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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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하면 <북학의>, <북학의>라 하면 기껏해야 수레 따위나 떠올리던 내가 실은 <북학의>를 직접 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와중에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이라는 부제에 마음이 가지 않을리가 없었다. 박제가가 채제공을 따라 중국을 갔다 와서 썼다는 <북학의>의 내편과 외편, 훗날 상소문으로 지은 <진북학의>를 한 책자에 엮어 만든 이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시대에서 볼 때에 참 놀랍다. 이를테면, 바퀴 하나 만들 기술이 없고, 제대로 된 통역관 하나 없었으며, 비가 새는 배, 먹으면 오히려 병이 걸릴까 겁나는 약재 등 현대에 비하면 미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명의 발달이 더뎠던 것이다.
 

 청나라에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문명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리 더딘가. 박제가처럼 시대를 아파한 선비라면, 그것을 고칠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왜 우리가 시대를 앞서 나가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고뇌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개량할 것을 주장했던 것들은 실로 물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의미가 숨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진실로 걱정한 것은 바로 놀고 먹는 양반들이다. 탁상공론은 커녕 탁상에 잘 앉지 조차 않는 사대부들이 날로 늘어가는 데에 비례해, 백성들의 삶이 그만큼 더 곤궁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세를 지향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들지 않는 그들은 헛된 말만 늘어 놓으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다. 조선은 사대부들에게 그것을 허락했고, 그렇기에 그들은 더 나은 것을 보고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풍속 자체를 비판할 줄도 모른다. 이미 풍요로운 자신의 지위를 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박제가는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배워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일 것을 주장한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박제가의 주장을 어느 누가 환영하겠는가. 그가 살아 있는 내내, 늘 개혁을 주장했으나 결국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랑캐의 나라라 비난할 줄만 알았지, 그들의 문명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박제가로서는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졌을지 짐작이 간다. 책에서는 그러한 느낌 또한 고스란히 담아져 있다. 더불어 옛 명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고자 한다면, 20년 동안 중국을 힘써 배운 후에 그 일을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라며 원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다만 책에서 안타까웠던 부분은 조선에 대한 자존감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할지라도 보고 배울 것이 있어 스스로에게 이롭다면, 불치하문하여야 할 것이다. 허나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 라고 말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과장을 넘어 제 얼굴에 침 뱉는 꼴이 아닌지 염려스러운 것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 미국이나 일본 등 강국의 문화에 깊이 세뇌되어 '자신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우며, 그들의 나라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곤 하는 몇몇 나어린 세대들에게 한숨이 나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 중에서도 그런 이가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어찌나 한숨이 나던지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어쨌거나 박제가는 기본적으로 백성들을 사랑했고, 또 그들이 잘 살아야만 부국강병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두리뭉실하게 얽어 말하지 않고, 직접적인 실천법을 말하고 있기에 그것이 더욱 신빙성 있다. 비록 그의 상소가 소용이 없었다고는 하나, 또 마냥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이용후생의 중상학파를 대표한다 할만한 그의 주장은 아무쪼록 발전의 원동력을 마련해 주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문물이든 일본의 문물이든 어느 나라의 것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니,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막상 실천하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그런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박제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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