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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베텔스만 클래식 4종 세트 (어린왕자, 키다리 아저씨, 별, 독일인의 사랑) ㅣ 대교북스캔 클래식
알퐁스 도데 외 지음, 최내경 외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그가 쓴 단 하나의 소설이 바로 이 <독일인의 사랑>이다. '남'에게 왜 사랑을 표현해서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영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와 타인, 또 나의 것과 타인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유달리 힘들었던 소년은 마리아가 준 반지를 되돌려 주며, '네 것은 곧 내 것'이라고 말한다.
- 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너는 잘 모를거야. 하지만 그걸 깨닫고 나면 너는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을 거야. (46쪽)
하지만 세상에는 계급이 있고, 또 차별이 있다. 결국 마리아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후작의 딸인 마리아 공녀와 그렇지 못한 소년은 아무리 소꿉친구라 할지라도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한때 친했던 후작의 큰아들조차 젊은 귀족들과 장교들과의 교제때문에 그를 잊지 않았던가. 어쩌면 소년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훨씬 더 행복한 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자라 청년이 된 그는 고향에 돌아와 마리아와 재회한다. 마침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마리아는 그를 멀리하려 한다.
- 하늘의 궤도를 도는 별처럼 인간은 이 땅 위를 정해진 대로 도는 것뿐이야. 신께서는 인간에게 저마다 가야 할 만남과 이별에 관한 길을 정해주셨어. 아무리 거스르려 해도 헛수고에 그치고 말아. 잘못하다간 우리가 이 세상의 질서 자체를 어기는 것이 될지도 몰라. (167쪽)
하지만 이처럼 종교에 의지하여 운명론에 입각한 논리는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같은 사람 사이에 계급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소년은 결국 사랑하던 마리아를 잃게 된다. 게다가 죽기 전까지 마리아는 그의 사랑을 피했고, 그것은 소년을 슬프게 했다. 고문관의 고백속에 후작 집안과의 관계를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초점을 맞출 것은 바로 성장으로 보인다. 소년의 성장은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며, 소년의 사랑이라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어째서 같은 계급 안에서 사랑을 해야 하며, 여러 학문 속에서 영혼간의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두 사람이 그 틀에 갇혀야 했던 것인가.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갈 수 없었던 것은 개인의 용기 부족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큰 힘을 가한 것은 세상의 규칙이었다.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소년의 성장이라면, 그 성장은 기뻐해야 할만한 것인가.
하지만 그의 천사, 즉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죽음 후에도 변치않는 것이 되어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 사랑은, 그의 바람대로 낯 모르던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인의 사랑>은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이야기다. 문학, 철학, 종교가 어우러져 우아한 음율을 잡아 내었던 책이니만큼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한다.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