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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별 - 김원일 소설
김원일 지음 / 강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오마니별'에는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 단편들은 앞서 읽은 김원일의 글로 확인한 작가의 문학세계의 경계 안에 위치한다. 작가가 창조한 군상은 식민지에서 전쟁과 분단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하다. 역사의 비극은 영향력 아래에 놓인 개인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온몸으로 체득된 변화는 개인의 평생에 따라다니고, 심지어 유전자의 정보에 주입된 듯 후손들에게까지 전한다.
가족사가 얽힌 분단을 주제로 평생을 파고들었던 작가는 또 그만큼의 노력을 과거와 연결된 현재의 고리를 주목했다. 그러한 결과가 '아우라지 가는 길'이나 '가족'같은 장편소설들이었는데, 글쎄 내 기준에는 작가의 의도가 달성되지 못한 범작에 불과했다. 본 단편들 역시 그런 의도의 연장선상에 서 있지만 감상은 사뭇 다르다. 장편이라는 분량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 덕분인지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를 묶는 주제를 거침없이 펼치는 글을 따라가다보면 숨이 가빠진다.
한국문학에 으례 따라붙는 책 뒷편의 평론은 본 단편들에서 생명과 사랑을 짚어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매료되었던 부분은 시간 속에서의 인간이라는 주제가 일으키는 어떤 정서였다. 이를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할까.
영화 '화양연화'의 결말이 떠오른다. 앙코르왓에서 옆집의 여인이 함께 한 화양연화를 회고하는 씬은 영화를 러브스토리 이상으로 끌어올린 명장면이었다. 불멸의 상징인 앙코르왓에서 필멸자인 인간은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을 먼지 낀 창틀 너머로 희미하게 바라본다.
한국전쟁에서 폭격에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을, 예감에 이끌려 서로를 찾게되는 남매의 사연을 그린 '오마니별'이나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여인과 5년마다 만나기를 반복하다 이제는 늙은이가 되버리는 '용초도 동백꽃'를 읽노라면 그야말로 애가 끓는다. 글의 정서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모든 것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는 비애감을 깨운다. 결국에 서로를 서서히 잊을 것이고 기억의 주체 역시 사라질 것이다. 모두에 앞서는 압도적인 시간에 선 소설의 인물들을 애처롭게 지켜볼 뿐이다.
좋은 글이란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 독자들을 사로잡을려면 글은 소재에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 '오마니별'을 비롯한 김원일의 단편에는 현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제했고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의 감정이 정직하게 녹아있다. 허구가 항상 현실을 못 따라가듯, 인간사의 정수를 잔재주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풀어내는 필력에 빠져들었고 감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