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제법 싫어하는 편이다. 알랭 드 보통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글은 결코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보통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읽는 내내 내게 난독증이 있나를 의심할 정도였다. 덕분에 이 책, 이 작가가 어째서 인기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는 접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어쩌다 보니 나눔받게 되어 <동물원의 가기>를 읽게 된 나는 살짝 그 의구심을 접어 보려 한다. 소설가로서는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지만, 수필가로서의 그는 '제법'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먼저 <동물원에 가기>라는 제목은 배수아의 <동물원 킨트>를 떠오르게 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비오는 동물원이 생각난다. 나 역시 어른이 되어 동물원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문득 동물원을 거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어찌보면 이상하다 할 수 있을 그 모습을 우리가 보고 즐기는 곳이 바로 동물원 아닌가. <동물원에 가기>에서 보통은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90쪽)'고 말하고 있다. 되고 싶은 동물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의 현재 모습과 어울리는 동물을 말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제시로 인해 언뜻 내가 동일시할만한 몇몇 동물들이 떠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이나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처럼, 보통은 <동물원에 가기>에서 자신이 누군가로 인해 갇혀 있고 그 누군가가 자신을 구경하고 있다는 것의 불쾌함, 혹은 그렇다면 얼마나 불쾌할까, 라는 생각으로 끝내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면 몹시 불쾌해지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해 버리기에 보통의 생각처럼 1년 자유입장권을 끊어 다니는 것도 어쩌면 유쾌할지 모르겠다.

 

 또 그는 '집에서 슬프거나 따분할 때면 가볼만한 곳(29쪽)'으로 공항을 꼽는다. 그것도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공항을 빨리 싫어하게 되는 지름길이야말로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 것이다(29쪽)'라고 말하며, 묘한 동질감을 자아낸다. 공항에 가볼 일이 흔치 않은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싫어하게 될 일이야 전무하겠지만, 한 두번 비행기를 탈 때 그 곳을 가면 늘 지루하고 짜증나기 마련이었던 것 같다. 보통은 그것을 지적하며, 그 자체의 부산함과 지루함을 구경하는 것은 오히려 즐겁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강철 날개가 강철 심장을 펄떡이며 비상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가. 과학의 발전이 제 아무리 빠르다 해도 그것을 실제로 접했을 때, 내가 모르는 어떤 힘으로 놀라운 일을 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가. 그 커다란 동체가 서서히 움직이며 구름을 헤치는 그 모습. 분명 오래 전에는 새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던 비상이 아닌가.

 

  여러 단상들이 지나가고 이윽고 <희극>이라는 마지막 단상이 눈 앞에 다가 온다. 샤를 필리퐁이라는 무명화가가 프랑스의 루이필리프 왕을 희극화하여 비난한 사건으로 2년이나 투옥된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만화의 유머에 빗대어 진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어느새 만화의 권위 비판이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된다.(135쪽)' 이처럼 유머, 즉 조롱을 하다보면 조롱할 일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한 권위를 비웃는 말로 몽테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지만 그래봐야 내 엉덩이 위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말인가.

 

 이 수필집을 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유쾌해질 때도 있었고, 동감할 때도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련다. 아직 내 스스로 내린 그의 평가를 뒤바꿀만한 혁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는 즐거운 책읽기가 되지 않았나 한다. 여담이지만, 필리퐁이 루이필리프 왕의 얼굴을 배 모양으로 희화화했다는 그림이 표지의 것과 비슷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 난다. 다 읽고 난 후에야 표지의 그림이 배모양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문득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졌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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