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는, 마치 비가 내리듯, 번지듯 빛나는 하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두 별이라고 생각하면 이유도 없이 슬펐다. 올려다보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득 메운 별의, 수억개의 빛남. 왜 그런 기분이 들어? 다 그런 거야? 어렸을 때, 아빠에게 물었다.…응.…너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도, 인간은 슬퍼져.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되면, 혹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인간은 슬퍼진다. 야요이는 그것이 다가올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며 <슬픈 예감>에 빠져든 것이다. 하지만 슬픈 것은 예감이었을 뿐,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캐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다. 그렇기에 엷은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온다. 어쨌든 그들은 <슬픈 예감>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 나는 운명이란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줄어들지는 않았다. 늘어날 뿐이다. 나는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손발로 언니와 애인을 발굴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야요이이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예감에 몸서리쳐지는 경험도 겪고, 부모를 잃은 아픔을 되새겨야 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것이 조금 일렀을 뿐. 그렇기에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그 삶의 존재를 기억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야요이는 그것을 깨달은 것이고, 마침내 제 삶의 의미를 회복한 것이다. 충격으로 잃어버린 기억도, 돌려받은 기억도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야요이는 제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할 수 있었고,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데츠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매, 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기뻐할 수 있었던 남동생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잊었던 추억을 되찾아, 이모였던 언니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잔잔한 필치로 또 때로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해낸 것이 <슬픈 예감>이다.
이제 야요이는 자신의 자리에 대한 책임을 괴로움이 아닌 행복함으로 마음껏 누리리라.
- 말도 없이 없어지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내내 곁에 붙어서 간병을 하던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육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경우를 몇 번이나 봤다. 우연이란 그런 거야. …만약, 야요이 네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사고를 당해서 엄마나 아빠가 입원하거나 죽었다면, 야요이……. …전화 한 통의 무게에 짓눌려 평생을 고통스러워 하게 된다고.
야요이는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엄마의 성실한 태도를, 그리고 그 이전에 깔린 안타까움을 느낀 것처럼.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