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 그대로 <토끼와 함께한 그해>이다. 일상에 지쳐 무기력하게 매일을 보내는 바타넨이 우연찮게 토끼와 만나게 되고, 그 토끼와 1여년 동안 여행을 하며 겪게 되는 것이 줄거리다. 비교적 이 단순한 플롯 속에서 독자는 끊임없이 작가의 저의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바타넨이 아무리 일상에 지쳤다지만, 시작부터가 난해하다. 요즘 그 어느 현대인이 고정된 직장과 수입, 편한 집, 몇 십년을 같이 한 아내, 할부도 끝나지 않은 보트를 버리고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바타넨 뿐만 아니다.

 

 직업도 없이 대통령의 신상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불도저를 끌고 강 한가운데에 빠지는 사람이 있고, 장작을 얻기 위해 이웃집 난간을 부러뜨리는 사람이 있다. 뿐만 아니다. 민간인이 살고 있는 산장에 군인들이 몰려와 사령부로 쓰겠다고 하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동면에서 깨어나 성난 곰을 죽이기 전에 구경해 봐야 겠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보다 바타넨에게 가장 괴로웠던 일은 곳곳에서 자신의 토끼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에 둘러 싸이게 되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그런 위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한 일들이 법을 저촉하여, 결국 감옥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아르토 파실린나는 이런 요지경 세상 속에서 양심에 손을 얹고 바르게 살아 가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를 주제로 두고 역설하고 있다. 어느새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 옥살이를 하게 된 바타넨에게 자유란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듯 싶다. 억압과 본능에 의해 일상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육체적 노동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었던 바타넨에게 작은 감옥은 그야말로 지옥이지 않을까. 그 순간 토끼가 곁에 없다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타넨은 결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토끼를 되돌려 받고, 지옥같은 감옥을 탈출한다. 대통령 신상에 관한 연구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지금껏 여행을 하던 도중 그는 나름의 양심에 의해 스스로의 행동을 억압하고 절제했지만, 결국 자유를 빼앗기자 허울좋던 약속조차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역설과 풍자들은 곳곳에서 베어나고, 그것으로 인해 <토끼와 함께한 그해>라는 열매는 그 빛깔과 향이 배가한다. 단순히 유쾌 발랄한 소극(笑劇)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분명 이 책은 노골적일 정도로 우연성이 넘치고 황당무계하지만, 그 과장은 단순한 웃음만 일으키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사회적 풍자와 해학이 너울치기 때문이다. 다행한 것은 바타넨이 여행한 핀란드가 그렇게 모순이 넘치는 사회였지만, 그의 탈옥으로서 어느 정도의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혹여 자신의 삶과 대비하여 실망할 것은 없다.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간극이 있지만, 그 간극을 메꾸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지 않는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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