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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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다. 적나라한 표현들이 하나같이 소름이 돋는 걸 넘어서서 징그러워 눈을 감고 싶을 지경이다. 피어싱에 관한 용어들을 처음 보면서 호기심이 드는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넘기고 주춤한다. 아니, 그 전에 책날개에 흑백으로 처리된 가네하라 히토미의 얼굴을 보며 '갸르'잖아? 라고 외쳤던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이 순서일까.

 

 아무튼 이 책을 보면서 놀라게 된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게 문화적 차이라는 것일까. 아니야, 일본 사람 모두가 이런 건 아니잖아. 분명 극소수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프리카 토인종도 아니고 어찌 이리 기괴한 일들을 일상으로 처리한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문화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을 때부터 등교 거부를 하고, 성인이 되기 전부터 집을 뛰쳐 나가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 더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가 쓴 인물들의 소유욕, 욕정들도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은 하되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온 몸에 피어싱을 꽂고 뱀혓바닥처럼 갈라진 그것을 낼름대는 아마와 동거를 시작한 루이는 점점 그를 흉내내기 시작한다. 아마를 따라 찾아간 시바에게 혀를 뚫어 달라고 하고, 문신을 새겨 달라 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지불한 것은 다름아닌 섹스다. 물론 아마에게는 비밀로 한다. 날름대는 혀에 반했다는 루이는 아마의 아르바이트비를 축내며 기생한다. 아마는 루이를 못 견디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루이는 아마의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가 돈을 벌어와 편하게 생활하면 할수록 일상에 염증을 낸다. 곡기에는 입도 대지 않고 술만 마신다. 점점 알콜릭이 되어가는 루이는 마침내 아마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에게 열정을 다한다.

 

 아마가 사라진 뒤, 루이가 성의를 다해 그를 찾는 것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아마와의 생활이 거듭될수록 삶의 의미를 상실해가던 루이가 되살아난 것 같이 느껴진다. 아마에 대한 소유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 안에 녹아 들 것이지 왜 말도 없이 사라지느냐는 화를 내며 절망한다. 이것을 단지 루이의 성장으로 여기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에게는 아마의 실종이 단지 가지고 놀던 곰 인형을 잃어버린 상실로 밖에 치부되지 않는 것일까. 아마의 집에서 계속 그를 기다리던 루이는 그의 죽음을 알자마자 다시 기생할 곳을 찾는다. 바로, 문신을 하러 갈 때마다 섹스를 하곤 했던 시바와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루이가 정신을 차리고 차츰 밥을 먹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곧장 죽음으로 달려가던 그가 샛길로 빠져 나와 삶을 되찾는다. 아마처럼 시바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마처럼 뱀혀를 만드는 것고 피어싱을 하는 것도 섹스를 하는 것도 모두 다 무의미하다고 토로하던 루이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그리고 그 무의미한 것에 이끌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으냐고. 삶 자체에서 무의미를 느낀다고 했던 그 대신 아마가 죽은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누가 아마를 죽였는가. 

 

 야산에서 아마를 사체로 발견했다는 경찰의 말을 들은 루이는 격분한다. 그리고 그 격분이 무색하게도 곧바로 시바에게 안긴다. 그 순간, 나는 의심한다. 그를 죽인 것은 시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루이조차 그것을 의심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루이는 또다시 기생할 곳을 잃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물론 돌연 삶을 다시 살려는 루이에게 그럴 듯한 계기를 부여할 수는 있다. 아마의 죽음이 그를 성장하게 했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 혹은 그가 남기고 간 애정의 증표를 보며 갑자기 그가 절실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로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 풍요를 지리해 하고, 행복을 귀찮아 하고, 또 삶을 내팽겨 치는 것들의 연속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한 그 자체를 축복한다면, 오히려 낫겠다.

 

 루이는 문신을 새길 때 눈동자를 그려 넣지 말아 달라고 시바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이 생명을 가지고 날아 갈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것들을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남기기 위해서다. 아마가 자신에게 녹아 들길 바랐던 것과 같은 이유다. 결말에서 루이는 다시 부탁한다. 용과 기린에게 눈동자를 그려 넣어 달라고. 이제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다시 삶에 생기를 부여하고 싶다는 뜻일까.

 

 후텁지근한 열기 속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불쾌함이 온몸을 감싼다. 한 낮의 열기와 고통에 초조하기 짝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 불쾌함이 마냥 싫지는 않다. 그 불쾌함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불쾌할 정도로 모나게 튀어 나와 날카롭게 찢어진 살결을 쓰다 듬고 싶다. 썩은 어금니가 흔들거려 뽑히자, 뱉지 않고 삼키던 루이의 말이 생각난다. 내 피와 살이 되어 달라던, 절실함이 너울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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