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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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가소성, 한동안 꽂혀있던 주제를 통해 조금 더 과학적인 원리를 알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변하는 뇌의 신경 세포 덕에 과거는 정확하게 기억될 수 없다. 감정 상태와 인지 도식, 그 이후의 경험들에 따라 재구성되는 기억은 계속해서 소멸되었다가 재생성되었다가 일부분이 떠오르거나 대부분 왜곡된다. 이것이 과거이다. 

동영상이나 책, 사진의 일부분처럼 타임라인에서 뚝 뽑아져 나와 기적처럼 지금 여기에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무엇보다 과거는 살아 움직이며 현존한다는 사실을 책에서는 명확히 짚어준다. 


누구에게나 있는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거는 비록 완전한 기억의 집합체가 아닐지라도, 과거가 주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밝혀내는 능력인 것.

데이비드 흄은 본성이나 선천적 자질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 익히고 계발하는 취향을 "취향의 섬세함"이라고 했다. 

예술이 우리에게 취향으로 다가오는 것은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보았던 아름다운 것들(자연, 미술, 누군가의 미모 등)의 섬세함들이 반복되며 과거의 현존을 나타내기 때문에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점화'라는 심리적 기제라고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후각의 텍스트화는 과거의 향기롭고 그윽한, 어쩌면 아득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이란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점화되는 순간, 그 과거의 시제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며 삶을 꽃피운다.

그리고 예술은 그 점화 기능을 톡톡히 하는 장치라고 나는 믿는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나오는 달력에는 "시간은 과거로부터 흐르는 강물에 불과하다"라는 허무가 섞인 말이 쓰여있다. 

그러나 과거야말로 강물을 흘려보내는 곳이기에 가치 있다는 사실임을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게 한다. 

과거는 스스로 만들어낸 기억의 재구성이지만, 그 미묘하게 남아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점화될 때 회귀된 과거로부터 우리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실패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과거가 아름다움을 점화시키는 이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의 기억이라면 오히려 사람을 시들게 한다.

앞서 말했듯 기억은 계속 왜곡되고 편집된다. 나쁜 기억은 더더욱 질기게 살아남아 머리속에서 반복/강조 상영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뇌의 가소성. 인간의 뇌는 새로운 삶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한다. 

과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은 수용 -> 창조적 행동(새로운 행동으로 과거를 덮어버리기) -> 타인에 대한 개방으로 진행된다. 

사실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거에 휘둘리지 않고 싶어도 마법처럼 짜잔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지만 믿고 싶다. 

나의 뇌는 변할 것이며, 과거를 100퍼센트 취하지 않아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내려놓고 잊기도 하면서 부단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며 행복해했던 과거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가장 첫걸음이기에.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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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 모든 판단의 순간에 가장 나답게 기준을 세우는 철학
히라오 마사히로 지음, 최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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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철학의 세 가지 기둥, ‘사회의 정의’, ‘개인의 자유’, ‘친밀한 관계와의 사랑’이라는 쉽게 설명해 주고 그 안에서 가장 나다운 선택이 무엇이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윤리 철학, 조금 생소하다.

윤리는 고등학교 때 수능 과목으로 공부한 이후 본 적이 없기도 하고 공부한 윤리라는 과목은 장자, 공자 등 거의 동양 철학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윤리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참으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윤리는 무엇이고 왜 필요할까?


윤리 철학에서 중시하는 윤리의 관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다.

윤리의 윤(倫, 인륜 윤)은 묶어서 한데 모은다는 뜻에 사람을 붙인 한자어다. 사람과 사람 사이와의 관계, 그것이 윤리 철학의 핵심이다.


윤리 철학의 첫 시작은, '인간관계'에서부터 주목한다. 개인이 모인 사회,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정의 그리고 자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친밀한 관계까지 세 가지 기둥을 이어서 소개한다.


윤리 철학에서 저자가 반복 및 정리,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 기둥인 정의, 자유, 사랑이다.

정의의 패턴에는 사법, 경제, 정치가 포함되고 자유에는 적극적 자유(자기결정), 소극적 자유(우행권)으로 세부적으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우행권이라는 말이 재밌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만들어낸 말로 영어로는 the right to do what is wrong이다.

바보 같거나 어리석은 행동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인으로서 행할 권리,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1년에 2천 권가량의 만화책을 읽는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만화책 덕후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가족의 눈총을 조금 받아도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데, 계산해 보니 하루에 5권 이상의 만화책을 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데스노트, 라이어 게임, 도라에몽 등 다양하고 유명한 만화의 상황들을 예시로 들어 질문하고 설명해 주며 무엇보다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 한 번씩 정리를 해서 보여주니, 명료하고 깔끔하다.


