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서태후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져 다만 색감이 마음에 들었던 영화, 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서태후가 그 영화에 등장했었다는 기억이 가물할 정도로 그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닥 많지 않았다. 악평이 자자하다는 것, 그리고 희대의 악녀였다는 것.

 

 책 표지에 '펄벅은 이 한 편의 글에서, 실제적 인물의 가장 소설적이고 가장 사실적인 부분을 절묘하게 혼합해 놓은 새로운 전기를 선보인다.' 라고 써져 있다. 허나 <연인 서태후>에서는 그를 지나치게 미화시킨 감이 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아마 그 또한 인간이기에 당연히 가진 것이리라. 그렇기에 펄벅은 이것을 상상할 수 있었고, 또 이 책을 써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미화시킨 탓에 이 책을 그대로 믿을 독자들 또한 있으리라는 생각에 조금 섬뜩해 진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실제 그는 함풍제의 사랑을 받지도 못했으며, 처음부터 황비도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책을 통해 일개 궁녀(책에서는 귀인)였던 그가 태후가 되기까지, 그리고 태후로서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여황이 되려고 했던 그의 욕심은 그저 사랑의 힘으로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 그는 영록에게 '나는 냉혹하지 않습니다. 다만 외로울 뿐이에요.' 라고 말할 정도로 그 괴로움을 호소했다. 아마 서태후의 삶에서 그 괴로움은 전생애를 통해 쭉 그를 좇아 다녔을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사람보다 지나치게. 하지만 그것이 가차없이 철권을 휘두르고, 매 끼니마다 백여가지의 산해진미를 탐하고, 수백가지 고급 의복과 보석들을 휘두르고,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여 이화원을 지었던 것을 이해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끼니마다 그가 먹었던 산해진미를 돈으로 환산하면 일만 백성이 하루를 먹을 수 있는 쌀의 값이다. 이 하나의 예만으로도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적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이화원을 짓기 위해 광서제를 핍박하고, 그를 가두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모든 외로운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이 픽션의 백미는 군기대신 영록이다. 저자 펄벅은 친척 오라비로 영록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서태후의 연인이자 정혼자였지만, 서태후의 야망으로 내버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서태후는 태후의 자리를 차지하며, 그를 높은 자리로 끌어 올린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서태후는 끝까지 영록이 자신을 위해 희생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결국 영록의 일시적인 변심으로 인해 상처 받는다. 결국 영록의 마음은 서태후에게 돌아 오지만,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매 한가지이다. 서태후는 어떻게 단 한 번의 결합으로 인해 영원히 영록만을 사랑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내버린 사랑이 자신을 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던 것일까. 또한 영록은 왜 끝까지 서태후에게 충성했으며, 자신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란 것인가. 혹 사랑이란 것인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러한 서태후로서도 그 야망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결국 황제도 황후도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자금성의 정문은 그 둘만이 드나들 수 있었지만, 서태후는 단 한 번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48년이나 청을 지배했지만, 결국 그는 그저 여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서태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측전무후처럼 황후가 되지도, 여황이 되지도 못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의 야망보다 사랑을 더 부각시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그는 권력과 사랑 중에 권력을 택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한다. 그토록 원했던 권력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며 외로워했던 것이다. 심지어 사랑을 나누었던 영록조차 그에게 냉정했으니, 그가 사랑받기를 절실히 원했던 것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렇기에 온후한 성품으로 주변의 사랑을 받은 동태후 사코타에게 질투심을 느꼈으며, 결국 그를 살해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의 야망을 더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다.

 

 허나 이미 <연인 서태후>는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의 기복을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한 것과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쉽긴 했으나, 실제 손에서 내려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흡인력이 강했다. 같은 동양문화권이지만 이국적인 분위기와 더욱 드라마틱하게 짜놓은 서태후의 일생이 독자를 끌어 당기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읽는 내내 측은지심이 들어 그를 옹호하게 되기도 했으니까.

 

 그의 잎새같은 눈매와 앙다문 입술이 선명히 떠오른다. 마치 고독했지만 열정적이었던 그의 인생처럼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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