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 붓으로 칼과 맞선 500년 조선전쟁사 KODEF 한국 전쟁사 1
장학근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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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 전쟁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 등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을 좋아한다기 보다 전쟁에서 묻어 나는 절망 속의 희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에 대해, 무엇보다 그 어리석음에 대해 알 수 있는 탓이다. 이는 또 선과 악 혹은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너무나 잘 볼 수 있는 주제이다. 그래서 한국 전쟁사를 다룬 <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가 흥미로워졌다.

 

 허나 표지를 볼 때부터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붓으로 칼과 맞선 500년 조선전쟁사'이지만, 조선의 외교술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대교린의 조선 외교 정책은 초반까지 무난히 가능했으나 그것의 성공으로 인한 지나친 일반화로 조선을 어렵게 할 때가 왕왕했다. 특히 장학근이 가장 비판했던 것 중에 하나는 명·청 교체기에 새로운 국제관계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기존 질서에 안주하려 했다는 점이다. 사대 정신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던 탓이다. 명나라가 성리학을 외교 관계에도 이용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단순히 성리학의 이론을 숭상하여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점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성계가 혁명 정권을 세우며 명의 질서를 따랐던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그들처럼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청에 대항하려 했던 것은 어리석음의 소치라 할 만하다.

 

 게다가 외교의 기본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도 게을렀다. 일본이 메이지 정권을 수립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을 무렵, 조선은 여전히 스스로를 상국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에 침략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일본처럼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이지 못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잘못이다. 조선은 500년 역사 속에서 늘 수세적인 태도만을 보여 왔고, 기존 시대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 정치를 고집하고 명에 사대하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다 보니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은 언제나 외침에 대비하기 보다는 명의 원조를 기다렸고, 그것은 결국 조선을 멸망케 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 대 인간도 의리만을 따를 수 없을진대, 국가 대 국가는 오죽하랴. 조선은 그것을 몰랐을 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명을 숭상할 줄만 알았지 그들과의 관계를 돌이켜 볼 줄 몰랐던 탓이다. 우리가 지금 역사를 배울 때 이순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의 공을 기리지만, 선조가 외침에 대비하지 않고 국토를 허술히 관리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흔히 우리는 한 번도 외침을 한 적이 없는 민족이라는 점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곤 한다. 학교 교육이 그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어적인 자세를 지속하고 가르친다면, 언젠가 또 같은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오욕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이를 통해 교훈을 남기려는 의지가 없다면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은 과거를 지향하는 가정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만약 그 때 그랬다면'이 아니라, '만약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으로 가정해야 한다. 이제 몸과 마음의 경직을 풀고 달려야 할 시점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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