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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씨네필+히키코모리+언어 오타쿠가 결합한 캐릭터, 전후무후한 돌연변이인 작가가 어느 날 루마니아 소설가가 된 아주 독특한 소재로 된 에세이다.
루마니아 영화 한 편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집요하게 아무도 안 쓰는 언어를 배우고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과 유머, 루마니아어 공부 꿀팁까지 대방출한다.

고도로 발달한 히키코모리+오타쿠는 나르시시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루마니아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왜 히키코모리가 되었는지, 우울증이 어떻게 자신을 집어삼켰는지에 대해 저자는 유쾌하게 설명한다.
우울증,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내버려둬서 방구석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담담하고 쾌활하기까지 한 문장들은 저자가 얼마나 당시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처럼 보인다.
일본의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사회 부적응자, 대학 생활도 취업에서도 어느 것 하나 갈피를 못 잡고 겉도는 존재. 사회에 자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인간은 무너진다. 사회적 동물이므로.
대단한 것은 그 반동으로 영화를 미친 듯이 보았다는 것.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에너지원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세상을 비평하고, 하지만 결국엔 그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글쓰기를 지속하는 힘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구석에서라도 본인을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겠다는 자기애. 작가는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된 히키코모리와 오타쿠는 나르시시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어쩌다 보니 진짜 루마니아 소설가
그렇게 방구석에 박혀 영화만을 보던 히키코모리는 어느 날 운명같이 루마니아 영화 한 편을 만난다.
그리고 루마니아어를 집요하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루마니아어는 유럽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일단 서점에서 간신히 찾은 참고서, 책으로만 공부하면 실력이 늘지 않으니 페이스북으로 소통하기 위한 루마니아 친구 추가까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집요하게 찾아낸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만난 루마니아 친구는 작가의 단편을 루마니아의 문예지에 보내버린다. 아니.. 저기요?
결과는 짜잔! 소설가가 된 정도가 아니라 루마니아 문학사에 '사이코 뎃초'라는 이름이 기록된다.
아니 나, 루마니아 문학 현대사의 일부가 되었잖아?
어쩌다 보니, 루마니아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것은 운명, 한 번 가보자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진짜 된다!
한동안 TV 프로그램 중 '슈가맨'에서 잊혔던 가수들이 나와 반가움에 챙겨본 적이 있다.
자두, 자자, 익스, 씨야 등 한때 좋아했던 가수들을 재발견하면서 맞아, 이런 노래를 내가 들었었지라는 추억에 빠졌었다.
프로그램 이름의 슈가맨은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에서 따왔다. 미국의 가수 '슈가맨'은 미국에서는 고작 6장만 판매된 비운의 가수였으나(아니, 가족과 친척들이 하나씩만 사도 이것보다는 더 팔렸겠다) 희한하게도 남아공에서는 대박이 났다. 남아공에서는 '엘리스'보다 더 유명한 슈퍼스타가 된 밀리언셀러 히트 가수가 된 것.
책을 보면서 계속 슈가맨 생각이 났다.
내가 나의 나라의 유행과 감성, 추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사례가 슈가맨 말고도 또 하나 추가되었다.
'좋든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이라는 문장을 좌우명을 하는 작가는 전 세계에 하나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쩌면 본인이 속한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필요치 않는 맞지 않는 부품이 어느 나라에서는 딱 맞는 부품이 되는 것. 뭐라도 하면, 정말이지 뭐라도 된다.
고독감을 느끼고 방안으로 숨어들어갔던 히키코모리, 그 고독감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마치 정주영 회장처럼, "해봤어?"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