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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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라는 형식에는 유감은 없지만 단편소설집은 펼치기가 매번 망설여진다.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적기에 애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든 길든 글 한편을 읽고나서의 여운의 공간이 곧장 뒤의 글로 메워지는 느낌이 썩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의 글을 다 읽어보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 책을 들었다.  

김연수의 글을 읽으며 E.H. 카의 유명한 글귀를 떠올린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김연수는 일관되게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작가 특유의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문장은 그를 통해 한국의 현대사 곳곳을 파고 들어간다. 예스럽고 이념편향적인 과거 작가의 전유물인 것만 같았던 과거의 순간을 김연수스럽게 재해석하는 맛은 지금까지 그의 글을 찾아읽었던 주요한 이유였다.  

그의 장편들을 읽으며 창작의 고통을 감지하곤 했다. 작가는 거대한 의도와 야심을 가진 장편 사이로 휴식을 위한 글쓰기를 시도한다고 '사랑이라니 선영아'의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본 단편들도 그렇게 쓰여지지 않았을까. 분량상 깊지않게 우리 일상에 맴도는 글이지만 가볍기보다 산뜻하고 깔끔하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구조는 여전하지만 작가 자신에 향한 것인듯 보다 희망적으로 결말난다.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증발된 가운데 문장이나 장면이 강렬히 각인되는 경험은 단편을 읽는 기쁨이다. 특히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대중에게 다가갈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부분이 있다. 늙은 여인의 기억속에서, 젊을 적 영화감독과 사랑의 도피를 했던 제주도에서의 빗소리는 음계를 갖추고 있었다. 4월에서 7월로의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음계와 동치시킨 기가막힌 재치와 은유는 일상을 기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범상한 인간에게 지루하게만 보이는 우리 내부와 주변에서 무언가를 감지해내는 예술가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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