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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늘 그렇게 느끼지만 여름은 덥고 짜증 나서 일하기 싫고 집중도 잘 안되지만, 올해는 유독 심한 듯했다. 과감하게 잡은 여행 스케줄, 그간의 나와는 달리 여행 날짜를 일찍 선점했고, 오매불망 기다렸다. 청도, 나의 목적지. 어질러진 사무실 책상보다 더 건드리기 힘든 나의 머리를 차분하게 정리하고자 정한 목적지.
먼 길을 내려가면서 음악을 들을까, 팟캐스트를 들을까 고민하다 ‘밀리의 서재’에서 듣다가 만 정대건 작가의 오디오북 『급류』가 생각났다.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소설을 듣는다는 건 아무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것보다 감정의 진폭을 느끼기에 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안은 채 재생 버튼을 누르고, 새벽녘이 막 걷힌 공기 사이를 힘차게 달려나갔다.
소설 『급류』는 증평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소방관인 도담의 아버지와 이곳으로 이사 온 해솔의 어머니가 불의의 급류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나며 시작되는 도담과 해솔, 두 주인공의 곡절 어린 사랑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급류라는 거대한 자연현상이자 운명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지켜내고 싶은 사랑이라는 본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책 속에는 눈시울을 적시는 대목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급류 사고 이후 헤어지게 된 도담과 해솔이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전날 저녁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손님으로 온 도담을 보게 된 해솔은 그리움에 다음 날 도담의 학교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다. 2년의 그리움 끝에 마주한 도담과 해솔은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포옹한다. 10대의 풋풋함을 넘어 애달픈 20대의 진정한 사랑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내게 가장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다. 아마 답답했던 감정이 처음 해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류』를 보며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은 것을 보았다. ‘자기연민이 심하다.’, ‘억지스럽다.’부터 ‘흥미롭게 읽었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결말까지 읽고 난 후 여러 생각들이 그동안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오늘은 ‘외로움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도담과 해솔이 늘 같이 있을 때 사랑했음에도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이유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크기에 대한 자기 인식, 그리고 돌아갈 곳의 유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솔은 증평을 떠나 서울로 간 뒤 외삼촌과 할머니라는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가 있었고, 약대 진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외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반면, 부모를 잃고 기댈 곳 하나 없던 도담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헤매야 했다.
그래서 도담이 택한 회피와 방황이라는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살고 싶어서, 차라리 몸에 생채기를 내서라도 고통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지극히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질하게 살고 싶어 도망치는 사람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올바르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 앞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많은 사람은 도담의 선택을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외로운 환경에 갇혀 있지 않았으면서 함부로 뱉는 말로 도담의 선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여성 문제, 인종 문제, 종교 문제, 이념 문제 등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 함부로 말을 내뱉고 경솔했음을 자각하며 후회하곤 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도담을 깊이 이해해 보고자 했다.
주어진 환경이 달랐던 만큼, 오랜 그리움 끝에 만난 해솔과 도담은 하나의 사건 속에서 각자 상처를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여기에 인간 본연의 행동이 추가된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나를 먼저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인간 본연의 자기중심적인 생각, 이기심이 등장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헤어지는 둘을 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는 대로, 사람들과 있으면 사람들과 있는 대로 그 순간 자체를 좋아했기에 굳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연인의 필요성을 찾지 못했고, 마음 편히 살아왔다. 그러던 내게 연인이 생겼다가 떠났다. 반쪽이라고 할 만큼 가까이하고 싶었고, 평생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실망스러웠다. 그제야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들기 전에 수많은 스케줄과 일에 나를 내던지곤 했었기에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다른 일을 상상하고, 책을 읽다가 다음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등 ‘나’라는 존재가 외로움이라는 무서운 놈을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겁쟁이처럼 도망치기만 했었다. 해솔에게는 목표가, 나에게는 두려움이 그동안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잊게 해준 셈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한 목적과 주안점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 참 재미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덧입혀 나오는 완성본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깊이 바라보았던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무척 궁금하다.
책을 읽은 건 반나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내게 남긴 여운은 2주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책의 이야기와 나의 경험이 만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은 참으로 특별했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사랑과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해보고 싶다면 정대건 작가의 『급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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