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비용 - 다가올 의료 대혁신에 대비하는 통찰
김재홍 지음 / 파지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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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다음날 아침 수술이었다. 간호 중이던 동생에게서 전날 밤에 전화가 왔다. 의사가 덜렁 와서 수술 전에 이전 병원의 진료자료 떼오라고. 난 살다 살다 그렇게 극대노 한 적이 없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으스대는 행태에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입었던 경험이었다. 진짜 이상했던 것은 어머니의 의료 정보는 어머니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업무 시간에 맞춰 방문해서 돈을 주고 다시 사 와야 하는 것이다. 새삼 웃긴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 우리가 왜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의료 서비스를 개혁해 나가야 하는지까지 방법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서 말한 나의 경험을 비롯, 누구나 흔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 살고 싶거나 일단 안 아프려면.'이라고 하며 위안해야 하는 부조리의 악순환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 누구보다 의사의 편에 서서 부와 명예를 독점하고 공고한 사회적 위치에 올라 있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어째 환자이자 소비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의료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책을 쓴 의도가 무엇일까 하고 의구심도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느껴지는 혁명적 진심이 느껴져 응원을 보내는 마음으로 읽었다.  ​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환자와 의사 사이의 계급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린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병원에 귀속당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병원과 의사, 현실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비용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몸과 마음은 서서히 깎여나가고 있다. 
우리는 환자로서, 소비자로서 얼마나 많은 선택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최고 강점이라 생각했던 공공 의료보험, 개인의료보험의 방패막마저 시나브로 일반인과 의사집단 간의 계급화를 부추기고 있다. 의료 정보 공유와 소유관계의 불투명성을 통해 슈퍼 갑으로 존재하는 그들은 그 옛날 라틴어로만 쓰인 성경을 통해 세상을 지배했던 소수 성직자 계급을 연상시킨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그때도 그랬듯이 개혁이다. 김재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루터, 칼뱅이 될 수 있을까?
첨단 의료 기술의 도입의 명과 암을 동시에 조망하는 통찰도 엿볼 수 있었다. 환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의 면밀한 검증뿐 아니라 이를 통한 의사집단의 과도한 이익 창출 역시 경계하고 있다. 로봇 수술 기술 도입이 궁극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가져오기보다 수술 횟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의료비 지출이 함께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환자면서 소비자로서 우린 어떤 정보를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진하게 남을 뿐이다.
결국 돈이 있는 자만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의 수혜자가 되고 그로 인한 의사 계급의 귀족화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인가? 작가는 어떻게든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놓아 외치고 있다. 그리고 환자의 권리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해 의사 집단이 위축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의사와 의료 서비스를 공공재로 규정하면서 양성 비용은 병원과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희한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니 의사 집단은 본인이 투자 한 만큼 이득을 봐야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대놓고 하는 담합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부담과 피해가 환자나 소비자에게 돌아오니 참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다 같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 떡하고 마주할 '의료 대개혁'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반가워하지도 못한 채 또 의사와 병원에게 호구 잡힐 뻔했다. 뭐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작가의 바람이 몇 개라도 이뤄질지 그건 두고 봐야할 문제지만. 그래도 이런 소중한 책을 펴낸 고귀한 용기와 진심에 박수를 보내며 환자이자 소비자 대표로 감사를 함께 보내 드린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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