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3
백문임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대한 속사정을 깊이 들여다 보는 책이었다. 물론 '춘향'과 관련지어서 말이다. 우리 문화사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춘향에 대해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이미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장이라 하겠다. 봉건적 신분제에 저항하는 투사로서, 사랑에 몸을 던지는 청순가련형 여성으로서, 정절을 지키기 위한 열녀로서, 춘향의 이미지는 줄기차게 재탄생 해왔다는 것이다.

 

 특히나 춘향이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한국 여성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구성해 온 것인가, 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것이 그저 대중적인 기호일 뿐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 말이다. 나 또한 대중문화 속에 형성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늘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 보긴 했지만, 춘향이라는 인물에 대한 변형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고, 또 성적인 순수를 증명해내는 것이 중심적인 욕망이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는 참으로 날카롭다.

 

 또 '팔려가는 딸'이라고 이름지은 이 모티프에 대한 설명은 마냥 웃으며 넘길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오빠, 그 오빠를 위해 몸을 파는 여동생, 이러한 '팔려가는 딸' 모티프는 근대 문학에서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고, 또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당시 시대상이 너무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절'과 '효'라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는 참으로 뜨끔하다. 어째서 여성에게 완벽을 요구하는가. 전통적인 남성 판타지의 주요 주제인 이 두 가지는 너무나 민족적이고, 또 폐쇄적이기에 그 민족적 무능과 불안이 눈에 띈다.

 

 수없이 리바이벌 되고 있는 <춘향전>은 여러가지 문학 작품과 드라마, 영화를 통해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여러 작품들이 논의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것은 <장한몽>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일명 '홍도야 우지 마라')>, <무정> 등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앞서 말한 '정절'과 '효'에 대한 민족적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장한몽>의 경우,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한국적으로 번안한 것인데, 번안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작품과는 매우 다르게 변색된다. 그 차이점이 바로 우리 민족적 가치의 폐쇄성을 절실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이 사랑해 온 여성들은 너무나 씁쓸한 이면을 갖고 태어난다. 근대, 그리고 현대의 춘향들은 그렇기에 애절하다. 전통적 가치에 의한 피해는 무지몽매의 굴레 속에 살아 온 우리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이라 지어진 것일 게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편향적인 시선은 한 층 걸러낸 느낌이라 객관적인 면이 눈에 띄인다. 다만 뒤로 갈수록 그의 연구나 주장이 한 데 어우러지지 못하고 난잡스런 면이 드러나는 점, 결론에 이르러 자신의 입장을 애매모호하게 둘러대는 점이 안타깝다고 하겠다. 

 

 어쨌든 이처럼 백문임은 대중물의 의미심장한 영역을 굉장히 섬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 노력 속에는 현대사회에서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춘향의 아픔이 더이상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식민지 시대 민족의 운명, 전통적 가치의 타락 속에서 변질된 우리 고유의 문화가 더이상은 끌려 가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주체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