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 미래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전사 시인'이라 불리우는 김남주. 그를 잘 모르더라도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이라고 하면, 아마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리라 생각된다. 80년대, 민족운동의 중심에 서서 저항을 하던 그를 기억하기에는 내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도 그의 정신은 가히 짐작이 된다.

 

 그는 스스로를 시인이나 글쟁이라 부르기보다 '전사'라고 불렀다 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에서 풍겨오는 혁명의 냄새,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 등은 어쩔 수 없이 강하게 나타난다. 즉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또한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계몽적이다. 물론 그것은 당대 현실속에서 살아 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무자비한 남발은 낭패의 여지가 있다. 시로서의 매력이 반감하기 때문이다.

 

 정제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교과서적 대답을 하자면, 시어의 정제는 단어가 본래 가진 단어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며, 비유의 치밀성, 감정의 절제 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집에서 그러한 시어의 정제미가 없어 아쉽다고 말하는 것이 국민적 시인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 시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몇가지를 추려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시집의 제목이자 연작시의 제목이기도 한 '학살, 광주, 젖가슴, 옥좌, 해방, 자유, 투쟁, 정치, 빨갱이, 미국, 대통령' 등, 한 치도 겉돌지 않고 직선적이다. 또한 감정의 절제 없이 분노와 억울함을 극대화한 표현이 가득하다. 지나치게 거침없다는 것이다.

 

대검이 와서

그의 가슴을 찌르자 뒤에서는

개머리판이 와서 그의 뒤통수를 깠어요

으윽- 한낮의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군화발이 와서 그의 턱을 걷어찼어요

피를 토하며 거리에

푸르고 푸른 하늘에 오월에

붉은 피를 토하며 벌렁 그가 대지에 나자빠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제 군용 트럭이 와서 그를 실어 갔어요

 

                                                      <학살 5> 전문

 

 위의 시는 연작시 <학살>중 마지막 편인 다섯번째 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직설적인 해설은 이 시의 한계이자 묘미이다. 산문이라 해도 손색없을만큼 시어의 정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광주 학살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한 이의 울림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에서도 '두부처럼 으깨진 처녀의 젖가슴'이라거나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이라거나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 등의 표현은 참으로 잔인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생생한 역사적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모순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인 또한 드물다. 서정주나 김동환, 박영희, 이상화 등 훌륭한 문장을 자랑하면서도 친일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시인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현실의 비극에 저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를 높이 받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일시인들은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나의 경우, 특히 서정주의 친일 행위에도 <자화상>이나 <귀촉도> 등의 작품으로 그를 대표 시인으로 꼽는데 주저치 않기 때문이다. 애국심 또한 물론 중요하지만, 문장과 표현, 사색도 시인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어쨌든 이러저러한 많은 시인들 가운데, 김남주의 위상은 가히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시대의 고통과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처절한 현실을 노래하는 것은 분명 엄청난 용기와 애국심,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는 그러한 격정이 한 치의 낭비없이 표현된다. 비록 그것이 문학성에 있어 한계를 나타내더라도 그의 열정만은 높이 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어두움만 토로하고, 미래의 희망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쨌든 자유와 혁명의 순결을 노래하는 전사시인, 김남주의 격렬한 외침만은 와닿기에 그의 소중함을 느낀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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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 봐도 <학살>이 없어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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