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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서영인 지음, 보담 그림 / 서유재 / 2018년 10월
평점 :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서영인
서영인
문학평론가, 한국문학 연구자, 대학 시간강사, 심지어 번역가, 느닷없이 에세이스트. 신용카드 본인 확인 메세지를 ‘쓰는 사람’이라 정해 놓고 혼자 흐뭇했던 적이 있다. 그런 주제에 준비와 구상이라는 핑계로 마감 직전까지 원고 쓰기를 미루는 습관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읽고 쓰는 시간 외에는 대체로 멍하니 있거나 달리기를 하고 맥주를 마신다. 평론집으로 『충돌하는 차이들의 심층』, 『타인을 읽는 슬픔』, 『문학의 불안』을, 연구서로 『식민주의와 타자성의 위치』를 썼고 『학생에게 임금을』과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를 번역했다. 앞으로 또 어떤 책을 쓰게 될까 스스로도 궁금해하고 있다.
그림 : 보담
다음 웹툰에 <옥탑빵>을 연재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두 남매가 어린 시절 머물던 우리 동네의 옛모습을 추어하게 한다.
모든 것이 한가하고 조용하며
짭쪼름한 바닷 내음과 함께 애잔함이 그득 느껴지던 그 곳.
.
나에게도 그런 추억의 장소가 있다라는 것이
그동안 바삐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기분 좋은 회상이 일상에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망원동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이 책을 보면서 나도 그곳 어딘가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에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생각하면 자꾸 그런 이미지만 떠오른다.
상업적 가치를 포기하고, 남들이 부추기는 생활의 윤택 같은 것 보기를 돌같이 하며,
어쩐지 은밀한 왕따가 되어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가는,
그런 은둔자의 이미지가 마뜩치 않으면서도 그게 부러운 것도 어쩔 수 없다.
햇빛이 잘 드는지,나중에 집값이 오를 건지, 지하철 역이 가까운지를 따지기보다
좋은 공원과 좋은 도서관이 있는지를 따지는 취향.
돈을 벌기보다 소비를 줄이는 삶을 택해 매일 도서관에 가서
그 전날 읽던 책을 이어 읽는 일을 반족하는 삶./p78
집 근처에 작은 책방이 생겼다고 하며 꼭 가본다.
나에게서 도서관을 땔래야 땔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큰 대형 서점이 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독립 책방들이 여기저기 생긴다는 건 나에게 참 반가운 일이다.
망원동의 작은 책방을 나또한 방문해보고 싶다.
그리고 너무도 공감했던 것은
내 취향 또한 이와 비슷하다.
집을 사는 데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도서관에 가까운 것을 염두해두고 있다라면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은둔자의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럼 어떤가.. 나만 좋으면 되지 않는가..
나와 생각과 방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나는 것처럼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순간순간 많이 하게 한다.
내 맘을 어쩜 그리도 잘 아는지..
오래된 연립을 개조해서 새 가게가 생기는 광경을 목격하고,
낡은 지붕과 붉은 벽돌로 된 벽들이 어떻게 기우뚱한 개성을 얻어 가는지를 지켜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기에 줄을 서고 사진을 찍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되는 것도 물론 즐겁다.
그러나 그 와중에 힙하지도 트렌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촌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의 밥을 먹는 일이란,
얼마나 한결같고 얼마나 놀랍도록 참신한지를 이렇게 가끔 깨닫는 일은 훨씬 더 경이롭다./p147
그곳에서 망원동의 밥 냄새를 함께 느끼는 기분이 든다.
꽤 거창하고 화려한 모습은 아님에도
문밖을 나서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소박한 글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내 동네 또한 그와 비슷한 정취를 느끼게 되는 묘한 동질감은 뭘까.
그렇게 모두의 망원동이 우리에게 있는 듯하다.
유난스럽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건네주는
편안한 글 속에서 가을이 깊어지면서
바깥의 차가운 기운과 함께 동네의 별 다를 바 없는 풍경들이
나에겐 다시 비춰보인다.
우리 동네를 조용히 걷고 싶어지는 마음에
주말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