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는 여자
김미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읽고 한 눈에 반해버린 히말라야 산맥이 그려져 있기에 기대했다. 게다가 전반부에 H.H라는 이니셜로 등장하는 남주인공 하훈은 그 거친 히말라야 산을 타는 등산가라 하지 않는가. 허나 기대가 너무 강했던 것인지 뒷맛이 씁쓸하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죽어버린 하훈과 자전거를 타는 여자, 미목의 만남은 불륜이 치달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들은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지는데, 급기야 미목이 가출을 해버리면서 시가와 친가 할 것 없이 불같은 화를 낸다. 꽉 막힌 가부장적 가정에서 커 온 미목은 집을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해버렸기에 처음으로 다가 온 이 사랑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타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덮고 나서도 의문스럽다.

 

 하훈도 마찬가지다. 암벽 등산가라는 직업 자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와의 만남은 언제나 가볍고 미지근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못 박았다 한다. 그렇기에 갑자기 다가온 이 운명적 사랑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가출하여 동거하던 미목이 가족들에게 머리채를 쥐어 잡히며 붙들려 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찾아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산을 너무나 사랑해서,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그것을 무책임하지 않도록 보이게 개연성을 부연하는 것은 작가가 지켜야 할 규칙임에도 불구하고, 김미진은 그것을 어긴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단조롭다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소설의 흐름을 철저히 깨고 있다. 고개가 갸웃해지든 말든 그것을 방패막이로 삼은 셈이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한다고 비난해도 좋다. 난 그리 관대한 독자가 아니니까.

 

 평소에는 거칠고 고독하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남자. 평소에는 아름답고 정숙하지만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요녀가 되어버리는 여자. 이 둘이 만나 사랑을 한다는 설정부터가 너무 전형적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리도 환상 속을 헤매이는지. 게다가 미목이 남편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다.

 

- 비극으로 완성한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 불륜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 그것을 증명한다. (앞표지)

 

 비극도 좋고, 사랑도 좋고, 불륜도... 뭐, 좋다고 하자. 그런데 이 사랑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어찌도 이리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지 답답하다.

 

 소설가이자 화가라는 김미진.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친다는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가 뭘까. 지나치게 가볍고 단조로운 구성은 극적인 전개도 반전도 없이 허탈하기까지 하다. 전혀 가다듬어지지 않은 문체와 미지근한 심리 묘사, 이해가 안갈 정도로 급작스러운 전환 등도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도 이 소설을 보니, 오랜만에 자전거가 타고 싶다. 온 몸으로 바람을 받고 싶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