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아마 그들의 삶 자체가 한이오, 그 한을 담은 놀음에서 한 세상 잘 놀다 가는 것이 말만큼 쉽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제 세월 속에 풍화되어 사라져 가고 있는 옛 멋을 글과 사진으로 옮겨 놓은 책인만큼, 그 무게가 더하는 것이다.

 

 예기, 광대, 무당 등 남녀노소에게 손가락질과 반말을 듣던 그들. 천대받으며 살던 시절이 부끄러워, 뿔뿔이 흩어지고야 말았지만 마침내 책으로나마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일게다. 순탄치 않은 우리네 역사 속에서 그들은 산 증인이며, 세월의 흐름을 간직하는 증거다.

 

 특히 해어화, 즉 '말을 알아 듣는 꽃'이라 불리우는 예기, 강신받기 두려워 목숨을 내버릴 정도로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던 무당의 생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양반가에서는 치욕이라 하여, 내치는 것도 모자라 차라리 죽음을 강요했다고들 하지 않던가. 자식 새끼 먹여 살리느라 갖은 모욕을 감수하며 그 길로 들어서야 했던, 또 그 길 외에는 삶이 아니라 여겨 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날카로운 눈빛은 참으로 서러웠을 게다.

 

 한 때는 세상을 풍미했던 한량들도, 어려운 시절 모르는 듯 인력거에 모셔져 가던 예기도 모두 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있었던가, 혹은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아쉬움이 섞인 물음인지도 모른다. 소리에 미쳐, 춤에 미쳐, 최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한 시간을 몰라주는 것도 그들에게는 서러우리라.

 

 노름마치, 놀음을 마친다는 말이 왜 최고의 예인에게 주어지는 존칭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 했다. 한 번 나와서 놀음을 하면, 그 뒤로는 어떤 놀음도 무의미하다 하여 놀음을 마치게 하는 존재라는 것, 그것은 정말 단어 자체로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못된 소질'이라 하기도 하고, '흥'이라 하기도 하고, '전부'라 하기도 하며, 일생을 바쳤던 그들. 한많은 세월, 몰래 몰래 기다리다 세상을 뜬 고인들도 안타깝고, 그나마 문화재로 지정되어 끼니 걱정하지 않고 예능을 하는 이들도 안타깝기는 매 한가지다. 또 어떤 이들은 제자가 없어, 얼마 남지 않은 목숨 걱정보다, 그 후로 끊어질 춤사위 하나, 노랫가락 하나를 더 안타까워 한다. 순탄치 않은 우리 역사만큼, 순탄치 않은 그들의 생을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한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한다. 허나, 그러한 서러움이 있었기에, 예능으로 풀어 헤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에 겹든, 흥에 겹든, 그들이 우리의 유산이며, 예인이라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낭당 뻐꾸기새에게, 어이 그리 슬피 우느냐 묻는 그들의 한을, 기억하고 싶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