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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아이 뜀틀 문학과지성 시인선 632
구윤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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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쓴 동시가 교내 주간지에 담긴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후로 틈만 나면 시상을 찾고 일정한 운율과 규칙을 가진 동시를 짓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때의 즐거움은 중학교 진학 준비와 여러 과제에 밀려 잊혀갔다. 자연스레 시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졸업을 하고, 취업과 창업 그리고 고군분투의 시간을 지나—아니, 아직도 고군분투 중이지만 예전에 비해 여유가 많이 생겼다. 평생 나와 함께할 건강하고 즐거운 취미가 필요했고, 책으로 정해졌다. 책을 통해 나를 알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틈틈이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았고, 시도 있었다. 유명한 시인들의 유명한 시가 나왔을 때는 서점, 도서관을 기웃거리곤 했다. 하지만 멀어진 시간의 거리만큼 시는 참 어려웠다. 시 안에 담긴 단어의 감정을 오롯이 읽어내기에 나의 문해력이 크게 모자라게 느껴졌기에 어려움을 넘어 싫어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는 내게 잡지나 원서와 같이 읽히지 않는 부류로 분류되었다.


그러던 중, 독서모임을 통해 시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구윤재 작가의 시집 『미래 아이 뜀틀』. 모임장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번 기회에 도망치지 말고 시와 가까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장부터 고비였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내가 감정의 폭이 깊은 시, 그것도 산문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영도 못하는 아이에게 결승선까지 가는 정도의 난이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뭐, 어쩔 수 있나. 어떻게든 읽어야지.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글자 한 톨도 빼지 않고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어보았다. 그렇게 읽으니 이상하게 또 읽혔다. 무심코 지나가는 시도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시, 곱씹어보게 되는 시가 있었다. 분명 마음에 드는 시가 있었고, 따로 빼놓은 시를 재차 읽어보니 다양한 감정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래 아이 뜀틀』의 시 중에서 「남조식물」이 기억에 남는다. 화자가 시간을 들여 풍경을 지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서관에 도착한 화자는 화병에 든 꽃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예뻐서 꽃을 꺾은 우리는 어떤 존재이길래 꽃을 함부로 꺾어 관망하는 걸까?' 녹조 현상을 일으키고 독소를 내뿜는 남조식물 같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지극한 호기심이 담긴 시라고 생각했다.

『미래 아이 뜀틀』에서 군중 속의 고독, 외로움과 부러움의 감정을 담고 있는 「코끼리씨」와 불안정한 환경 속 관계에 대한 애착에 대한 감정을 담은 「미래의 빛」을 교차, 비교해 가며 읽는 것이 참 좋았다. 이 외에도 「성우와 바다」, 「미술관에 가면」, 「ETA」, 「팽오래쟁 팔미에 쇼송오폼」, 「잠정진리」, 「무조음악」, 「재앙으로 시작해서 재앙으로 끝나는 영화」, 「레몬열차를 타고 떠나」, 「더 좋은 기회」…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속으로 더 가까이, 더 선명히 다가오는 경험을 해보았다. 당신이라면 『미래 아이 뜀틀』에 나오는 시 중에서 어떤 시가 마음을 건드릴지 나는 그것이 참 궁금하다.


서점에 가면 책이 참 많다. 화려한 표지들과 유명 명사들의 감탄이 둘러져 있는 띠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에 비해 시집은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나는 알게 되었다. 백 여 페이지 남짓한 이 작은 시집은 그 어떤 책보다 더 강한 감정의 힘을 갖고 있고, 멋지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시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자. 그리고 호기롭게 하나 집어서 집에 가서 읽자. 그러면 분명,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미래아이뜀틀 #구윤재 #문학과지성 #서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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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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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게 느끼지만 여름은 덥고 짜증 나서 일하기 싫고 집중도 잘 안되지만, 올해는 유독 심한 듯했다. 과감하게 잡은 여행 스케줄, 그간의 나와는 달리 여행 날짜를 일찍 선점했고, 오매불망 기다렸다. 청도, 나의 목적지. 어질러진 사무실 책상보다 더 건드리기 힘든 나의 머리를 차분하게 정리하고자 정한 목적지. 


먼 길을 내려가면서 음악을 들을까, 팟캐스트를 들을까 고민하다 ‘밀리의 서재’에서 듣다가 만 정대건 작가의 오디오북 『급류』가 생각났다.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소설을 듣는다는 건 아무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것보다 감정의 진폭을 느끼기에 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안은 채 재생 버튼을 누르고, 새벽녘이 막 걷힌 공기 사이를 힘차게 달려나갔다.


