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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리커버 특별판)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2월
평점 :
'셀프'의 첫인상은 작가의 다른 소설과 사뭇 다르다. 표지에 쓰여있는 간략한 작가의 프로필을 그대로 따라가는 주인공의 행로는 본 책을 작가의 자서전 쯤으로 보이게 한다. 그것은 너무 실제적이고 회고적이라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었던, 내가 읽은 그의 두 권의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캐나다 국적으로 태어나 외교관인 부모님을 따라 세계 여러곳을 다니며 성장한 인물은 어느 순간부터 성을 달리한다. 고등학교 때는 분명히 수컷 냄새가 물씬 나는 전형적인 남자 기숙학교에 대한 묘사로 유년기를 채웠던 인물이 대학에 입학하자 돌출된 성기가 아니라 질을 가진 여성으로 변해있었다. 당혹스러운 전개다. 성이 뒤바뀌는 부분을 여러차례 읽어보았지만, 어떤 징후나 사건도 없었다. 화자는 자연스럽게 여성이 되었으며, 자신도 어떠한 자각이나 혼란도 없다. 여지껏 여성으로 살아왔던 것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남성으로 변화되는, 자웅동체적인 인물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을까. 물론 이게 실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이 이야기'에서 구조된 소년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본인 보험조사원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이건 실제가 아니지만 실제보다 확연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살면서 인생을 되돌아볼 때가 있었다. 내가 찌질하고 쪽팔리거나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던 순간들과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는지를 회고하다보면 길지 않은 인생의 경로가 확연하지 않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제 3의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내 인생을 글이나 영상으로 표현해준다면 참 흥미진진할거라고 상상했다. '셀프'는 그러한 나의 망상과 맞닿아있다고 느낀다. 많은 책들이 그랬듯이 전능한 작가나 신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생애를 성을 바꾸어가며 교차검증한다는 아이디어는 뛰어나다.
그것에는 남녀가 똑같은 인간이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테다. 또한 영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주인공의 말을 원어 그대로 수록한 것은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관점과 감정의 차이를 암시하고자 시도한 것일테다.
'셀프'는 여러 면에서 기묘한 경험을 안겨준다. 앞서 말한 스토리의 전개도 그렇거니와 여성의 삶을 살면서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들은 본 책이 결국에는 페미니즘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결국 문화의 다원성과 인간 각각의 독자성을 잊으며 감정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었다고 나는 느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성장한 이력을 가진 이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상의 경지이다. 나 혼자의 경험으로는 절대 획득할 수 없는 작가의 사상을 공유하는 기회는 책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