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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꾿빠이, 이상'에는 3인의 화자가 있다. 각기 단락을 맡은 그들은 이상의 시와 일생과 닿는다. 죽은 직후에 남겼다던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둘러싸고 불륜에 휩싸인 기자와 어릴 적 이상과 만남 이후 일생을 이상 따라하기에 몸 바친 노인과 한국현대문학 연구로 한국에 온 동양계 미국인은 자신의 삶을 이상과 연관시키기 시작한다.
본 책은 사실상 이상의 전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 그에 대해 알던 것이라곤 교과서에서 배운 시의 괴상한 인상과 일제시대에 요절했다는 사실 정도였다. 이상의 문학세계에서 따온 듯한, 화자의 심리에 따라 등장하는 파편화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본래 김해경이었던 이상은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라는 출세길에서 이탈해 떠돌다 익히 알려진 괴상한 시를 남겼다.
소설은 김해경이 아니라 이상이었던 그의 인생 최후반기를 조명한다. 소설 속에서 문학계에 몸담은 인물들이 '업계 용어'로 범벅된 이상의 시에 대한 해석들은 머리 아프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상의 내면의 중요한 화두는 김해경과 이상의 대립이었다는 거다. 단순히 출세지향과 문학으로의 길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둘은 양립할 수 있다. 모든 예술가들은 밥벌이로서의 예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절충할지에 대한 것 역시 모든 예술가의 고민이다. 작가 역시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테다. 고집스럽게 자신을 길을 가야할지, 어느정도 시류에 영합할지. 또한 더이상 새로운 스토리가 보이지 않을 때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파괴적 자괴감과 유혹들.
앞서 읽은 김연수의 책들처럼, 매력적인 문장과 구성에도 불구하고 메시지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의미심장하게 끼워진 특정부분이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끝머리에 붙여진 작가의 말이 인상깊었다. 대문호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읽으며 꿈을 꿨고, 지금은 꿈에서 읽은 그들의 책을 쓰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은 묘하게 감동적이다. 겸손하면서도 문학적 이상을 지향하는 욕구를 근사하게 내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