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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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너시간 동안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었다. 판타지보다 더 환상적이고, 동화보다 더 동화다운 <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과 애덤 매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요하네스의 정의와 자비의 갈등을 그렸다. 다색옷의 연주자, 요하네스. 그는 정의를 상징하는 빨간색, 자비를 상징하는 노란색, 두가지 색으로 물들여진 옷을 입고서 그 두가지를 한시도 잊지 말라는 수장의 다짐을 받게 된다. 어릿광대 같다는 다른 도제들의 놀림, 심지어는 단독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들리는 놀림에 열여덟의 요하네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정 정의와 자비를 지켜야 겠다는 마음만을 무럭무럭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정의와 자비는 그런 것이리라. 옳다는 것임을 알고,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지키는 자가 놀림을 받고 다치게 되는 확률이 더 높은 것.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요하네스는 하멜른에 들끓고 있는 쥐떼를 소탕하는 단독 임무를 띄고 하멜른을 향한다. 도중에 만난 산적 무리 때문에 시장의 딸인 클라라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동생 구드룬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요하네스를 끝까지 믿어 주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쥐떼를 소탕한 뒤, 사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 때 클라라는 저주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구드룬은 저주의 끈을 쥐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어린이 통치'의 악보를 외우고 그 음률의 힘을 보여 준다. 하지만 저주는 끝날 무렵 약탈당하고 만다. 유난히 요하네스와 마음이 맞던 친구인 로트가 바로 그 범인이었다. 쥐떼를 몰아 낼 때 맞서던 힘이 바로 로트였던 것이다. 그는 '어린이 통치'를 완벽하게 실현하려 한다.

 

 어린이 통치, 라는 저주와 그것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로트의 정체, 그리고 수장이 말한 두가지 지침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6월 26일, 하멜른>을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 과연 쥐떼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로트는 무엇이었는가. 시장과 부시장, 그리고 하멜른의 농노와 주민들은 무엇이었는가.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 요하네스를 고뇌하도록 만든다. 요하네스가 받은 두가지 지침, 바로 자비의 정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두가지를 동시에 실현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칼같이 정의를 지킨다면, 자비는 어디로 갈 것이며, 자비만 베푼다면 정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수장은 요하네스에게 두 가지를 항시도 잊지 말라고 하였다. 요하네스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그 두가지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지만, 결국 그것 또한 완벽하지 않았다.

 

 서기 1284년 6월 26일,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축일인 이 날 다색 옷을 입은 한 피리 연주자가 하멜른에서 태어난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쾨펜 지역의 칼바리로 떠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색 옷의 연주자가 요하네스는 아니다. 이 민담에서 말하는 다색 옷의 연주자는 진정 누구인지, 끝까지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요하네스가 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자비의 정의를 베푼 자는 누구이며, 그 갈등에서 승리를 쟁취한 것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악당은 죽고 영웅은 환호 받는다, 는 이 간단한 공식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 선과악의 대결이 이 책의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또 모호해 진다. 결국 정의와 자비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끝까지 의문으로 남겨진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며 획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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