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가족
권태현 지음 / 문이당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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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끔, 눈물이 났다. 어릴 적 읽었던 김정현의 <아버지>만큼 펑펑 쏟아 낼 눈물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찔끔거리게 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내 가정 때문에. 평이한 문체와 간혹 어울리지 않는 묘사와 비유가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일단 전체적인 서사가 너무나 씁쓸하게 와닿았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쯔음이었나. 그 때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집안에서 나름대로 잘 컸다, 라고 스스로 대견해 하곤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가정의 불화와 날벼락같이 떨어진 빚더미, 우왕좌왕하며 전전했던 월셋방들이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하다. 지금도 전연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전히 나는 어리고 약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돌이켜 보고 후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탓일까. 눈물이 글썽해 졌다.

 어린 날의 치기와 용감무쌍하게 부모에게 대들며 삿대질까지 했던 한심한 꼬마를 기억한다. 아마 부모님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을 끝내 풀어드리지는 못하리라. 그런 생각이 들면 또 씁쓸하다. 아직까지 죄송하다, 는 말 한마디조차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다. 다예와 석진의 삐뚤린 행동과 마음을 읽으며 얼마나 욕을 해댔던지. 하지만 그 시절의 꼬마가 떠올라 비난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송구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아, 답답도 하여라. 다예와 석진의 외침에 오버랩되던 그 꼬마의 울부짖음, 그리고 막연한 불안과 막막한 현실 속에 절망하며 시우에게 비난을 퍼붓는 지은의 눈물에 오버랩되는 어머니, 아무데도 답답함을 토로할 길이 없이 죄책감에 고개 숙인 시우의 절망에 오버랩되는 아버지. 단 한 번도 착한 자식인 적이 없었던 그 꼬마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안쓰러운 마음에 안아 주고 싶다.

 문득 라는 김윤아의 노래가 떠오른다. 열일곱, 또는 열셋의 나, 상처 투성인 그 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사랑한다 말 하고 싶어. 어쩌면 이제는 그 꼬마를 다독여 가며, 내 잘못을 시인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싶다. 마음 안의 분노도 불안도 그저 내버려 두면 넘쳐 흘러 갈거야. 그럴 거니까. 어쨌든, 덕분에 힘이 났다. 아직 세상의 따뜻함을 맛 보지 못 했으니까, 앞으로 겪어 갈 인생은 아름답지 않을까. 내가 하기에 달렸을 거라, 믿고 싶다. 인생의 굴곡이란 말을 벌써 써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인생의 굴곡이지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이 굴곡은 언젠가 다시 올라갈 때가 있다는 말이다. 시우가 결정내린 것 처럼 그 굴곡이 갑자기 낭떠러지가 되었다고 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국 시우는 병원에서 눈을 떴지만,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가족의 마음이 돌아 섰지만, 꼭 그런 식으로 했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양귀자의 말처럼, 이 소설에서 기교는 도리어 가식이 된다. 어쩌면, 가식없이 핵심을 뚫은 정공법이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진짜 삶이다. 기교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때로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삶을, 나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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