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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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도치, 도대체 왜 고슴도치가 아닌 가시도치라고 제목을 정한 것일까. 가시도치는 북한어, 고슴도치는 우리 고유어인데, 굳이 가시도치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을까. 고슴도치는 '고솜>고솜돋>고솜돗>고솜도치>고슴도치'로 변한 것인데, 고솜은 가시라는 뜻의 우리말이며, 도치 또한 가시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강조하기 위해서 같은 뜻의 단어를 중첩하여, 가시가 달린 생물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왜 굳이 북한어인 '가시도치'로 하였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가시도치의 회고록>은 가시도치인 '느굼바'가 주인공이다. 키방디라는 주인은 가시도치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가시도치라는 뜻의 '느굼바'라고 부르는데, 이는 인간으로서의 오만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자체에서부터 가시도치가 보여주는 인간의 세계가 부정하고, 오만한 것임이 드러난다.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한 콩고에서 태어난 알랭 마방쿠는 전체인구의 48%가 민속신앙을 믿는 나라답게, 신비로운 것을 제재로 삼았다. 모든 인간에게는 생사를 같이하는 분신이 있다는 아프리카 민담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 가시도치를 그 분신으로 정한 것이다.

 

 책은 가시도치의 주인인 키방디가 죽은 후, 도망쳐 바오밥 나무에 기대어 그 나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자신이 마흔 두 살이라고 소개한 가시도치는, 대답이 없는 바오밥 나무가 그리도 고마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꾸를 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사뭇 철학적인 이 가시도치가 인간을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비애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 인간 같은 면이 점점 더 나의 동물적인 본성을 압도하고 있었거든, 나 자신을 보잘것 없는 놈, 비열한 놈, 가엾은 이기주의자라고 책망하면서, (29쪽)

 

 가시도치는 주인 키방디를 위해, 아흔 아홉 명의 사람을 죽인다. 그 전까지는 의심을 사지 않았지만, 마침내 백 명을 채우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면 끝장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시도치는 그 말을 키방디에게 하고 싶었지만, 불복종은 자신의 권리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아빠 키방디처럼, 키방디도 백 명을 채우지 못 하고 죽게 된다. 죽을 때 까지 함께 하는 분신이기에, 분신도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시도치는 죽지 않는다. 그리하야, 주인이 죽어버린 무서운 장소에서 도망친 가시도치는 바오밥 나무에 다다라서 숨을 내몰아 쉬는 것이다. 왜냐하면,

 

- 사실은 말이지, 너에게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난 죽고 싶지 않아,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는지 나는 확신이 안 서, 설령 그런 내세가 있다손 치더라도 난 알고 싶지도 않아, 더 좋은 삶 따위 꿈꾸고 싶지 않다고, (34쪽)

 

 왜냐하면, 그는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방디를 위해 인간들을 죽였을지언정, 가시도치가 스스로를 위해 누군가를 살해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 또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을 따라 죽지 않았고, 또 죽은 주인을 내버리고 도망쳤던 것이다.

 

 주인 키방디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원한을 갚기 위해 가시도치를 이용한다. 이것은 인간사에 흔히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이용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 따위는 말이다. 한바탕 웃어줘야 할 사명감이 불타 오를만큼 같잖은 인간, 자신이 최고라 여기는 오만한 인간, 타인을 책망하고 나무라는 인간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을, 가시도치는 주인이 명령한 살인으로써 낱낱이 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 분명, 가치도치가 그러한 인간들을 조롱하거나 농담거리로 삼을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경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키방디의 해로운 분신으로서, 그 존재 자체가 키방디가 살인을 명령하기를 부추겼던 것 처럼 다른 이들의 부정도 해로운 분신으로 인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우선 나는 이 고장의 해로운 분신들과 일대 전쟁을 벌이고 싶어, 힘든 싸움이 되리라는 건 알아, 하지만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몰아내고 싶어, 내 죄를 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 마을에 닥쳤던 여러 불행한 사건과 그 밖의 일에 대해 나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기도 해, (197쪽)

 

 그리하여 가시도치는 책임을 지기 위해, 해로운 분신과 싸우는 길을 갈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가시도치라는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독자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여러 불행과 슬픔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형성해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 가시도치의 이름을 걸고 말하건대,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그것은 나보다 높으신 이의 뜻으로 살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분이 그리 결정하셨다면 필경 나에게는 이승에서 다해야 할 마지막 임무가 있다는 뜻이잖아 (198쪽)

 

 그래, 나에게도 그럴 의무가 있다.

 

 마침표나 물음표 따위를 없앤 쉼표의 대행진으로 나를 힘들게 하긴 했지만... 고마워, 가시도치.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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