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이 달에 썼던 리뷰들을 대충 훑어 보면 유난히 '자유'를 많이 부르짖었던 것 같다. 즉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책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김우창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 가능한가에 물음표를 찍고 있어, 흥미로운 만남을 예감했다. 중반부가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자유에 대한 갈망, 그것은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동물들도 자유를 갈망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그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갈망을 들을 수 없기에 제외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러한 자유는 언제나 자유를 누릴 수 없도록 하는 압력과, 그에 대한 극복, 또 다른 압력, 또 그것에 따른 극복 순으로 늘 진화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자유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돌림노래 같은 현상 끝에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자유를 누릴 수 없도록 하는 압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빈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오래된 난제에 해답을 제시하며, 일약 스타가 된 페렐만의 경우를 예로 든다.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 대가로 한 연구소에 내놓은 100만 불의 상금을 거절하고, 필즈 메달 수여를 거부하였으며, 스탠포드나 프린스턴 대학에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마저 물리친 기행을 자유라 표하고 있다. 이러한 페렐만의 기행은 세계 각종 신문에 대서특필된 바 있다. 그럴 수밖에. 흔히 사람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곤 하는데, 페렐만은 이를 일언지하에 처내버린 탓이다. 페렐만은 학문하는 사람의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몸소 표현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살피고 있는 점은 쉴러의 심미적 국가의 발현이다. 심미적 형상화를 통해 도덕을 자유에 호소함으로써 평등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현실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이상일 뿐 직접 실현시키기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구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평등한 분배를 통한 평등한 사회 실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심미적 국가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공동체이다. 쉴러는 이것을 '열렬한 행동가들이 본질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평등이 미적 보임의 영역에서 달성되는 것을 본다. (177쪽)'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상에 불과할 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향한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는 '그것이 중요한가?' 라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고 여긴다. 물론 그의 말대로 금방 답을 알 수 있고, 금방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물음들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의 제시 없이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우스갯 소리처럼 이미 그 해답은 우리 모두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이 쉽게 없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우아, 양보, 위엄, 사랑, 우애 등은 분명 중요한 것들이다. 그것만이 굴종의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비록 값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것은 자유의 무가치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로 값을 따질 수 없을만큼 중요한 것이며, 인간적 본성을 일깨우는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선설을 믿지는 않지만, 그가 말한 노력 끝에 자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다.

 

 현실적 이성을 요구하는 현대에 감성은 불필요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나 사람은 홀로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없다. 타율이 있고 나서야 자율이 생길 수 있듯이 자유로운 개인이 관계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욕망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견지한다. 허나 자유로운 개인들이 관계 속에서 끝없는 욕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리라는 믿음을 잃고 싶지 않다.

 

 외부의 압력, 즉 폭력이나 규칙 등이 아닌 자율적 책임과 필연성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는 날이 올까. 나와 마찬가지로 김우창 또한 긍정적인 답변은 하고 있지 않다. 허나 당장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그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이 진실임을 나 또한 믿고 싶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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