정의와 자유에 대한 정의와 이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이 뼈대를 이루고 있는 윤리 철학이기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특히 사회적 이슈들, 아동학대 혹은 부당한 상사와의 관계, 시험 채점 등 다양한 예시를 들면서 윤리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균형'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는 나 자신이며, 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다.

친밀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나 자신의 삶도 이행하며 자신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잊지 않는 것. 그러한 노력이 더해질 때 균형을 잡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단다는 것.


모든 것은 윤리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환경이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해 본다면 사회의 요구에 끌려다니기보다는 사회의 질서를 해독하고 그 안에서 가장 나다운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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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결국 괜찮아진다
김유영 지음 / 북스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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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개가 재밌다. 염세주의자로 방황하다 긍정주의자로 바뀌고 나서 긍정의 희망을 전하는 심리상담사. 

17여 년 동안 매일 글을 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긍적인 메시지를 많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은 돋보이는데, 크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조금 추상적이다. 

본인 스스로의 다짐 같은 문장들이 많아서일까.

대부분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기보다는 '~해야겠다, ~해보자, ~생각해 본다'로 마무리되어 의도치 않게 타인의 일기장을 본 기분이다.

당신은 결국 괜찮아진다라는 강력하고 확실한 제목과는 달리 둥글둥글한 문체가 특별히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자신의 심리 상담의 경험 및 내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마음의 문제 같은 것을 살짝이나마 함께 말해주면 공감대가 형성되어 다른 문장에 비해 와닿는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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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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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히키코모리+언어 오타쿠가 결합한 캐릭터, 전후무후한 돌연변이인 작가가 어느 날 루마니아 소설가가 된 아주 독특한 소재로 된 에세이다. 


루마니아 영화 한 편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집요하게 아무도 안 쓰는 언어를 배우고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과 유머, 루마니아어 공부 꿀팁까지 대방출한다. 




고도로 발달한 히키코모리+오타쿠는 나르시시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루마니아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왜 히키코모리가 되었는지, 우울증이 어떻게 자신을 집어삼켰는지에 대해 저자는 유쾌하게 설명한다. 


우울증,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내버려둬서 방구석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담담하고 쾌활하기까지 한 문장들은 저자가 얼마나 당시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처럼 보인다.


일본의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사회 부적응자, 대학 생활도 취업에서도 어느 것 하나 갈피를 못 잡고 겉도는 존재. 사회에 자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인간은 무너진다. 사회적 동물이므로.


대단한 것은 그 반동으로 영화를 미친 듯이 보았다는 것.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에너지원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세상을 비평하고, 하지만 결국엔 그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글쓰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구석에서라도 본인을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겠다는 자기애. 작가는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된 히키코모리와 오타쿠는 나르시시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어쩌다 보니 진짜 루마니아 소설가


그렇게 방구석에 박혀 영화만을 보던 히키코모리는 어느 날 운명같이 루마니아 영화 한 편을 만난다.

그리고 루마니아어를 집요하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루마니아어는 유럽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일단 서점에서 간신히 찾은 참고서, 책으로만 공부하면 실력이 늘지 않으니 페이스북으로 소통하기 위한 루마니아 친구 추가까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집요하게 찾아낸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만난 루마니아 친구는 작가의 단편을 루마니아의 문예지에 보내버린다. 아니.. 저기요?

결과는 짜잔! 소설가가 된 정도가 아니라 루마니아 문학사에 '사이코 뎃초'라는 이름이 기록된다.


아니 나, 루마니아 문학 현대사의 일부가 되었잖아?


어쩌다 보니, 루마니아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것은 운명, 한 번 가보자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진짜 된다!


한동안 TV 프로그램 중 '슈가맨'에서 잊혔던 가수들이 나와 반가움에 챙겨본 적이 있다. 

자두, 자자, 익스, 씨야 등 한때 좋아했던 가수들을 재발견하면서 맞아, 이런 노래를 내가 들었었지라는 추억에 빠졌었다. 


프로그램 이름의 슈가맨은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에서 따왔다. 미국의 가수 '슈가맨'은 미국에서는 고작 6장만 판매된 비운의 가수였으나(아니, 가족과 친척들이 하나씩만 사도 이것보다는 더 팔렸겠다) 희한하게도 남아공에서는 대박이 났다. 남아공에서는 '엘리스'보다 더 유명한 슈퍼스타가 된 밀리언셀러 히트 가수가 된 것.


