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무덤 훼손 사건 발생'이라는 기사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전개부터 결말까지 어설픈 글솜씨로 내용을 진행한다. 주인공인 청소년 핼이 일기를 쓰는듯한 형식으로 내용을 진행하고 있고, 중간 중간에 핼을 상담하는 사회사업가의 기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사업가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사업가라는 말은 사장되어 더이상 쓰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한다면 사회복지의 역사까지 파고 내려가야 하니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자.

 

 어쨌든 청소년 문제 담담인 듯한 이 사회사업가는 핼에게 친구의 무덤에서 장난을 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끈덕지게 조른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에게 선고하는 형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도록 판사에게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쉽지 않은 사례에 대해 사회사업가가 겪었을 어려움과 핼의 아픈 기억을 건드려야만 하는 고통도 언뜻 이해가 간다. 그의 강요 끝에, 핼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사건의 전말을 글로 설명하려 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전은 어휘의 광산이다. 들이파면 나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278쪽)

 

 이처럼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쉬울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던 것이다. 핼은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글로 표현함과 동시에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표현하고자 했기에, 더욱 고된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소설을 쓴 에이단 체임버스는 12년의 집필기간을 거쳤다고 말하지 않던가. 

 

 흥미로운 것은 핼과 배리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에서는 동성애를 특이한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핼과 배리는 물론이오, 주변의 인물들 또한 지나치게 이상하게 여기거나, 역겨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처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에 매우 이채로움을 느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질감을 느껴지지 않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어쨌든 핼이 사랑한 배리 고먼, 시체가 된 배리 고먼은 매우 독특한 인물로 그려진다. 

 

- 빠른 건 속도를 얻는 수단이야. 간선 도로처럼 좋은 길에서는 빨리 달린다는 느낌이 안 들어. 그저 속도가 저만치 앞에 있고 내가 그걸 쫓아간다는 느낌만 들지. 속도는 언제나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그래서 나는 그걸 잡으려고 점점 더 빨리 달려. 하지만 속도는 늘 저만치 앞쪽에 똑같은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빨리 달리는 걸 느끼지 못해. 아니면 점점 빨라진다는 걸.

 

- 만약에. 네가 그걸 따라잡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 나는 꿈에서 그걸 경험해. 그건 보이지 않는 거품 안에 있는 것 같아. 아니면 어떤 힘의 장場에 있는 것. 그건 나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어. 눈 깜짝할 새에. 아주 이상해.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아는데, 힘쓰는 느낌도 없고 소리도 없고 진동도 없고 비슷한 무엇도 없어. 그리고 위험도 없어. 그 경험 전체가 아주 놀라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그 에너지의 거품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영원히. (191쪽)

 

 흔히 속도를 즐기는 사람을 위험한 인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배리 고먼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배리는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사를 초월한 듯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스릴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것을 즐기게 되었던 것인데,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그 방법의 일환이었다. 배리의 성격은 여기저기서 독특하게 연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 중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 사람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거야. (223쪽)

 

 특희 배리가 제시한 이 맹세는 이 사건의 출발점이자 모든 고통의 근원이었다. 물론 고통 뿐 아니라 잠시지만 행복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가 맹세를 받아 들였기에,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그에 곁에 머물 수 있었으므로. 어쨌든 이 황당무계한 약속을 받아 들인 것은 배리의 죽음이라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 '마치 하늘을 날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확 뛰어올랐죠. 어찌나 황당하던지. 술에 취하거나 마약에 중독된 모양이에요. 아니면 미쳤는지도 모르고요.' 그 어느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기도 했다. 시간 없는 시간의 거품에 취하고, 속도에 중독되고, 비상하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 미쳤던 것일거다. 그의 꿈이 맞았던 것이다. (272쪽)

 

 핼이 배리와 했던 맹세를 깨버리려고 하자, 배리는 그 맹세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리는 엉망진창이 된 마음으로 핼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 어려운 일이야.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는 건. 그걸 원하는 게 잘못인 것 같아. 시도하는 것도 잘못이고. (295쪽)

 

 카리의 말은 배리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핼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마법의 콩을 찾던 핼에게, 배리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핼은 더욱 그를 강렬히 원했던 것이리라.

 

 결국 불행으로 끝났지만, 그것이 꼭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 죽음으로 인한 존재의 부재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핼은 죽음이라는 관념에 더욱 관심이 있었지만, 그 또한 배리의 부재로 인한 고통으로 그 관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듯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 현실은 알코올 결핍이 빚어내는 환상이다. (128쪽)

 

-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잘 몰라. 끝까지 못 찾기도 하고. 그걸 찾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지. 원하는 걸 알고 그걸 손에 넣는 사람은 더 운이 좋고. (154쪽)

 

 핼의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말을 해준다. 하지만 그 말들을 이러한 경험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귓가에서 흘러 사라졌을 말이다. 핼은 값비싼 삶의 경험을 획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겪지 않고서라도 진리를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등가교환의 법칙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분명 그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 후에야 진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경험은 은행에 돈이 쌓이듯 우리 안에 쌓이는 걸까? 거기에 이자도 붙어서 나중에 그걸로 어떤 근사한 것을 살 수 있게 될까? 거대한 초신성 같은 경험을 가지고? 나는 그렇게 저축한 경험을 가지고 무엇을 사게 될까? 우리의 모든 과거를 가지고? (250쪽)

 

 그 탓에 핼은 이 경험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 당신의 삶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꽤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인생의 진리와 첫사랑을 경험하고 안타까운 이별과 경험을 얻기까지 핼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파이크에게 사우스엔드의 선물을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핼이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우리는 동정과 깨달음을 얻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역사는 무엇일까,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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