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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ㅣ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수잔은 전 남편 에드워드에게서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평가해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20년 만에 받은 연락치고는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녹터널 애니멀즈'라는 제목이 달린 에드워드의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별장으로 향하던 인적드문 길에서 마주친 무뢰한들에게 토니는 아내와 딸을 납치당한다. 다음날에 아내와 딸은 강간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토니는 무력감 속에서 손상당한 남성성을 회복하려 범인들을 찾아나선다.
샘 페킨파의 영화에 등장하곤 했던, 빈약한 남성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토니는 글을 읽는 수잔의 회상과 맞물려 그저 허구의 일부가 아님이 밝혀진다. 수잔과 에드워드의 이혼은 수잔의 불륜에 의한 것이었다. 작가를 지망하지만 재능의 한계가 분명해보였던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속물적인 수잔의 불안은 이웃의 유부남과의 섹스로 이어졌다.
토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과 수잔의 회상이 교차되며 전진하는 '토니와 수잔'에는 절묘한 구도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방향을 달리하면 새롭게 보이는 구도들은 날것 혹은 은유들로 보이면서 독자들로 무궁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해석의 여지가 많고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지 않아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수잔이 에드워드의 글을 읽으며 삶이 변질되는 과정을 언급한다. 나는 반대로 창작자인 에드워드에 주목했다. 오쟁이 진 에드워드의 심정은 수잔의 입장에서 묘사되는 소설에서 직접 알 수는 없다. 다만 '녹터널 애니멀즈'의 토니의 심리로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아내와 딸을 몸싸움 한번 없이 빼앗기고도 격분할 수 없는 토니의 무력함과 위선은 20년 전의 에드워드의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의 아픔이 예술로 승화되는 에드워드를 보며 창작의 고통을 떠올린다. 어쩌면 20년 만의 연락은 당시의 분노가 글로 숙성되기까지의 세월을 의미하는 바일 수도. 그렇다면 과연 은유의 실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잔에게 글을 보낸 에드워드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상상해보는 것도 본 소설의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