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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택배
김현지 지음 / 고유 / 2024년 8월
평점 :

엄마와 딸, 지난한 연인, 자식을 키우는 부모, 회사원 등 다양한 주인공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모두들 각각의 상처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상처의 상흔 같은 것들을 가지고 인간관계 속에서 불쾌함을 겪으며 때로는 화해하며 살아나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어떤 모습은 나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모습은 작가를 상상하게 한다.
소설이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엄마의 택배를 읽고 작가의 말 '나의 글, 나의 소명'을 먼저 읽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 나와 결이 지독하게 맞을 거 같아서 작가의 말을 먼저 커닝했다.
국수 같은 글쓰기를 원하는 작가의 말처럼 나머지 단편들도 단숨에 후루룩 들이마셨다.

나는,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탓에 작은 출렁임 하나도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p.155
나의 고요를 흔드는 존재,엄마
<엄마의 택배> 단편에서는 친정엄마가 보내준 택배를 해체(?) 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회상하게 된다.
분명 가래떡과 어묵을 보내준다고 한 택배에는 오징어, 배, 사과 등이 함께 들어있고 그나마 가래떡에는 곰팡이도 피어있다.
화자인 '나'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다.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필요 없는 음식을 보내고 비린내를 싫어하는 '나'의 안위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며 오징어를 택배로 보내버리는 그런 엄마.
엄마 눈에는 다른 형제들의 배우자보다 특별할 것 없는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집을 샀다고 했을 때도 알지도 못하면서 덜컥 집부터 사면 어쩌냐는 핀잔을 듣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모멸감을 주는 어쩌면 감정의 쓰레기통, 자신의 존재의 쓸모만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딸.
딸과 엄마의 관계는 이상하게도 비뚤어진 관계가 많다. 엄마는 딸에게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딸은 그런 엄마에게 인정받아 보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냉소인 그런 관계.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어머니가 된 딸과 여전히 그 딸이 자신의 딸인 양 모멸을 서로 주고받는 일그러진 관계. 인연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나의 고요를 흔드는 너무나도 큰 존재, 엄마.
엄마의 행동이 괘씸하면서도 딸은 엄마의 감정을 느낀다. 평생 자식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필요를 채웠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가야만 하는 딸. 그러니 이 관계는 어쩌면 평생 완벽하게 화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화자인 '나'는 끝끝내 사과와 배를 씻고, 가래떡과 어묵을 썰고, 오징어를 손질하여 저녁을 차린다. 가장 잘 나온 오징어볶음의 사진을 찍어 잘 먹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엄마에게 톡을 보낸다.
오늘도 나의 고요를 어김없이 허락도 없이 흔들어놓고 뒤집어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쓸모는 여전히 '나'이기에, 완벽하게 화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엄마이기에.
그때 그녀는, 그것이 그녀 자신의 쓸모임을 확신했다.
<엄마의 택배> p.39
<엄마의 택배> 외에도 10년간 어장관리를 당한 '나', 상사의 오지랖이 하늘을 뚫다 못해 불쾌함을 느끼는 '나', 옆집 여자의 아픈 아이가 신경 쓰이지만 결국엔 내 자식의 안위를 안심하는 '나' 등의 이야기가 각각의 단편으로 이어진다.
왜 이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 같을까.
어디까지가 작가의 페르소나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
이들은 사랑, 가족, 회사, 이웃 등의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불신 등 불쾌한 감정을 얽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항상 가장 깊은 곳에 서려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 쉬이 기분이 옮고 사람을 신경 쓰는 작가의 말을 보았을 때 단편 각각의 화자들이 작가의 모습을 닮았다고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휩쓸리고 요동쳤다 잔잔해졌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작가의 말에서 지나온 소설들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끌어안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사람이다.
그러니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