향의 문제다. 아무리 가벼운 원칙이라도 그때그때 바꾸면 곤란하다. 작가는 내향형이라 기자 업무엔 적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에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굿이다.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세상 모든 직장인이여, 오늘도 힘내보자. 힘이 안 나면 뭐 어쩔 수 없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갈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소중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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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설계자들
나하나 지음 / 웨일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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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회사에선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지원 부서 이름을 '행복지원팀'으로 바꿨다. 어느 날, 행복지원팀원들이 업무 중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중 대표님이 사무실에 들어오셔서 남긴 말이 걸작이었다. "웃지 마!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줘야지 너희들만 행복하면 뭐해!" 그대로 회사 전설이 되었다. 지금은 부서 이름도 원복 되었고 회사 분위기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아한형제들이 대단하고 부러운 일은 직원의 행복을 최우선 업무로 하는 '피플실'의 존재를 기업 차원에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플실의 구성원이면서 이 책의 작가는 진심으로 행복하고 일하고 있다. 보는 내가 다 행복해질 정도다.​

비대면 시기에 이 기업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분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소통은 직접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뉘앙스와 대화의 행간, 침묵 등의 모든 요소들이 작용해 좋은 결과를 낳게 되는데 코로나로 인해 상당 부분 제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기업은 소통에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 중요한 건 진심!

우아한 형제들만의 특색 있는 문화가 많다. 개인적으로 입사와 퇴사를 잊지 못할 이벤트로 만들어주는 것이 마음을 울린다. 퇴사 때 반납하는 사원증이 너무 아쉬워 사원증과 같은 모양으로 퇴사증 만들어 주는 부분을 볼 때 내가 감동이 됐다. 기업 이름처럼 우아하게 감동을 주는 재주가 차고 넘친다.

배민체가 중간중간 들어가 나 역시 구성원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연대감이 든다. 사용한 언어 역시 기업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연대의 감각'을 한없이 끌어올려 준다. 나도 현실과의 괴리가 다소 간 존재하지만 내 조직을 위해 작은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어 본다. 
우아한형제들이 대단한 것은 좋은 회사의 정신과 공간, 복지, 제도 등을 만들어 놓고 임직원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속적인 연구와 고민, 테스트와 피드백을 거치는 부지런함을 보여줌에 있다. 사실 어느 기업이나 좋은 아이디어는 넘친다. 문제는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실행으로 연결되지 않기에 직원들로 하여금 큰 기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과 직결된다. 우아한형제들은 그것을 극복한다. 
우아한형제들의 피플실 구성원들은 작명의 귀재다.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내가 꽃이 되었다는 시도 있지 않은가? 회사 공간, 구성원들의 이름을 굳이 잘 불러주는 번거로움은 회사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못하는 것을 우아한형제는 꿋꿋하게 해내고 있다. 미련하게 반복해서 사랑을 빚어낸다. 그 사랑은 고스란히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먼저는 현타가 휘몰아친다. 부럽다는 마음만이 한가득 남는다. 또 다른 마음은 우리 회사도 작은 시작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우아한형제들도 이 같은 기업문화를 만들어 온 것이 마냥 쉽지 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베타 테스트'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고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건설적인 잡담과 관심으로 여기까지 이뤄온 것이다.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이 책의 존재의 이유다. 
우아한 기업 문화, 부러워도 지지 말고 작은 행동을 시작하자는 외침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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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비용 - 다가올 의료 대혁신에 대비하는 통찰
김재홍 지음 / 파지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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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다음날 아침 수술이었다. 간호 중이던 동생에게서 전날 밤에 전화가 왔다. 의사가 덜렁 와서 수술 전에 이전 병원의 진료자료 떼오라고. 난 살다 살다 그렇게 극대노 한 적이 없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으스대는 행태에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입었던 경험이었다. 진짜 이상했던 것은 어머니의 의료 정보는 어머니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업무 시간에 맞춰 방문해서 돈을 주고 다시 사 와야 하는 것이다. 새삼 웃긴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 우리가 왜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의료 서비스를 개혁해 나가야 하는지까지 방법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서 말한 나의 경험을 비롯, 누구나 흔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 살고 싶거나 일단 안 아프려면.'이라고 하며 위안해야 하는 부조리의 악순환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누구보다 의사의 편에 서서 부와 명예를 독점하고 공고한 사회적 위치에 올라 있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어째 환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의료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책을 쓴 의도가 무엇일까 하고 의구심도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느껴지는 혁명적 진심이 느껴져 응원을 보내는 마음으로 읽었다.  ​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환자와 의사 사이의 계급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린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병원에 귀속당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병원과 의사, 현실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비용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몸과 마음은 서서히 깎여나가고 있다. 
우리는 환자로서, 소비자로서 얼마나 많은 선택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최고 강점이라 생각했던 공공 의료보험, 개인의료보험의 방패막마저 시나브로 일반인과 의사집단 간의 계급화를 부추기고 있다. 의료 정보 공유와 소유관계의 불투명성을 통해 슈퍼 갑으로 존재하는 그들은 그 옛날 라틴어로만 쓰인 성경을 통해 세상을 지배했던 소수 성직자 계급을 연상시킨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그때도 그랬듯이 개혁이다. 김재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루터, 칼뱅이 될 수 있을까?
첨단 의료 기술의 도입의 명과 암을 동시에 조망하는 통찰도 엿볼 수 있었다. 환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의 면밀한 검증뿐 아니라 이를 통한 의사집단의 과도한 이익 창출 역시 경계하고 있다. 로봇 수술 기술 도입이 궁극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가져오기보다 수술 횟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의료비 지출이 함께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환자면서 소비자로서 우린 어떤 정보를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진하게 남을 뿐이다.
결국 돈이 있는 자만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가 되고 그로 인한 의사 계급의 귀족화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인가? 작가는 어떻게든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놓아 외치고 있다. 그리고 환자의 권리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해 의사 집단이 위축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의사와 의료 서비스를 공공재로 규정하면서 양성 비용은 병원과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희한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니 의사 집단은 본인이 투자 한 만큼 이득을 봐야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대놓고 하는 담합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부담과 피해가 환자나 소비자에게 돌아오니 참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다 같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 떡하고 마주할 '의료 대개혁'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반가워하지도 못한 채 또 의사와 병원에게 호구 잡힐 뻔했다. 뭐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작가의 바람이 몇 개라도 이뤄질지 그건 두고 봐야할 문제지만. 그래도 이런 소중한 책을 펴낸 고귀한 용기와 진심에 박수를 보내며 환자이자 소비자 대표로 감사를 함께 보내 드린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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