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형이상학 정초 대우고전총서 16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순수실천이성 비판'이 아니라 <윤리형이상학 정초>라고 정해진 데에는 간단한 이유가 숨어 있다. 칸트가 장차 '윤리 형이상학'을 저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정초를 먼저 출간함으로써, 이것의 기초를 놓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이유 중 한가지, 묘한 점은 독자의 혼란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원리라는 것은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실천 이성과 사변 이성의 통일이 공동의 원리에 의한 것인지를 먼저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동일한 이성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식의 고찰을 끌어 들여야 하기 때문에 독자의 혼란을 야기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칸트의 주장을 명백히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여긴 탓이다. 어쨌든 이 제목에는 그런 묘한 비밀이 숨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것처럼, 실천 이성과 사변 이성 사이에 공동의 원리란 것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공동의 원리가 있어야만 칸트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윤리 형이상학 정초>에는 '선의지'의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이후 여러 명령들 중에서 정언 명령만이 도덕법칙일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정언 명령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인 자유와 정언 명령이 가능한 근거를 통해, 이 책의 본질인 '실천 이성 비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선의지란 보통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생기는 과정이나 성취한 것으로써 선한 것이 아니라, 선의지 그 자체가 선하다고 말하고 있다. 칸트는 이 선의지라는 것이 어떤 호의적인 경향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인간 안에 온전한 가치를 가진 어떤 것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선의지는 자연적인 건전한 지성에 내재해 있고,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단지 계발이 필요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이 모든 인간에 내재해 있는 선한 본성이라는 점에서 맹자의 '성선설'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러한 선의지를 통해, 모든 명령 중 최상위 명령이며 도덕 법칙인 정언 명령만이 도덕법칙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언명령이란 수단과 목적 없이 명령 그 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보편적 입법 원칙에 타당한 준칙이어야만 한다. 또한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만 하며, 자신의 행위가 인간성과 조화해야 한다. 이런 개념은 매우 생산적인 개념으로써 '목적의 나라'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이성적 존재자는 이 '목적의 나라'에서 입법적 성원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 네가지 원칙이 바로 정언 명령의 4원칙이다. 이같은 정언 명령은 목적과 수단이 있는 가언 명령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이며, 존재 그 자체로써 도덕법칙일 수 있는 것이다.

 

 허나 이 윤리성의 이성적 근거들, 또 완전성이라는 존재론적 개념이 과연 타당한가. 칸트는 우리 스스로 그 완전성을 직관할 수 없고, 어떤 정언 명령이 필연적으로 의욕하기 때문에 이 준칙을 제한하는 명령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 준칙이 강제적인 것이라기보다 다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유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자유의 이념 아래서만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가 자신의 의지일 수 있고, 그러므로 이 의지가 실천적 의도에서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에게 부여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게 된다.

 

 무엇으로부터 도덕 법칙은 구속력을 갖는가, 하는 문제도 당연히 부각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정언 명령이 필연적으로 의욕하기 때문에 이 준칙을 제한하는 명령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준칙의 구속력은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또한 어떤 이유로 구속력을 갖는 것인가. 이것은 도덕 법칙보다는 오히려 사회 법률에 더욱 가까운 개념이다. 칸트 또한 고백하듯이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순환론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목적들의 질서 안에서 윤리 법칙들 아래에 생각하기 위해, 우리 이 질서 안에서 자유롭다고 상정하며, 또 스스로의 의지에 자유를 부가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법칙들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자유와 의지의 자기 법칙수립은 둘 다 자율이고, 교환적인 개념들이다. 또한 이런 개념을 세세히 분류하기 위해 아무리 주위를 기울이더라도 그것은 한낱 현상들의 인식에 이를 뿐, 결코 사물들 그 자체에는 이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감성세계와 오성세계, 둘 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해 있는 것과 같은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근거밖에 마련하지 못한다. 또 이 두 세계 사이에서 함의되어 있는 자유 의지로써 정언 명령이 실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순환적 논리를 주장한다.

 

 허나 정언 명령이 자유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 자유 의지는 필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좀 더 고민해 볼 문제다. 자유 의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율적인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데, 정언 명령이 그 자유 의지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며, 이 자유 의지에 의해 지켜지는 도덕 법칙이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모든 인간이 이 정언 명령의 틀에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전제 자체의 오류가 아닌가. 또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진정 자유인가. 그저 자유라고 느낄 수 있도록 자연법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아닌가. 이 책 한 권으로는 그 모든 문제점에 대해 또 다른 대답을 하지 못 한다. 칸트 또한 이 모순을 벗어 나기는 불가능하며, 그래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변 철학의 과제로 남는다고 지적했던 것을 기억하자.

 

 어쨌든 이성이 무조건적인 실천 법칙의 절대적 필연성을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정언 명령이 칸트의 말처럼 최상의 법칙은 아닐 수도 있다. 그 탓에 실질적으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직관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조급한 궁금증이 든다. 이러한 궁금증은 앞으로 서서히 해소될 것이라고 믿으며, 칸트의 고뇌를 들여다 보련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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