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부터 복고가 한창 유행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CM이 생길 정도로 패션도 복고에, 노래까지도 리메이크곡이 인기를 끈다. 걸맞춰 TV드라마도 사극 열풍이다. 뒤따라 팩션도 우리나라의 주류 장르라 할만큼 성장했다. 그 탓에 <뿌리깊은 나무>로 유명한 이정명이 새 팩션을 하나 들고 나왔을 때, 우려도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우려는 나만이 가진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런 우려 속에서 이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정말 기쁨이 컸다. 주인공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컬러 도판이 화려하게 인쇄된 것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줄거리 또한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2권을 다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극과 극이라 할만큼 다른 화풍을 가진 둘의 대결이나 절묘한 반전, 문체 등은 쉬이 이 책을 읽도록 만든다. 특히 10년 전 도화서 참변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라는 정조의 명령을 받든 김홍도의 추리력, 신윤복이 가진 태생의 비밀, 그리고 또다른 비밀, 그가 <바람의 화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은 흥미진진하다.

 

 또한 작가, 이정명이 말하는 그림은 참으로 아름답다.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과 해설을 곁들여 그림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새롭다. 학창시절 미술, 국사 시간에 얼핏 스쳐 보았던 그림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고운 선을 가진 그림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참 안타까울 지경이다.

 

 흔히 좋아하는 그림이 무엇이냐, 혹은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이냐, 라는 질문에 외국 작품과 화가들을 대고는 한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서 고흐나 세잔, 클림트, 프란츠, 쉴레 등 유명 화가들에 대해 말하곤 한다. 물론 개인적 취향은 절대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해, 그림에 대해 모른 채로 그들만을 추앙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지심이 드는 것이다.

 

-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지요? 가령, '저문 강 노을 지고 그대를 그리노라' 라고 읊을 때, 강을 그리는 것은 곧 못견디게 그리워함이 아닙니까. 그림이 그리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리움이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얼굴 그림이 되고, 그리운 산이 있으면 산 그림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문득 얼굴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그립고, 산 그림을 보면 그 산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상권, 17쪽)

 

 책에서, 신윤복은 그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 그림…. 나도 모르게 되뇌이면서 그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정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것은 예술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이나 공간은 어느새 아스라히 스러져 가고, 결국 남는 것은 스스로의 사고뿐이지 않던가. 또한 그것조차 육신의 부패와 함께 이지러질 한 때의 것. 그렇기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것이지만, 정신의 되새김이기에 행복한 것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남긴 아름다운 그림들처럼, 이정명은 또 한 편의 소설을 남겼다. 이 참에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예술인들이 한없이 부럽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고들 한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빈 손으로 와서 세상에 잠시 손에 쥐었던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무언가를 남기고, 홀가분하게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다.

 

 신윤복만이 <바람의 화원>은 아니다. 김홍도 또한 이 세상에 잠시 살다 간 바람의 무언가이며, 이전의 그 어느 누구도 바람의 무언가이며, 나 또한 바람의 무언가가 될 것이다. 따뜻한 바람 냄새가 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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