소설 『급류』는 증평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소방관인 도담의 아버지와 이곳으로 이사 온 해솔의 어머니가 불의의 급류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나며 시작되는 도담과 해솔, 두 주인공의 곡절 어린 사랑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급류라는 거대한 자연현상이자 운명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지켜내고 싶은 사랑이라는 본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책 속에는 눈시울을 적시는 대목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급류 사고 이후 헤어지게 된 도담과 해솔이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전날 저녁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손님으로 온 도담을 보게 된 해솔은 그리움에 다음 날 도담의 학교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다. 2년의 그리움 끝에 마주한 도담과 해솔은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포옹한다. 10대의 풋풋함을 넘어 애달픈 20대의 진정한 사랑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내게 가장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다. 아마 답답했던 감정이 처음 해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류』를 보며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은 것을 보았다. ‘자기연민이 심하다.’, ‘억지스럽다.’부터 ‘흥미롭게 읽었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결말까지 읽고 난 후 여러 생각들이 그동안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오늘은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도담과 해솔이 늘 같이 있을 때 사랑했음에도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이유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크기에 대한 자기 인식, 그리고 돌아갈 곳의 유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솔은 증평을 떠나 서울로 간 뒤 외삼촌과 할머니라는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가 있었고, 약대 진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외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반면, 부모를 잃고 기댈 곳 하나 없던 도담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헤매야 했다.


그래서 도담이 택한 회피와 방황이라는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살고 싶어서, 차라리 몸에 생채기를 내서라도 고통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지극히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질하게 살고 싶어 도망치는 사람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올바르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 앞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많은 사람은 도담의 선택을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외로운 환경에 갇혀 있지 않았으면서 함부로 뱉는 말로 도담의 선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여성 문제, 인종 문제, 종교 문제, 이념 문제 등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 함부로 말을 내뱉고 경솔했음을 자각하며 후회하곤 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도담을 깊이 이해해 보고자 했다.


주어진 환경이 달랐던 만큼, 오랜 그리움 끝에 만난 해솔과 도담은 하나의 사건 속에서 각자 상처를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여기에 인간 본연의 행동이 추가된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나를 먼저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인간 본연의 자기중심적인 생각, 이기심이 등장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헤어지는 둘을 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는 대로, 사람들과 있으면 사람들과 있는 대로 그 순간 자체를 좋아했기에 굳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인의 필요성을 찾지 못했고, 마음 편히 살아왔다. 그러던 내게 연인이 생겼다가 떠났다. 반쪽이라고 할 만큼 가까이하고 싶었고, 평생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실망스러웠다. 그제야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들기 전에 수많은 스케줄과 일에 나를 내던지곤 했었기에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다른 일을 상상하고, 책을 읽다가 다음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등 ‘나’라는 존재가 외로움이라는 무서운 놈을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겁쟁이처럼 도망치기만 했었다. 해솔에게는 목표가, 나에게는 두려움이 그동안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잊게 해준 셈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한 목적과 주안점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 참 재미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덧입혀 나오는 완성본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깊이 바라보았던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무척 궁금하다.


책을 읽은 건 반나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내게 남긴 여운은 2주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책의 이야기와 나의 경험이 만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은 참으로 특별했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사랑과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해보고 싶다면 정대건 작가의 『급류』는 어떠한가.



#서평 #정대건 #급류 #민음사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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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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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년 전, 위화 작가의 『원청』을 접하며 그의 작품 세계에 처음 빠져들었다. 출퇴근길마다 보았던 살아 숨 쉬는 서사와 운명에 대한 던짐은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던 중 운영 중인 샌드공방에 위화 작가의 내한 행사 다과 주문이 들어왔고, 심지어 레터링 스티커 제작 요청도 들어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뜻깊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한 형장에서 나는 행사 담당자에게 팬심을 전했고, 그 덕분에 선물로 받게 된 책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시골 마을을 찾은 화자가 늙은 농부 ‘푸구이’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전해 듣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구술 방식 덕분에 독자는 마치 현장에서 노인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국공 내전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야기는 거창한 이념 대신 평범한 서민의 삶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대적 격랑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인물들의 몸부림이 더욱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작품 속 여러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푸구이의 딸 평사의 결혼에 대한 대목이다. 어릴 적 큰 열병으로 말을 못 하게 된 펑샤가 다정한 남편 어리를 만나 소소하지만 진실된 행복으로 가는 시작을 맞이하는 모습, 그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지극히 아끼는 가족들의 온기는 가혹한 비극의 연속 속에서 희망을 빛이 점점 커지는데, 팍팍한 현실을 살아내는 서민들에게 가족이란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상 깊었다.


장이머우 감독의 동명의 영화 <인생>에서는 체제의 고통과 부조리 안에서 살아가는 서민의 애환이 더욱 더 잘 드러난다. 마오쩌둥 그림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체제에 순응하는 당시 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묘사되는데, 이는 어떠한 정치적 신념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한 온전한 노력으로 보인다. 역사라는 거대한 풍파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 보이지만,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 나가는 의지만큼은 숭고하게 느껴진다. 격변의 시대를 견뎌낸 이들의 삶과 ‘생존’에 대한 의지는 거창한 가치보다 대단한 게 아닐까 싶다.


연이은 비극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서사가 다소 고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작품의 힘이라 생각된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함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와 의미를 찾아가는 푸구이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로 고민하는 3040 세대에게 큰 위로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거창한 해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삶의 본질을 조용히 되돌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일독을 적극 권한다.



