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 시간을 초월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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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사자자리 유성군은 이미 지나갔다. 매년 볼 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한 시간에 천개씩 흘러 내리는 그것을 보기란 힘들 것이다. 한 사람의 삶 동안 한두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한 것을 이제서야 알고, 또 그것을 불과 몇 년 전, 그리고 몇 달 전에 놓쳤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이제 내 삶에 그 기회는 한 번이 남았을까, 두 번이 남았을까, 혹은 한 번도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스무살의 겨울 밤, 그것을 보았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진작에 이것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 가을과 겨울을 무척 고대하며 보내었었겠지. 오히려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리셋은 사자자리 유성군을 함께 볼 수 있었던 행운을 가진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무려 한 생을 초월한 그것. 시간을 초월해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일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랑은 행복해 보였다.

 

 전쟁은 아이러니다. 그것은 언제나 평화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일어남으로 인해 평화는 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도 우정도 모두 아이러니하다. 그러면서도 굳이 일본은 극장 폐쇄 명령을 내린다. '이런 비상시에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비상시에 사랑을 하는 사람은 국민도 아닌 것인가. 그래서 유코의 오빠는 구타로 죽어버린 것일까. 시간이 날 때 마다 방공호를 정비하고, 수업 대신 근로동원을 해야하는 어린 학생들을 상상하기에 이 시대는 너무 곱게 자란 것인가.

 

 구름을 가른 햇빛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강도로 경사길을 비췄다. 나는 그 빛이 낙하하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멸망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서,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더 애틋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슈이치는 죽었다. 그의 죽음에 오열을 토했던 소녀는 이제 소녀가 아니다. 성인이 되어 슈이치를 닮은 소년을 만나지만, 그가 슈이치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결국 슈이치를 일깨우고, 놀란 마스미는 그를 피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무라카미는 슈이치의 삶을 끌어 안고 살아가다 환생한 마스미를 다시 만난다.

 

 하나의 생을 뛰어 넘어 만난 그들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두 개의 생을 모두 끌어 안느라 이도 저도 아닌 괴로움을 겪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만났다. 마치 운명적인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외치는 듯 말이다.

 

- 그래서 모르는 거야. '중경重慶'이라고 해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국에서의 폭격 뉴스를 보거나 하면서 용맹스럽다고 생각했어. 연기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도 못했지. 전차가 달리거나 군함이 포격하는 걸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어. '아사아를 서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라고 하니 중국 사람도, 필리핀 사람도 모두 우리에게 감사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조선 사람의 심정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겼으면 지금도 그랬을 거야. 궁핍함 역시 알지 못했지.

 

 난사하는 총과 포격하는 군함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는 어린 아이가 과연 죽음을 알까. 하지만 그들은 환호한다. 또 짓밟고 나아간다. 시대가 그것을 가르쳤다. 그런 가르침 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거리에서 장난감 총을 들고, '죽어라'라고 외칠 때, 나는 너무 괴로웠었다.

 

 성전이라는 미명 하에, 희생한 많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 많은 인류.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 멀리 바다 건너의 전쟁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 그리고 내가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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