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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가 쓴 일본어로 읽었더라도 이렇게 느껴졌을까. 글쎄, 딱히 번역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갑자기 아무렇지 않던 것이 내 눈 앞에 선명히 나타나 살짝 어지럼증이 일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딱딱한 문체에, 무미건조한 어투에, 세상사에 관심없다는 듯한 냉소적 관조에 몸이 마치 얼음에 덴 듯 서늘해진다.
잉꼬같이 다정한 두 부부가 사실,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외면에서부터 그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 마음까지 얼어 붙을 것 같았다. 냉정한 평화를, 그 따위를 나는 바라지 않는다. 미움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그 둘을 바꿔놓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치는 사에코가 대리모를 하겠다는 것조차 좋을 대로 하라며 손사레를 쳤고, 사에코는 이치가 불임에 대한 죄책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그것에 대해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의 침묵은 서로에게 상처만 깊어가게 할 뿐이었고, 결국은 사에코의 정신 이상까지 가져오게 된다.
평소처럼,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의견을 나누고 사랑을 말했더라면 그들에게는 분명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수십년을 살아 온 부부처럼, 늘 편안한 그늘을 제공했을 테니까.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이유였던 눈물과 고독이, 부부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기 여겼기 때문일까. 혹은 그 고독이 인간에게 언제까지나 따라 붙는 멍에와 같은 것임을 잠시 잊었던 것일까. 언제나 인생의 단면에 드리우는 그것을.
결국 유산을 하고 나서야, 그들은 사랑을 되찾는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일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끊임없이 피를 묻히게 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그것이.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를 중얼거려 본다. 'X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느냐?'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다. 서로가 상처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꼭 상처를 주어 봐야 아느냐, 라고.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랑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지탄받을 대상은 아니리라. 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따끔해지는 것일까.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