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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전쟁 -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오정환 지음 / 종문화사 / 2017년 4월
평점 :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책의 부제다. 책은 천년 간에 걸친 베트남과 중국과의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현직 기자이기도 한 작가는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부터 1979년의 중월분쟁까지의 역사를 따라간다.
책을 읽으며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국이고 중국의 유무형의 영향을 받아 살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베트남은 훨씬 지독한 환경을 거쳐왔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국가의 안보는 지정학적인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한반도는 대륙의 끝자락이며 육로로 이어진 중국과의 접경은 만주의 이민족에 의해 잦게 끊어지기도 했다. 사오백 년 이상을 유지했던 체제안정은 지정학적인 고립 덕분이었다.
그에 반해 베트남은 중국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의 경로에 위치해 있었고, 중국에 자리한 제국과 바로 국경을 매번 접했다. 또한 베트남의 역대 국가가 자리했던 현재 하노이 인근의 생산력은 국력을 팽창시키기에는 턱없이 낮았다. 현재의 호치민이 자리한 메콩델타가 베트남의 영토가 된 것은 응우옌 왕조 시기인 18세기가 되서였다. 그러니 베트남이 중국의 직할 영토가 되거나, 독립을 쟁취해도 왕조가 100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게 단명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때문에 책을 팽창하는 중국에 대한 경계와 증오의 논거로 읽는 것은 지나친 단견일 것이다. 국가의 존속은 지정학적 위치에 달려있다. 그리고 자국의 국력을 자각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전략을 수립해나가야 한다. 근거로 본 책에 담긴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의 침략에 의해서만 고통받은 것이 아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자리한 참파,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와의 패권전쟁과 수많은 내전들의 역사가 그것이다. 고만고만한 세력 간의 분쟁은 모두를 수렁에 빠뜨렸다. 내전이 반도의 전쟁으로 번지고, 외부의 수퍼파워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가 베트남을 장악한 것도 프랑스의 용병과 기술을 빌어왔던 덕분이었던 것이다.
별개로 투쟁으로 점철된 소용돌이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온 베트남인의 저력에 감탄한다. 예전에 읽었던 호치민 평전에서 감탄했던 것이 공산주의 이념보다 앞섰던 민족주의였다. 본 책을 읽고서야 오랜 세월 속에서 그들을 지켜온 것이 총칼보다 무형의 민족적 자각이었구나라고 깨닫는다.
베트남을 보다 깊게 알 수 있었던 유익한 기회였다. 다만 된소리가 들어간 베트남의 낯선 인명의 향연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작가도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특파원 시절에 직접 촬영한 베트남 곳곳의 사진들이 컬러로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또한 맥락에 필요치는 않지만 부연 설명이 필요하면 따로 분량을 마련해 놓아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