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을 드는 것이 죄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엘리 위젤은 그뿐 아니라 중립도 죄악이라 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것이 바로 죄를 더 크게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친구 S의 말이 생각난다. 급진주의자인 S는 나에게 너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도 보수주의자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모르면 알아라. 모르는 것은 죄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죄다. 그 말이 하나 틀릴 것은 없다. 하지만 막상 나서기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것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그것이 죄인 것은 분명하다. 나 또한 죄인인 것이다. 침묵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죄인.
 

 엘리 위젤은 대다수가 침묵하는 가운데, 그것 또한 죄라며 외치며 이 책을 냈다. 하지만 많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과유불급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고 또한 많은 부분을 처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그는 고통 한가운데에 살면서 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낱낱이 드러낸다.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에게 기관총을 난사하고, 타오르는 불에 집어 던지고, 가스실에서 피를 토하게 하고, 인간의 기름을 짜내 비누를 만들고, 그 시체를 연료로 사용했던 나치 정권. 아우슈비츠는 그들이 저지른 모든 것들에 대한 표상이라 할밖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나치에 대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고, 관련 소설들도 제법 보았다. 보면 볼수록 지지부진한 이야기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읽어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가장 엄청난 부정이자 학살이며, 죄악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그리고 그와 관련한 소설과 영화 등을 보면서 늘상 경악을 금치 못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측면이다. 역사적 사명감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난 그 당시의 세대가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도 간접적 경험에 의한 얄팍한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깨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후대의 사람으로써, 인간으로써 그 죄악들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돌이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내 생각을 비웃는 이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가족, 친구가 그러한 죽음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면 그들은 또 반박한다. 어쨌든 지금은 그 세대가 아니잖아.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날리도 없고, 라는 말들도 둘러 댄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찬다면, 결국 그런 죄악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 어제 침묵을 지킨 사람은 내일도 침묵을 지킬 것이다. (19쪽)

 

 내가, 당신이, 온 세상이 어제 침묵했다면 오늘도 침묵할 것이고 내일도 침묵할 것이다. 그 당연한 이치를 어찌 모른단 말인가.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고 해서 나의 생각이나 당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좋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해 다오.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도 있지만, 당신이 그 계기가 되었다면 어느 곳에서라도 당신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을까. 전능도 구원도 거짓이냐고 신을 욕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울부짖던 엘리저의 울음을 당신이 외면할 수 있을까.

 

 결국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모두 죽어갈 것이기에. 하지만 그들의 증언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잊는 순간 그 비극은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이든 먼 훗날이든 언젠가는 다시 돌이켜질 것이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약은 죄악의 과실이다.

 

 감동하지 않아도 좋다.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그 비극을 기억해다오. 엘리 위젤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닐까.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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