#위화 #인생 #서평 #책추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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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 공부 - 나의 말과 글이 특별해지는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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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주 일정의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두 번째 도서로 만난 신효원 작가의 『어른의 어휘 공부』. 사실 이번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가장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책이었다. 평소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 매번 똑같고 한정된 단어만 되풀이할까 답답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나였다. 내 언어의 표현력을 확장하고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책의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신효원 작가는 어린이언어연구소장이자 20여년간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외국인을 비롯한 수많은 학습자를 지도해 온 한국어교육학 석사 출신의 전문가이다. 초등학생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재와 교구를 개발하는 등 공신력 있는 연구 활동을 이어온 이력 때문에 자칫 책이 교과서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자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저자는 단어 하나를 제시할 때마다 에세이처럼 감각적이고 다정한 문체로 이야기를 시작해 읽는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거기에 50여개의 주요 어휘가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책은 사전처럼 곁에 두고 찾아보기 좋으며, 무엇보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그치지 않고 '이 어휘를 어떤 상황에서 쓰면 좋을까?'를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도와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어휘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짚어주는 부분이었다. 작년에 화제였던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4』를 볼 때, 한 출연자가 인터뷰에서 감적이 극에 달했을 때 "호젓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해 인상에 남은 적이 있따. 당시 출연자는 후미진 곳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나 측은함, 감정의 끝에 다다른 아련함을 표현하려고 그 단어를 썼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주었다.


그러나 책에서 밝히는 "호젓하다"의 본래 쓰임은 사뭇 달랐다. 작가는 한밤중에 조용한 길을 혼자 운전할 때처럼 후미지고 조용하여 등골이 오싹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 때 쓰는 어휘가 바로 "호젓하다"라고 설명한다. 즉, 단순히 쓸쓸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무서움과 서늘함이 내포됨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만약 그때 그 인터뷰에서 감정적인 쓸쓸함과 정적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처연하다" 혹은 "아릿하다", "애절하다", "헛헛하다" 같은 어휘가 훨씬 더 정교하고 적합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모호하게 지나쳤던 단어의 정확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책을 읽으며 갖는 어휘 공부가 주는 커다란 묘미였다.


책의 깊이와 정보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독하며 깊이 있게 소화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고 있지만,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누기 전에 수시로 펼쳐볼 수 있도록 종이책으로도 구매해 책상 위에 두고 사용할 계획이다. 이 책은 풍부하고 알맞은 어휘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싶은 모든 사람, 특히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강의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인 은혜 대표이다. 강의를 준비할 때 늘 고민하며 멈칫거리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 책이 커다란 자신감과 편안함을 선사해 줄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적확하고 다정한 어휘의 힘으로 내 언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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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 - 시각적 문해력을 기르는 여정 창비청소년문고 48
류지이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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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의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를 읽으며 그림과 작가 그리고 나의 삶을 고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미술사에 큰 관심이 생겼다. 마침 창비에서 류지이 작가의 『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자마자 신청했고, 운 좋게 당첨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류지이 작가는 미술사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겨쳐 영국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해온 분이다. 번역서인 『과거를 쫓는 탐정들』,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18세기의 동물』 등의 전작들을 보면, 예술을 단순한 감상이 아닌 사회적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을 통해 부족했던 시각적 문해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책을 덮을 때쯤엔 한층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일반적인 미술사 책처럼 시간순이나 사조(인상파 등) 중심이 아니라 ‘소재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재 중심으로 깊게 파고들며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니 작품의 탄생, 사조의 출현 등 내용이 훨씬 잘 정리되었고, 당장이라도 미술관에 가서 새로운 작품들을 확인해보고 싶은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이제 예술은 단순한 감상과 사유의 대상을 넘어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술 작품을 통해 경험을 유도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 예술의 역할이자 의미겠지요.” 다양한 챕터 중에서도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사진과 영상’에서 해당 문구를 만났다.


나 역시 일상 속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자주 기록하고 의미를 담아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내 생각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이 늘 있어왔다. 2018년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전시된 올라퍼 올리아슨의 <얼음 시계>는 빙하가 녹는 기후 위기 문제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전시였다. 이를 보며 내가 찍은 사진들도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라, ‘왜 예쁜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되짚어 보는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쳐야겠다 생각했다.


워낙 방대한 미술사 지식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한 권에 담다 보니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부분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사진과 글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소화하기 어렵지 않았다.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재료가 회화에 미친 영향 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내게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익숙하지 않은 점이 컸기에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전시회 관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단 한 권의 미술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 그리고 창비청소년문고로 출간된 만큼, 앞으로 문화 영역을 주도해 나갈 1020 청소년들과 갓 성인이 된 분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주변의 미술품과 전시 작품들을 훨씬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미술에 첫발을 내딛고 싶은 입문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싶다. 일상 속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준 뜻깊은 책이기에, 서평을 쓸 기회를 준 출판사 창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 본 서평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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