책을 보면서 계속 슈가맨 생각이 났다.

내가 나의 나라의 유행과 감성, 추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사례가 슈가맨 말고도 또 하나 추가되었다. 


'좋든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이라는 문장을 좌우명을 하는 작가는 전 세계에 하나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쩌면 본인이 속한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필요치 않는 맞지 않는 부품이 어느 나라에서는 딱 맞는 부품이 되는 것. 뭐라도 하면, 정말이지 뭐라도 된다. 


고독감을 느끼고 방안으로 숨어들어갔던 히키코모리, 그 고독감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마치 정주영 회장처럼, "해봤어?"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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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택배
김현지 지음 / 고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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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지난한 연인, 자식을 키우는 부모, 회사원 등 다양한 주인공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모두들 각각의 상처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상처의 상흔 같은 것들을 가지고 인간관계 속에서 불쾌함을 겪으며 때로는 화해하며 살아나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어떤 모습은 나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모습은 작가를 상상하게 한다.

소설이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엄마의 택배를 읽고 작가의 말 '나의 글, 나의 소명'을 먼저 읽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 나와 결이 지독하게 맞을 거 같아서 작가의 말을 먼저 커닝했다.

국수 같은 글쓰기를 원하는 작가의 말처럼 나머지 단편들도 단숨에 후루룩 들이마셨다. 



나는,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탓에 작은 출렁임 하나도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p.155


나의 고요를 흔드는 존재,엄마


<엄마의 택배> 단편에서는 친정엄마가 보내준 택배를 해체(?) 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회상하게 된다.

분명 가래떡과 어묵을 보내준다고 한 택배에는 오징어, 배, 사과 등이 함께 들어있고 그나마 가래떡에는 곰팡이도 피어있다. 

화자인 '나'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다.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필요 없는 음식을 보내고 비린내를 싫어하는 '나'의 안위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며 오징어를 택배로 보내버리는 그런 엄마. 

엄마 눈에는 다른 형제들의 배우자보다 특별할 것 없는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집을 샀다고 했을 때도 알지도 못하면서 덜컥 집부터 사면 어쩌냐는 핀잔을 듣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모멸감을 주는 어쩌면 감정의 쓰레기통, 자신의 존재의 쓸모만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딸. 

딸과 엄마의 관계는 이상하게도 비뚤어진 관계가 많다. 엄마는 딸에게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딸은 그런 엄마에게 인정받아 보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냉소인 그런 관계.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어머니가 된 딸과 여전히 그 딸이 자신의 딸인 양 모멸을 서로 주고받는 일그러진 관계. 인연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나의 고요를 흔드는 너무나도 큰 존재, 엄마.


엄마의 행동이 괘씸하면서도 딸은 엄마의 감정을 느낀다. 평생 자식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필요를 채웠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가야만 하는 딸. 그러니 이 관계는 어쩌면 평생 완벽하게 화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화자인 '나'는 끝끝내 사과와 배를 씻고, 가래떡과 어묵을 썰고, 오징어를 손질하여 저녁을 차린다. 가장 잘 나온 오징어볶음의 사진을 찍어 잘 먹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엄마에게 톡을 보낸다. 

오늘도 나의 고요를 어김없이 허락도 없이 흔들어놓고 뒤집어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쓸모는 여전히 '나'이기에, 완벽하게 화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엄마이기에. 


그때 그녀는, 그것이 그녀 자신의 쓸모임을 확신했다.

<엄마의 택배> p.39


<엄마의 택배> 외에도 10년간 어장관리를 당한 '나', 상사의 오지랖이 하늘을 뚫다 못해 불쾌함을 느끼는 '나', 옆집 여자의 아픈 아이가 신경 쓰이지만 결국엔 내 자식의 안위를 안심하는 '나' 등의 이야기가 각각의 단편으로 이어진다.

왜 이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 같을까.

어디까지가 작가의 페르소나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

이들은 사랑, 가족, 회사, 이웃 등의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불신 등 불쾌한 감정을 얽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항상 가장 깊은 곳에 서려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 쉬이 기분이 옮고 사람을 신경 쓰는 작가의 말을 보았을 때 단편 각각의 화자들이 작가의 모습을 닮았다고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휩쓸리고 요동쳤다 잔잔해졌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작가의 말에서 지나온 소설들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끌어안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사람이다. 

그러니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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