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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커피를 생각하면, 저는 세계적인 브랜드인 "스타벅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다방 커피, 자판기 커피 시대를 끝내고 공간의 가치를 커피와 연결시켜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한 이 기업은 커피가 가진 마력을 잘 활용해왔습니다. 한국인도 좋아하는 스타벅스를 있게 한 커피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커피는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음료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요?
동아프리카를 원산지로 하는 커피나무는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럽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근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아라비아는 구약 성서를 통해 접했던, 시바 여왕이 다스리던 풍요로운 나라 그리고 유향과 같은 고급 향료의 원산지였습니다. 유럽인들이 아라비아에 대해 가졌던 향기 이미지는 그렇게 커피라는 상품의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커피를 마실 때 맛과 색깔뿐만아니라 독특한 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커피의 각성 작용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의 수피교 수도사들은 이런 커피의 각성 작용과 식욕 억제 작용을 경험하고 커피의 가치를 전파한 대표적인 집단입니다. 이슬람교의 종교적 정서는 '밤' 그리고 '잠들지 않는 것들'과 관련이 깊은데요. 신성한 시간인 밤에 졸지않고 깨어서 알라를 경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커피는 수피즘의 신비주의적 종교적 의식과 맞물리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단순한 기호식품으로 커피를 찾지만, 석탄 같이 검은 물을 마신 후 각성 작용을 경험하고 신을 향한 종교적 열정 속에서 신비로움에 휩싸였을 당시 수피교도들을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 사실 종교 의식에 약용 식물이나 환각 식물이 사용된 예는 고대로부터 여러 종교에서 발견되는데요, 심지어 초기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커피도 처음에는 그런 종교 의식을 돕는 신의 선물로 받아들여진 것이죠. 저자는 커피의 어원이 된 '카와'(Qahwa)를 설명하면서 아라비아어와 이슬람 문화, 그리고 그 철학에 대해 깊이 있는 스토리를 커피와 엮어서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의 설명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 맑은 밤, 메카 어느 구석에서 삼상오오 모여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는 수피 수도사들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저는 이 부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을 정도로 멋진 묘사와 설명이 두드러집니다. 간단히 소개한 이 부분을 직접 책을 통해서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다큐로 만들어져도 명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이슬람 문화권은 커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념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럽인들은 어떻게 커피를 접하게 되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커피는 자연적 상태에서는 찾지 않는 음료입니다. 맛이 쓰고 이질적이죠. 자연 상태의 동물들도 일부러 찾아서 즐기지 않습니다. 저도 커피의 쓴 맛이 익숙하지 않아서 시럽을 첨가해서 마시거든요. 여기에는 상업자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커피 욕구와 네덜란드인들의 국제 무역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메카와 메디나에서 형성된 커피에 대한 지식을 인도, 인도네시아 등으로 전파했고 마침내 유럽에도 예멘산 커피를 공급하게 되었죠. 호화로운 커피하우스를 짓고 커피 마시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내적인 욕구를 자극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 직장인 점심 값보다 비싼 고급스러운 커피 음료라는,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내적인 욕망을 잘 타겟팅하던 게 생각납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같습니다. 여튼 여기에 더해 동인도회사는 식민지에 커피 플랜테이션을 구축하여 자신들이 커피를 직접 생산하며 공급량을 더욱 증가시켰습니다. 그 덕에 생산될 수 있었던 자바 커피는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오고 있지만, 식민지주의의 침략과 약탈 그리고 토착민들의 빈곤의 역사 역시 그 속에 녹아있습니다. 지금도 유명 커피 기업들이 불공정 무역으로 비난받음을 생각하면 참 많이도 닮아있네요. 커피에 얽힌 명암을 통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커피 문화와 산업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커피가 영국으로 전해진 후 1652년에 런던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엽니다. 그리고 1714년에는 커피하우스가 8,000여 곳으로 늘어납니다. 커피하우스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근대 유럽의 경제, 정치, 학문의 토론장이 되기도 했고, 여러가지 정보가 오가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교차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인들의 자금 수혈을 위한 주식이 거래되는 장소이자 근대시민사회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17세기 후반에 급성장했는데요. 이는 당시 시민들의 일상에 커피문화가 잘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오늘날에도 분위기 괜찮은 카페에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업무를 보거나 일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커피하우스도 그런 다용도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로부터 약 25년 후에는 551곳으로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홍차와 티하우스가 차지하기 시작했죠. 영국과 네덜란드 간의 전쟁과 식민지 인도에서의 생산하여 들여오는 작물의 변화 등의 요인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기능을 다하면서 점포도 줄게 되었지요.
영국에서 커피는 여러 지식인들에 의해 소개되었고, 의사들은 커피의 효능을 검증하며 건강 촉진제로 홍보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음료의 개념과 달리 약품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취기를 없애고 알코올을 멀리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청교도들의 종교적 이상과 잘 결합하기도 했고, 만병통치약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재미있는 현상입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커피에 대해 가지는 관념들 역시 정확할까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라는 책을 통해서 함께 확인해본 바, 커피는 사실 우리가 마약으로 생각하는 대마초보다 위험한 식품입니다. 커피에 든 대표적인 지용성 물질인 카페인은 중독을 일으킵니다. 의존성이 있어서 중독되면 금단증상도 나타납니다. 집중이 안되거나 멍해지고 속도 안좋아지죠. 카페인은 독성도 있어서 약 10g을 섭취하면 치사량에 도달합니다. 대략 레귤러 사이즈 커피 80잔 정도에 든 양인데, 이걸 한번에 마시는 사람은 없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카페인에 민간한 사람은 10잔 정도로도 심장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반면 마약류로 분류되는 대마초는 치사량에 도달하려면 5분 이내에 자신의 몸무게만큼 피워야 합니다. 대비초 한 개비는 1g이 안되며, 40kg의 여성이 대마초를 피워 죽으려면 5분에 4만 개비를 피워야 하죠. 실제로 대마초에 의해 사망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대마초는 마약이라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잠깐의 환각 증세를 일으키거나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렇다면 왜 대마초는 입법자들에 의해 마약으로 분류되고 대중에게 부정적인 약물로 인식되었고, 커피는 기호 식품으로 인정받고 통용되고 있을까요?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한정되어 있었죠.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 피곤에 지친 노동자들이 피곤을 잊게 되는 각성효과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싼 비용으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고 노동력을 끌어내는데 커피를 활용할 수 있었죠. 반면 대마초를 흡입하면 몸이 나른해져서 눕고 싶고 노동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섭취한 사람의 안전과는 별개로,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작물은 각성효과를 일으키는 커피였던 것이죠. 여론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특정한 관념을 심을 수 있는 사람들은 로비를 통해서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돈과 권력의 관계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죠? 오늘날에도 피곤을 이기기 위해 커피를 마셔가며 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속에서 그 씁쓸한 흔적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커피는 이처럼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세계사적 맥락과 연결되어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단순한 음료로만 알았던 커피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가다보면, 커피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여기서 소개한 내용들은 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 속에는 프랑스와 독일 혁명, 전쟁 등 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사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또 하나의 재미있는 교양도서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 커피를 평소에 자주 즐기시는 분들은 이 책을 놓치시면 안됩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 이상의 문화적 맥락을 품고 지금도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커피의 다양한 면들을 음미해낼 수 있는 자신의 교양과 태도가 바뀌어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니까요. 이젠 저도 커피를 바라보는 시선과 맛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네요.
-컬처블룸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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